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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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黃貞殷

1976년 서울 출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파씨의 입문』,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가 있음. aamudo@empal.com

 

 

 

장편연재 3(마지막 회)

소라나나나기

 

 

 

전생(前生)을 믿어?

나는 믿지 않아.

 

전생에 한번은 폭사(爆死)했다.

믿지 않는데 그렇게 믿고 있어.

 

때때로 꿈을 꾼다.

꿈을 꾼다기보다는 폭음을 듣고 꿈에서 깨어날 때가 있다. 폭음과 더불어 한토막으로 가볍게 공중을 날아 이윽고 바닥에 달라붙은 순간. 왼쪽 뺨이었을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 한토막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 태어나 금생(今生)에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반복해보는 것이겠지.

그렇게 믿고 있어.

전생의 흔적을 금생에도 간직하고 있는 나는 끈질긴 사람.

끈질기고 집요한 사람.

끈질기고 집요하게 너를 기다리는 사람.

 

왼쪽 뺨이었을 것이다.

뺨이라기보다는 얼굴에 가까웠다고 말할까.

왼쪽 귀와 왼쪽 눈꺼풀과 눈썹을 포함한 왼쪽 얼굴. 공중으로 떠올랐을 때 그 얼굴은 꿈을 꾸는 것처럼 보였고 황홀감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비참하게 한토막이었으나 감은 눈꺼풀 덕분에 너무도 평온하게 정지된 표정이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라기보다는 내 눈으로 목격한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인지도 모르겠어.

아마도 그것은 너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나의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너의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

너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

 

금생에도 이토록 집요하고 끈질기게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국 너의 죽음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엔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너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

 

밤에 바닥이 흔들렸다.

너울에 실린 듯한 진동이었다. 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하철 노선이 있었으나 전철은 이미 끊긴 시각이었다. 늦은 밤 지하의 선로를 오가는 빈 전차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었지만 진원은 그보다 깊은 지점에 있었다. 잠에서 깬 뒤로도 몇차례 미미한 진동이 이어졌다. 아마도 날이 밝고 난 뒤엔 지난밤 어디쯤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올 것이다. 낮의 더위가 고스란히 남은 어둠 속에 드러누워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잠에서 깨고 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눈에 덮인 오두막.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눈밭인 풍경이다.

 

나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전쟁을 겪었다.

피난길에 가족을 잃고 마찬가지로 피난 중이던 친척을 따라다니다가 전쟁이 끝난 후 오지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졌을 때가 일곱살 때였다고 한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사람들과 떨어져서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조그만 분지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의 오두막에서 서너해를 보냈다.

몇해를 보냈으므로 다른 기억도 있을 법한데 어째선지 겨울의 기억만 남아 있다고 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말 한마디 없는 겨울이 이어졌다고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방문을 열면 눈 덮인 풍경을 보았고 기온과 고도 때문에 늘 귓속이 멍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서 나무를 때 밥을 하고 솥에서 긁어낸 누룽지를 조그만 사발에 담아 그녀의 머리맡에 두었다. 눈을 뜨자마자 몸을 뒤집어보면 노란 누룽지를 담은 사발이 매일 머리맡에 있었고 그게 기뻤다고 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사람의 희로애락마저 모조리 덮어버린 듯한 눈 속에서 유일하게 기쁜 일이었으므로 더 기뻤다는 것이었다.

봄이 되자 어머니는 거기까지 그녀를 데리러 온 숙모에게 이끌려 도시에 있는 시장으로 나왔다. 숙모는 그녀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고 좋은 남자를 골라 시집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한 모양이었으나 실제 어머니가 겪은 것은 책 한권 읽어볼 짬도 없이 집안일을 하며 숙모의 갓난아이를 돌보는 식모살이였다. 아이가 어느정도 자란 뒤로는 숙모의 가게에서 국밥 파는 일을 도왔다. 숙모는 지출을 줄이려고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세 끼니와 머물 장소와 약간의 용돈으로 그녀를 부리다가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시장에서 알고 지낸 사람에게 신접살이용 이불 한채를 얹어 시집보내주었다고 한다. 가족끼리 사정을 봐주어야 한다는 말이 숙모의 입장에서는 꽤 유용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이 숙모와 여태도 연락을 주고받으며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찌됐든 숙모가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와 그 산골에서 살았을 것이고 그렇게 사는 삶밖에 몰랐을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하루는, 하고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이따금 듣는다.

