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2012년과 2013년
김용구 金龍龜
미래경영개발연구원장. 저서로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현재와 미래』(공저), 보고서로 「정부인사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비전」 「학습국가와 국가비전전략」 등이 있음.
백낙청 白樂晴
서울대 명예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인. 최근 저서로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2013년체제 만들기』 등이 있음.
이상돈 李相敦
중앙대 법대 교수. 2011~12년 한나라당 비대위원,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 역임. 저서로 『미국의 헌법과 대통령제』 『조용한 혁명』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등이 있음.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글로벌협력대학 교수, 경제학. 저서로 『한국형 네트워크 국가의 모색』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 『중국의 농촌개혁과 경제발전』 등이 있음.

ⓒ이영균
이일영(사회) 오늘 대화에서는 2012년과 2013년의 의미와 성격을 짚어보면서, 요즘 시대교체라는 말이 회자되듯이 새로운 시대가 어떤 것이며 한국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또 18대 대선이 끝나고 2013년이 됐는데 분위기가 13대 대선 직후인 1988년초와 비슷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쪽에서는 안도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퍽 실망한 것 같습니다. 시구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빗대어, 2013년이 왔는데 오지 않은 것 같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또 청소년들이 만들어내 유행시킨 ‘멘붕’(멘탈mental 붕괴) 같은 말이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널리 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권 지지층도 선거 승리는 했지만 그렇게 흔쾌한 심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최근 경제가 아주 어렵다고 하고, 대기업이나 금융권에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걱정도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2012년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것이 2013년을 헤쳐나가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세분 선생님을 모시고 여기에 대해 의미있는 말씀을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들 유명하시기 때문에 제가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돌아가면서 작년의 경험을 말씀해주시고 자기소개도 곁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
백낙청 이일영 선생부터 커밍아웃하시지요.(웃음)
2012년 총선과 대선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이일영
이일영 제 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2012년 제 상황이 조금 복잡해서요. 오래전 이야기부터 드리면, 1987년말 88년초 대선을 치른 시점에 제가 대학원생이었는데요, 그 당시 민주화의 열망이 높았지만 대선 결과를 보며 실패했다는 생각이 퍼져 있었고, 그래서 젊은 연구자들끼리 좀더 과학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해서 연구회도 만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경제학 전공자로서 지금까지 정책연구를 해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작년 4월 총선에서 갑자기 충격을 받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87년체제를 넘어 새로운 질서로 나아가야 한국경제가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편이었는데, 4월 총선을 보고 나니 기존 야당의 역량으로는 문제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세력에 의한 경제혁신이나 정치혁신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널리 있었고 그 열망이 안철수(安哲秀)현상으로 나타났던 것 같아요. 경제학 용어로 말하자면, ‘듀오폴리’(duopoly, 복수독점 내지 양자독점)라는 독점체제, 즉 양자가 기득권질서를 이루면서 끊임없는 정치적 불안정이 나타나고, 이런 것들이 경제를 개혁하고 혁신적인 성장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었고요. 마침 안철수현상이 나타났고, 그 기대가 특정한 지도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열망으로 이어졌죠. 물론 불안감도 있었죠.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안정화하는 데 일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무적인 개입은 한 적이 없지만, 안철수 캠프의 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해서 보탬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름 노력했지만 어떤 분들께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덤벼든 게 아니냐는 질책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도 자기성찰을 해야 합니다.(웃음) 이 정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용구
