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지식의 정치와 새로운 인문학
‘공공’ 연구의 확장을 위하여
백영경 白英瓊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문화인류학 및 과학기술학. 저서로 『프랑켄슈타인의 일상』(공저), 역서로 『유토피스틱스』 등이 있음. paix@knou.ac.kr
1. 새로운 인문학의 실험들과 ‘공공(公共)’의 의미
우리 사회의 인문학이 총체적 위기에 처해 있다는 논의는 이미 해묵어 진부하기조차 하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들어 대학 안팎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인문학의 실험들이다. 일반적으로 인문학 위기의 증거로 제시되는 성과주의의 위협이나 학생들의 외면, 학문적 재생산 기반의 붕괴 등은 기실 주로 대학 내의 제도화된 인문학 연구를 둘러싼 상황이며, 막상 대학을 벗어나면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한다.
지난 몇년 동안 성인학습자들을 대상으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학과에 근무해온 필자 개인의 경험으로 보아도,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뜨겁다. 그간 시장만능주의적 흐름 속에서 비단 인문학뿐 아니라 성과지표로 바로 환산될 수 없는 모든 분야의 입지가 축소되어온 것이 일반 대학들의 현실이다. 하지만 역으로 경쟁과 효율성만 강조하는 바로 그 사회적 변화가 대중 속에서 인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갈증을 낳고 있다.1) 이러한 요구에 힘입어 대학 바깥에서 많은 대안적 인문학 교육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 대세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실천인문학·평화인문학·사회인문학·통합인문학·시민인문학 등 대학 내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는 중이다.
새로운 인문학의 실험들은 대학 틀 안에 제도화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나온 만큼 학계가 아닌 사회를 지향하며, 인문학이 학계에서 인정받기 위한 활동으로 국한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학계 너머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공공성을 강조하는 이러한 흐름은 대체로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학계 바깥에 존재하는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흐름과, 기존 학계의 관심사를 따르기보다 사회적 의제를 중시하거나 나아가 사회적 의제 자체를 학술적 의제로 삼고자 하는 흐름, 즉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흐름이 그것이다. 물론 이 두 흐름이 언제나 선명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상당한 공통점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흐름으로는 거리의 인문학,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시민을 위한 인문학, 노숙자나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이는 주로 대학을 떠나 실제로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인문학 연구가 이바지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라는 차원에서 인문학의 공공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특히 이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인문학의 주체를 전문적인 연구자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인문학 하기를 통해서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꾀한다는 점이라고 하겠다. 그에 비해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흐름은 인문학 연구의 내용에서 무엇을 다룰 것인가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제도화된 인문학이 분과학문의 이해관계나 관행에 얽매여 공공의 삶에서 중요한 사회적 의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평화와 통일, 생태와 환경, 빈곤과 차별, 민주주의 등 공공의 삶과 관련된 문제를 다룸으로써 인문학의 공공성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새로운 인문학의 흐름들이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공공(公共) 혹은 공공성(公共性)에 대한 연구와 실천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고 할 때, 과연 여기서 의미하는 공공 혹은 공공성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사실 공공성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듣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를 확실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공공은 일반적으로 영어의 ‘public’의 말뜻을 따라 사사롭지 않은 것, 공동의 것, 열린 것 등의 의미를 지닌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한자어권에서의 ‘공공’이란 공(公)과 공(共)의 합성어로서, 공(公)이 공(共)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국가주의적 전통이 강한 동아시아에서는 “공(公)이 곧 관(官)으로 간주되는 사고”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2) 이렇게 볼 때, ‘공공’이란 개념의 의미는 그야말로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 신진욱(申晋旭)에 따르면 분석적인 차원에서 공공성 혹은 ‘공공적인 것’(publicness)은 다수 사회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모두의 필수 생활조건이자 많은 사람들의 공동 관심사인 한편, 만인에게 드러나야 바람직한 것이고, 세대를 넘어서는 영속성을 가진 문제이다. 이로부터 그는 책임성이나 민주적 통제, 연대와 정의, 공동체의식과 참여, 개방과 공개성, 세대간 연대와 책임 같은 규범적 가치를 이끌어내고 이를 지향하는 실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3) 그런데 이러한 논의는 공공성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데 필요한 분석적 범주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큰 도움이 되지만, 연대와 정의 혹은 공동체 같은 범주들이 사회마다, 또 시기마다 그 의미가 달라지게 마련임을 분명히해주고 있지는 않다.
사실 공공성이란 단지 그 의미를 또렷이 정의하고 성심껏 추구하면 되는 목표가 아니다. 공공성이란 해당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동 관심사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지, 혹은 어떠한 공간에서 그러한 공적인 문제가 논의되는지, 그러한 논의에서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에 따라 사회마다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회적 갈등의 현장에서 공공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구호는 쉽게 나오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익이나 공공성이라는 원칙에 동의한다고 해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공익이며 뭐가 공공성을 지키는 길인지 합의를 보기란 쉽지 않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갈등은 대체로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를 둘러싸고 일어나지 공공의 이익을 대놓고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각기 다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나 자료, 통계, 지식 등의 객관성과 과학성에 대한 싸움이 되곤 한다. 그런데 논란의 대상인 지식이 ‘사회적’이라고 할 때는 입장이나 전제, 해석에 대해 따져보려는 노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연이나 기술의 영역이라고 생각되면 그저 사실과 허위로만 구분되는 경향이 심하다. 보편타당한 지식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이런 믿음 때문에 공공이나 공익을 주장하려는 입장일수록 자신은 주관적인 견해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지식에 입각해 있음을 표방하려 한다. 그러나 공공이라는 것이 모두의 이해를 포괄하는 무엇이 아니듯 자연과학적인 지식이라고 해서 늘 보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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