시장에 할아버지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숙모의 손에 잡혀 분지를 떠나온 이듬해인가 그 다음해의 일로 그가 방한복을 잔뜩 차려입은 촌로의 모습으로 국밥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조카를 빼앗아가려 왔다고 여긴 숙모는 국밥 한그릇 대접하지 않고 그를 모르는 척 내버려두었다. 사람 북적이는 장소를 고집스럽게 피해온 그가 무슨 이유로 그곳을 방문했는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그 일을 두고두고 안타깝게 여긴 듯 그 조그맣고 마른 노인이 마루 끝에 앉아 있다가 빈속으로 먼 길을 돌아갔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살던 곳에서 홀로 살다가 죽었다. 군사분계선 부근에 무덤이 있다. 평소엔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곳으로 성묘를 하러 오르려면 출입허가를 받고 총기를 소지한 군인과 동행해야 들어갈 수 있는 산속 비탈에, 무언가를 기다리듯 북쪽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놓여 있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는 어포와 과일 몇가지와 술을 조금 챙겨 그곳을 방문한다. 사람 발길이 닿지 않고 조그만 짐승들만 오가는 곳이라 작년에 덤불을 잘라가며 낸 길이 올해는 감쪽같이 사라져 다시 방향을 가늠하고 길을 내며 올라야 하는 산비탈이다. 제사에 쓸 음식이 든 작은 꾸러미를 쥐고 햇빛도 들지 않는 비탈을 미끄러져가며 올라서 마침내 묘를 만나면 순자 왔습니다, 할아버지,라고 어머니는 말한다. 멧돼지가 엄니를 비비고 발굽으로 파낸 흔적으로 움푹움푹 팬 무덤 경사면을 정리하며 나도 이제는 할머니라서 못 온다, 힘들어서 내년엔 못 온다고 무덤을 향해 매년 불평한다. 작년에도 다녀왔고 가지 말자는 말이 없었으니 올해도 갈 것이다. 최근 두어해는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가지 말자고 말려보았는데 자신이 죽고 나면 아무도 찾지 않을 무덤이므로 살아 있는 동안엔 어떻게든 가보고 싶다는 것이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오두막은 지금쯤 흔적만 남았을 것이다.

나는 그 집을 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사과와 배와 어포를 올리고 무덤에 술을 뿌려 약식으로 제사를 지낸 뒤 거기까지 동행한 군인에게 몸을 좀 덥히라고 술을 나누어주었다. 근무 중이라며 끝내 받지 않는 군인도 있었으나 대개는 받았고 마찬가지로 대개는 구석진 곳에서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며 나누어받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가 먹고 마시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무덤을 등지고 앉은 채로 건너편 산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가을 산이었다. 나뭇가지에 달린 잎들은 바싹 마른 채로 바람에 흔들렸고 공기는 싸늘했다. 어머니는 몇겹으로 이어진 능선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가 저기 어디쯤에 그 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본 적이 없는데도 마치 본 것처럼 그 집에 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어머니에게 들은 그대로 눈으로 덮인 풍경이다.

분지 바닥에 조그만 집이 있다.

들어간 사람의 자취도 나간 사람의 자취도 모조리 눈이 덮어버렸다. 눈뿐인 바닥은 흐린 하늘과 구분되지 않고 집 뒤쪽으로 흐릿하게 솟은 능선도 하늘이나 바닥과 구분되지 않아서, 이 집은 푸르스름한 백지를 뚫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의 할아버지, 나의 증조부가 살던 오두막이다.

그 집에 관해 생각해볼 때 나는 얼굴도 보지 못한 그가 여태도 그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밤이고 낮이고 그는 검은 오두막에 불을 밝혀두었다.

기다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너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이렇게 한밤에 눈을 뜨게 될 때 나는 그것을 깨닫는다. 문득 손님이 끊기고 가게가 조용해질 때,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쉴 때, 방금 손질한 양파 껍질이 쌓인 쓰레기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운 햇볕 속에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랄 때, 너를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느낄 때, 말하자면 너를 향한 나의 바람이 가망 없다고 여겨질 때, 나는 이 집을 생각한다.

지붕에 쌓인 눈이 바람에 솟구쳐오른다.

그 광경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늙어버렸다.

 

밤이 무더워.

