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2013년에 무엇을 해야 하나

 

학벌서열체제를 어떻게 깰 것인가

 

 

이재훈 李宰勳

한겨레 월간 사람 매거진 『나·들』 기자. 약 2년간 교육부 출입. 공저로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가 있음. plutos14@hanmail.net

 

 

사람들은 5년 동안 무엇을 필요로 할까

 

18대 대통령 선거가 박근혜(朴槿惠)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선거 직후 며칠 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곧 민주진영의 패배에 대한 다양한 분석 혹은 힐난이 쏟아졌다. 분석은 주로 ‘50대의 보수화’에 방점이 찍혔고, 힐난은 2008년의 ‘20대 개새끼론’1)에 짝지은 ‘50대 개새끼론’으로 집중됐다. 그리고 ‘반 박근혜’와 ‘반 새누리당’에 전략을 집중한 채 선악의 단순 구도를 긋고 ‘성전(聖戰)’에 나서듯 선거를 치른 민주당의 우매함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우려되는 일단은 인터넷방송 <나는 꼼수다>로 대표되는 ‘닥치고 (반 새누리당) 정치’를 통해 분출된 집단적이면서도 일면 종교적인 열광의 에너지가 결국 차가운 패배라는 결과로 남게 됐다는 점이다. 집단적이고 종교적인 열광 뒤에 찾아온 패배는 길고 긴 탈진과 냉소의 시간을 예견한다.

하지만 2012년에 치러진 두차례의 큰 선거와 그 결과가 내게 예고한 것은, 탈진과 냉소라기보다는 ‘위대한 봉기들’(6월 민주화운동과 노동자대투쟁)로 시작됐던 1987년체제의 종말이었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중심이 됐던, 반민주에 대항하는 민주화라는 테제가 더이상 핵심 화두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했다. 200717대 대선 결과를 보고 의심을 품었던 이 명제가 이번 선거 결과로 더할 나위 없이 확실해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의 노동자들은 내전과 혁명, 계급전쟁을 치르며 노동계급의 힘을 공고화해온 유럽과 달리,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대한 요구마저 ‘정치파업’이라는 레떼르를 붙이고, 컨설팅까지 받으면서 사적 폭력을 동원해 노조를 파괴하는 척박한 천민자본주의의 현실에 처해 있다. 그런 현실 앞에서 대부분의 정규직 노동조합은 몸을 옹송그리고 자신의 이익연대 안에서만 똘똘 뭉쳐,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혹은 공장에 들어오지조차 못하는 외부의 ‘잉여’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다. 1987년체제의 소진을 말하는 건 그런 까닭에서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는 불의와 반민주에 즉자적으로 분노하던 시대였다. 그 분노에 대학생이 앞장섰고, 넥타이 부대가 손뼉을 쳤으며,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일으켰다. 하지만 25년의 세월 속에서 민주주의는 어느덧 일상화됐다. 불행히도 사람들은 더이상 민주주의라는 낱말에서 어떤 절박함을 느끼지 못한다. 어쩌면 민주주의에 대해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 상황이 되레 민주주의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명박정부 5년 동안 민주주의에 대해 절박함을 호소했던 이들이 대부분 그전 10년간의 민주정부에서 상대적으로 혜택을 입었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고민할 수 있어야, 다음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도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정부 10년이나 이명박정부 5년이나 비슷하게 힘들었다. 그 배경에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극심해진 경제적 양극화, 노동자에 대한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해진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심화가 있겠지만, 민주화 담론만으론 감당하지 못하는 경제적·사회적 계급격차에 대한 민주진보진영의 인식 부족과 무능력도 큰몫을 했다. 그렇기에 1987년 민주화운동의 기억은, 그 당시 대학에 다녔거나2) 대도시에 살았던 엘리트계층 일부에게만 강렬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2012년의 두차례 선거 결과는 그 기억이 동세대의 집단적 체험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케 했다.

왜 그랬을까. 1987년체제는 ‘위대한 봉기’였음에도 분명한 한계와 오류를 가지고 있다. 나는 1987년 민주화운동이 ‘운동’에 머무른 채 ‘혁명’으로 호명되지 못하는 한계와 오류 가운데, 사회재생산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체제를 전복하지 못했던 점이 주요하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립대 공공화를 바탕으로 대학 평준화를 이루며 고등교육체제를 전복했던 프랑스의 68혁명3)과 달리, 한국의 1987년 민주화운동은 기존의 학벌 엘리트주의에 조금도 손대지 못한 채 5년 단임 직선 대통령제라는 대의정치제도의 민주화만 쟁취해냈다. 어쩌면 불의한 군사정부를 향해선 정치권력을 내놓으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대학생 자신들이 가진 학벌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은 외면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학벌 엘리트주의는 온존하게 됐고, 사립대는 공공화는커녕 199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를 만나 더욱 팽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으며, 지방의 거점 국립대는 이런 사립대와의 경쟁에서 밀려 점점 더 소외되어갔다. 서울대와 주요 사립대, 그리고 그 졸업생들을 받아들일 일자리가 모여 있는 수도권은 점점 더 커져갔고, 팽창한 수도권 중심주의는 또다시 학벌서열체제를 필요조건으로 재생산하며 서로 공생했다.

 

 

경제계급에 따른 학벌 프리미엄 격차

 

소수의 승자가 서열 상위를 차지해 사회적 자본을 독식하는 이런 구조에서 사람들은 더불어 공존하는 삶보다는 일단 나부터 잘 사는 삶에 갈급하게 됐다. 그 핵심에 자식 교육이 자리잡았고, 연간 20조원(정부 추산)이 넘는 사교육비가 경쟁적으로 투입됐다. 내 자식이 남의 자식을 짓밟고 올라설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앞다투어 투입하는 사교육비는 그러나, 그 부담 능력이 충분한 부모, 빚을 감수하며 겨우 부담하는 부모, 빚을 감수할 능력마저 없어 부담하지 못하는 부모로 계급을 나누어놓았다.

서울 강남에 살면서 초·중·고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가구의 사교육비 지출액은 월평균 114만여원이었다.4) 이 중에서 월평균소득이 1000만원 이상인 가구는 월평균 160만여원의 사교육비를 쓰고 있었다. 월평균소득이 600만~999만원인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134만여원이었다. 같은 조사 방법이 아니어서 정교한 비교는 힘들지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