김용구 저에게는 국가경영 관점에서 2012년이 좀 특별한 해였습니다. 그동안 이명박(李明博)정부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고 무엇보다 공공성 가치가 허물어지는 상황에서도 한나라당 지지율이 계속 야당보다 높았죠. 이런 현상이 잘 이해되지 않다가 2012년 1월이 되면서, 제가 보기에는 책임정치 차원에서 정상적인 국면, 즉 야당 지지율이 모처럼 올라가는 걸 보면서, 총선과 대선이 국민 입장에서는 올바른 것을 올바르게 보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보는 선거가 될 수 있겠다고 기대했어요. 그런데 4·11총선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죠. 그래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분석하면서, 이것이 12월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숙고했지요. 일반 기업이나 국가 공공조직은 대형 행사를 치르거나 어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그에 대한 평가를 담은 보고를 하게 되는데, 당시 1월까지 높은 지지율을 얻었던 민주당이 4·11총선에서 실패했음에도 제대로 된 보고서가 나오지 않고 시간만 흘러가는 걸 보면서, 정말 문제가 많구나 싶었습니다. 야당이 문제가 많으면 여당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전반적으로 이번 대선이 책임정치 차원에서 순탄하지 않겠다고 짐작했죠. 그런 관점에서 대선 진행과정에 주목하다가, 제가 예전에 정당의 비전 수립과 조직설계를 컨설팅해준 경험도 있고 해서, 이번 대선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일지를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이번 대선의 핵심은 후보의 학습역량이라고 생각했어요. 둘째로는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참모진의 능력이죠. 그 능력이란 전문성, 개방성, 확장성이에요. 아무튼 본인의 학습능력이 높고 휘하에 역량있는 참모진을 둔 후보가 여야를 막론하고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2012년 중반에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을 지켜보면 후보가 결정되는 과정에서 열정적인 비전이나 몰입이 나오지 않았지요. 후보가 결정된 후에도, 대통령 후보라면 당에 대한 전권을 갖기 때문에 지난 총선에 대한 평가를 포함해 당의 혁신방향이 나올까 했더니 결국 안 나왔죠. 그런 흐름을 보면서 안타까웠어요. 반면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을 보면, 어쨌든 아까 말씀드린 학습능력이 선거과정에 상당히 반영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박근혜(朴槿惠) 후보가 야당의 주장을 대폭 섭취하고 많은 아젠다를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학습능력을 보여준 사례죠. 선거 흐름을 보면 본인의 말에 대해 고객인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또 야당의 주장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하루에 몇번씩 점검하지 않았나 할 정도로 민첩한 대응을 한다고 느꼈습니다. 야당 지지자 입장에서는 이명박정부가 민주공화국의 기본을 무너뜨리고 공공성 차원에서 너무 많은 실책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올 거라고 단정했던 건데, 그게 안 됐죠. 저는 이번 선거를 계기로 특히 야당이 새롭게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학습하는 방법 자체를 학습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일영 김원장님께서 계시는 미래경영개발연구원에서는 대선후보나 정당의 역량을 평가하는 일도 하는지요?
김용구 국가경영의 성공 차원에서 기업이나 공공조직뿐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후보나 정당의 성공요인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는 관여하지 않았습니다만, 2008년 2월 민주당의 비전 수립을 컨설팅한 적이 있었고, 그전에 중앙당 조직설계에 대해 자문한 적도 있었지요.
이일영 그러면 이상돈 교수님, 워낙 언론에 많이 노출되셔서 잘 알려져 있으신데요. 말씀해주시죠.
여권의 신승과 야권의 좌절, 그 원인은

이상돈
이상돈 2012년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지 않습니까?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도 이른바 진보진영이 상당히 좌절했던 거 아닌가요? 어쩌면 지금보다 더 무력했다고 봅니다. 대선만 뺏긴 게 아니라 총선에서 의석을 그렇게 빼앗겼으니 대단히 무력감을 느꼈겠죠. 이명박 대통령이 보수의 힘을 타고 된 것은 아니잖아요. 중도실용을 표방했는데 집권 초기에 그야말로 곤경에 빠지니까 보수의 힘을 내세워서 극복하려고 하는 바람에 우리 사회에서 진영논리가 강화돼버렸죠. 당시 여권의 유력 정치인이었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이명박정권의 관계는 한국정당사에 별로 없었던 사례였어요. 제가 알려지게 된 것도 전통적인 야권 인사가 아니면서 정부비판을 했기 때문이죠. 그런 사람이 김종인(金鍾仁), 윤여준(尹汝雋), 저 이렇게 셋 정도였어요. 따지고 보면 한나라당이 이명박정권의 실패로 겨우 버텨왔지만, 거기에 참여하지 않은 플레이어가 있었고 그것이 씨앗이 돼서 지금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또 오세훈(吳世勳) 전 서울시장의 어리석은 행동도 작용했지요. 사실 오세훈이 당을 구한 거죠. 일등공신이에요.(웃음) 박근혜 전 대표가 김종인 박사와 저를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해서 전에 없는 시도를 했던 것이 2012년 1년간 유효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한나라당이 최저점을 찍었던 게 1월초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 이후 내부갈등에도 불구하고 쇄신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서 호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반대세력도 많았어요. 새누리당 재창당 과정에서 극복할 건 극복하고 타협할 건 타협했죠. 정치란 이상만 추구하는 게 아니니까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4·11총선에서 선전했고, 선거 막판에는 운도 따랐죠. 정통민주당이 튀어나와서 몇군데서 도움을 줬고, 김용민(金容敏) 막말파문도 있었고요.(웃음) 대선도 결국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선거가 진보 대 보수의 대격돌이고 보수가 거기서 승리했다고 하지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