지진이 가고 난 뒤의 감쪽같은 적막에 잠겨 생각한다. 오늘 밤은 특히 무덥다. 냉장고에 다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에 놓인 만두는 이 밤이 가는 동안 쉬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거실에 마련된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 부엌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는다. 잡다한 사물이 바깥에서 들어온 가로등 빛에 모서리들을 드러내고 있다. 잠든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린다. 침대가 놓인 방에서 소라와 나나가 잠자고 있다. 그녀들은 어제 이 집에서 잠들었다. 어머니의 털양말을 빌려 신은 나나의 발이 침대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나는 어제 처음으로 모세라는 남자를 보았다. 소란을 듣고 나가보았더니 소라, 나나, 그 남자가 얽혀 기묘하게 서툰 몸짓으로 서로에게 달라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모세라는 남자는 키가 작았고 무거워 보이는 검은 머리에 안쓰러울 정도로 답답해 보이는 가죽구두를 신고 있었다. 입고 있는 셔츠에도 구두에도 땀이 배어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했다. 허탈한 듯 보였고 오히려 상처받은 것처럼도 보였다. 나나가 가라고 말하자 갔다. 그는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나나의 목엔 붉은 자국이 남았다. 눈과 코가 빨개진 채로 나나는 부들부들 떨었으나 금세 침착해져서 소라를 달랬다. 나나보다도 소란스러웠던 소라는 침대 모서리에 앉은 채로 딸꾹질을 하다가 잠잠해졌다. 어머니는 나나의 아기를 걱정했다. 아기도 나나도 괜찮다. 모두 잠들었다. 어머니도 잠들었다.

기름병과 소금단지와 고무줄로 묶인 밀가루봉지가 놓인 식탁에 어머니의 담뱃갑이 놓여 있다. 한개비를 빌려 현관을 나서고 보니 바깥은 실내만큼 어둡지 않다. 여름이므로 한두시간 뒤에는 해가 뜰 것이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골목 아래쪽을 바라보다가 조금 걸어보기로 했다. 집 앞 길바닥에 계란 깨진 흔적이 남아 있다. 노른자나 껍질은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길에서 사는 고양이가 핥아먹었을 것이다. 끈끈하게 남은 얼룩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빨아들인다. 이가 없는 자리에 건조하고 매운 연기가 둥글게 고이는 것을 느낀다.

너는 내가 담배 피울 줄 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나는 네 곁에서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 담배를 피우면 입맛이 쓰고 혀가 둔해져 조리에 영향을 받게 된다. 흡연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자주 피우지는 않도록 주의한다. 오래 피우면 몸에 냄새가 배게 되고 음식을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좋지 않다. 담뱃진이 밴 손가락으로 식재료를 만지면 고기나 야채에 쓴 냄새가 밴다.

 

어머니가 아기에 관해 말할 때 나는 조금 괴롭다.

예전엔 원망이 섞인 어조로 너는 만나는 여자도 없느냐고 이따금 물어왔고 그럴 때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가족을 잃고 쓸쓸하게 자란 어머니는 손주가 많은 시끌벅적한 가족을 소망하지만 그 소망이 덧없을 거라는 것을 아는 나는 씁쓸하고, 쓸쓸하다. 최근에 어머니는 손주를 언급하지 않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며느리는 바라지도 않을 테니 어딘가에서 아기를 만들어 데려만 오라고 말하곤 했는데 이제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 벌써 단념했는지도 모르고, 아직 단념하지 않아서 일부러 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후자로 일말의 소망 정도는 남겨두었을 것이다. 그녀가 그 정도의 소망조차 이루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이 서글프다.

 

내가 자란 집에 관해 말해볼까.

이 집에 관해 제대로 말하려면 말보다도 그림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언젠가의 너 역시 세상에 그런 집이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잘 상상하지 않으려 했으니까. 그런 집이었어. 벽을 사이에 둔 둘이자 하나의 공간. 활짝 펼쳐진 나비 날개처럼 혹은 어두운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로 나뉘었으나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좌우가 뒤바뀌는 각각의 반지하. 완전한 지하가 아닌데도 현관 근처나 밝을 뿐 한낮에도 불을 켜두어야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 있는 이 어두운 집에서 나는 말없이 이것저것을 상상하며 조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와 내가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벽 건너편엔 이사가 잦았다. 사는 사람이 자주 바뀌었고 한동안 혹은 오랫동안 비어 있기도 했다. 그쪽으로 이사 들어온 사람은 종일 집을 비우거나 종일 집에 머물렀다. 어느 쪽이든 말이 별로 없었고 현관에서 마주쳐도 사람을 보았다는 기색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 사람들이 화장실을 남의 것으로 여기고 지저분하게 사용한다며 불평하고는 했다.

나는 이 집에서 소라를 만났고 나나를 만났고 그녀들의 어머니인 애자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다.

