특집 | 2013년에 무엇을 해야 하나
세계 권력지형 변화 속 한국의 전략
손열 孫洌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저서로 『일본: 성장과 위기의 정치경제학』 『동아시아와 지역주의』(편저) 『근대한국의 사회과학 개념 형성사 2』(공편) 등이 있음. yulsohn@yonsei.ac.kr
1. 서론
2013년을 여는 동아시아의 새 지도자들은 한 목소리로 ‘부흥’을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의 시 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쳤고, 일본의 아베 신조오(安倍晋三) 수상은 장기침체와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벗어나 부흥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며, 한국의 박근혜(朴槿惠) 대통령 당선인 역시 경제부흥으로 또다른 ‘한강의 기적’을 성취하려 한다. 그러나 2013년이 동아시아 부흥의 원년이 되기엔 많은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먼저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유로존 재정위기로 침체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향후 5년의 전망도 어두워서 모두가 다시 흥하기는 어려울 것처럼 보인다. 특히 장기 경제침체기에 각국은 국제협력보다 국내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내향성(inwardness)이 강해지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부흥’ 담론은 일국중심적, 민족주의적 성향을 띨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현재 동아시아는 영토문제와 역사문제로 민족주의적 열정이 상승하고 있고, 한일관계와 중일관계는 최악의 상황에 처해 있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 역시 어렵다. 김정은(金正恩)정권은 핵선군체제를 유지하면서 외부의 반대 속에 중국 의존을 심화하는 노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선경제노선을 선택하여 국제사회와 연결하면서 정상국가의 길을 걸을 것인가의 기로에 있다. 20년 만의 권력교체가 대내외 정책변화에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아직 리더십의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특히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반대를 뿌리치고 지난 12월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 데 이어 핵실험 카드를 만지고 있어서 새 정부는 대단한 인내심을 갖고 대응해가야 한다.
향후 박근혜정부 외교의 5년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는 미중관계, 즉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 간 세력배분 구조의 변화다. 자고로 패권국의 쇠퇴와 부상국의 등장이라는 세력전이(power transition)가 일어나면 전쟁이 발생했다. 부상국은 기존 패권국이 만들어놓은 국제질서에 불만을 갖고 무력을 사용하게 되며, 기존 패권국 역시 경쟁국의 부상을 선제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국제정치에서 국력의 불균등한 발전과 세력전이는 항상적으로 있어왔다. 문제는 세력전이를 평화롭게 수용하는 국제체제를 만드는 일이다. 빠르게 부상하는 중국이 기존 지역질서를 어느 정도 뒤흔들어놓을지,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미국은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지, 예상 외로 빠르게 하강하는 일본의 공백과 이를 되돌리려는 그들의 노력은 지역질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이런 속에서 평화적 세력전이는 가능할지 등이 관건이다. 강대국 간 세력전이가 대립과 갈등을 수반한다면 한국은 줄서기를 강요받을 것이고, 경제부흥이나 영토・영해문제의 해결, 북한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협조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미중관계 변화의 파고를 넘기 위해 박근혜정부는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명박정부는 과거 노무현정부가 동북아 지역협력을 전면에 내걸면서 협력적 자주국방을 꾀하고 동북아균형자론을 논하면서 전통적 한미동맹을 훼손했다고 보고 동맹 복원에 전력했다. 그 결과 한미관계는 더없이 양호한 수준에 이르렀으나, 덩치가 커지면서 다양하게 펼쳐진 한국의 국익을 이러한 동맹노선으로 제대로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한 채 5년 내내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감수해야 했고 천신만고 끝에 비준한 한미FTA는 경제부흥의 열쇠가 아니었다. 이제 새 정부는 동맹외교와 아시아외교, 지역 및 지구적 수준에서의 다자외교를 균형있게 추구할 새로운 전략개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이 내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한반도 안전과 평화에 국한된 구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최근 국내 학계 및 정책써클에서 논의되고 있는 중견국 외교(middle power diplomacy)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견국이란 단순히 경제적・군사적 규모 면에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중간(medium–sized)국가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와 비슷한 규모의 국가들의 외교적 공통분모를 찾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특정한 외교속성으로서 규범외교, 지구적 다자외교, 틈새외교 등을 중견국 외교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는 호주와 캐나다의 경우로, 두 나라 모두 지정학적 위협에 당면해 있지 않은데다 상대적으로 자급자족적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는 가운데, 지구적 이슈들에 개입하여 국제공헌을 통해 자국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있고 세계경제의 변화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이 모델로 삼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개념이다.1) 이 글에서 주장하는 중견국 외교란 강대국에 편승하여 단기적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약소국 외교나 무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상대국을 밀어붙이는 강대국 외교를 지양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 혹은 지구 전체의 거버넌스와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외교를 뜻한다. 또한 강대국 중심으로 짜이는 지구적・지역적 패권 질서를 지양하고, 새로운 질서 조성을 위해 강대국 간의 소통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중재・중개자이자 주요 아젠다를 형성하고 질서를 설계하는 파트너로 기능하는 국가의 외교를 의미한다. 한국은 중견국 외교를 통해 미중관계의 험난한 파고를 넘고, 번영과 공생의 동아시아 질서를 건축하는 데 앞장서며, 평화의 한반도 거버넌스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2. 미중 간 세력균형의 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