애자 아주머니에 관한 어머니의 생각은 어머니가 곧잘 만들곤 하는 조각보처럼 다양한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는 듯하다. 어미로서는 몹쓸 지경이지만 사람으로서는 안됐다. 사람으로서는 안됐으나 어미로서는 몹쓸 지경이다. 이렇게 전혀 다른 감정으로 뒤집히곤 하는 두가지 경우로 요약해볼 수 있지 않을까. 애자 아주머니는 소라와 나나가 어렸을 적엔 내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가보거나 목욕탕에 가거나 별다른 말은 없어도 둘러앉은 자리에 앉아 있곤 했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과 관계를 거절하고 점차 그리고 조용히 망가져갔다. 망가져갔다는 말은 그녀의 지금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적합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완성되었다거나 완전해졌다고 하는 것이 적합할까. 이렇게 말해볼까. 오랜 세월 점차로 그리고 조용히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완성하고 완전해졌다, 껍데기처럼 그것을 그녀는 뒤집어썼다.

그녀에 관해 언제고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녀에게도 그녀의 딸들에게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날 문득 나타났던 것처럼 조만간 벽 건너편에서 문득 사라질 것이고 그 넓고 기묘한 공간에 언제나처럼 나는 혼자 남겨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앞에서 불편하거나 불쾌하거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스쳐가고는 했던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도깨비.

나는 그들을 그렇게 여겼다.

말 한마디 없이 발소리를 내며 걸어다니다가 어느날 문득 반대쪽 공간을 비우고 사라지는 사람들.

한밤에 홀로 잠에서 깰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 나는 내 방을 빠져나온 뒤 어머니의 방 앞을 지나 벽 반대편으로 건너가곤 했다. 어느 계절이든 자는 동안 배어나온 땀으로 등이 약간은 젖어 있었다. 그 땀이 다 마를 때까지 반대쪽 벽에 등을 대고 서 있다가 내 잠자리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즐거웠다거나 색다른 모험을 해보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벽 건너편은 비어 있을 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다. 어느 경우든 약간은 무서웠다. 내버려두면 더 무서워지니까. 무섭다고 생각할수록 그것은 더욱 무서워져서 어머니와 내가 잠든 공간으로까지 꾸역꾸역 넘어올지도 모르니까. 소라와 나나와 애자 아주머니가 들어온 뒤로도 그런 밤은 몇차례 있었다.

소라와 나나에게는 짐이 거의 없었다.

그들이 워낙 기척 없이 그 집에 들어왔으므로 어느날이고 사라질 때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자매는 여태도 근처에 있고 이제 내게는 그 편이 자연스럽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를 따져보는 것도 새삼스러울 만큼 자연스럽게 되었다.

소라와 나나, 그녀들은 이미 다 자란 모습이지만 지금도 나는 어렸을 때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는 한다. 어떤 순간의 모습이다. 애자 아주머니가 나의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가곤 했던 시절의 일이었다. 내 어머니는 시장에서 과일을 팔았다. 이차선 도로를 따라 길쭉한 포도송이 모양으로 자란 재래시장 끄트머리에 가게가 있었다. 도로를 등지고 파라솔 세개를 잇댄 좌판이 놓인 자리였다. 이 자리에 이끌려 나간 날에 애자 아주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파라솔 아래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거나 과일을 파는 내 어머니를 바라보았고 어머니는 그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소라와 나나와 나는 그런 오후에 그녀들을 보러 거기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시장을 통과해 어머니의 가게로 가는 길엔 여러개의 좌판과 상점을 지나야 했는데 중간쯤의 모퉁이에 딱 한 사람이 앉을 만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재봉틀처럼 생긴 묵직한 기계로 고추와 마늘과 생강을 갈아 팔았다. 그 기묘하게 생긴 기계의 꼭대기엔 금속 깔때기가 솟아 있었고 측면엔 청록색 바퀴가 달려 있었다. 깔때기에 마늘이든 뭐든 담은 뒤 아래쪽의 페달을 밟으면, 바퀴가 스륵 돌면서 깔때기에 담긴 내용물이 몸체로 빨려들었다가, 전면에 달린 혓바닥 모양의 배관을 통해 바닥에 놓인 고무그릇으로, 반액 상태가 되어 흘러내리는 구조였다.

어느날 소라와 나나와 나는 그 작은 모퉁이에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자리의 상인인 할머니가 노랗게 질린 얼굴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붙들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 왼손에 수건을 둘둘 감는 참이었고 수건엔 순식간에 검붉은 얼룩이 번졌다. 소라와 나나와 나는 사람들 뒤쪽에서 그것을 보았다. 나중에 당도한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며 상황을 물었고 누군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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