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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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인간적이다』,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등이 있음. songsokze@hanmail.net

 

 

 

장편연재1

투명인간

 

 

투명인간이다,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세상에 존재하긴 하지만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람을 사람들은 투명인간이라고 한다. 당신은 아닌가? 축하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당신이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묵직한, 휘황찬란한 존재감이 있는 불투명한 인간인지를. 그게 욕인지 영예인지를.

당신이 투명인간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가. 간단하다. 전신을 비출 수 있는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서 정면을 바라보면 된다. 자신이 투명인간이 아니라 해서 투명인간이라는 게 있을 수 없는 개소리라고 떠들어대지는 말기 바란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70억 인류 중에는 별의별 인간이 있게 마련이니까. 무한한 우주와 자연의 신비한 세부에 대해 철두철미 무지몽매한 인간, 자신의 무식과 편견을 반드시 입증하고 마는 인간, 투명인간, 투명인간이 되기를 꿈꾸는 인간, 투명인간이란 불가능하다고 증명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는 인간, 평생 거울 한번 안 보는 인간 등등이 있다. ‘투명’이며 ‘인간’이며 ‘본다’는 것이 뭔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보인다’는 것 역시.

인간의 감각은 착각의 연속이며 오해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감지하는 사물의 색상은 대상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대상에서 반사되는 빛의 파장에 의해 주어진다. 빛, 그리고 반사가 없으면 형태, 움직임, 배치도 알 수 없다. 당신이 거울 속의 당신을 보는 것은 실은 빛의 반사의 반사를 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은 눈으로 본 것을 보는 게 아니라 뇌가 보았다고 믿는 것을 본다. 눈으로 본 것을 뇌가 제대로 해석하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못 본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못 본 게 맞다. 결론적으로 당신은 당신 자신을 영원히 볼 수 없다. 당신이 당신을 볼 수 없다면 당신은 투명인간이라도 된단 말인가? 당신이 투명인간이라는 데 나와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 데 당신은 동의하는가? 이쯤 해두자. 나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나는 투명인간이다. 내가 투명인간이니 지구상의 절반쯤 되는 다른 사람들도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절대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나 소나 다 투명인간이면 나는 투명인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게 문제다. 당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 당신의 문제로 만들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투명인간이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무색, 무미, 무취한 순수한 물 같지만 주위의 빛이나 온도, 먼지농도에 따라 샥스핀 수프처럼 멀겋게 보이기도 한다. 유감스럽게도 많은 여성들이 갖기를 희망하는 아른아른하게 투명한, 아주 얇게 거죽을 깎아내고 ‘물광’을 낸 것 같은 도자기 피부와는 다르다. 어떤 고명한 외과의의 손길에 의해, 첨단 과학기술이며 유전자 조작이나 줄기세포 이식 따위에 의해 피부가 유리처럼 투명해지고 피부 아래의 선명한 생체조직과 핏물을 보여주게 된다면 제 꼬라지를 본 사람은 모두 발광해버릴 것이다. 그건 확실하다.

콩밥을 먹어보았는가. 실제 콩밥에는 콩이 기껏 일이십 퍼센트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밥의 재료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위주로 이름 짓는다면 콩 십 퍼센트짜리 밥은 쌀밥이나 보리밥이어야 한다. 옛적의 꽁보리밥이 아닌 요즘 보리밥에는 보리보다 쌀이 훨씬 많다. 보리밥은 사실상 쌀밥이다. 어쨌든 투명인간에도 나처럼 백 퍼센트 순수한 투명인간에서 김밥을 둘러싼 김처럼 얇은 거죽만 투명하고 시커먼 속이 그대로 드러나는 인간까지 골고루, 가지가지 다 있다. 콩밥·보리밥의 사례처럼 일 퍼센트 투명인간도 투명인간이라고 하다보니 투명인간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잡스러운 투명인간이다.

누가 뭐라건 간에 나는 투명인간이다. 지구상에는 평생 단 한번 투명인간을 생각해본 적도 없이 살다 죽는 사람이 태반이다. 거기에는 이미 자신도 모르는 새 상당 수준 ‘투명인간화’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투명인간이 될 소질, 운명을 타고난 아기가 일찌감치 완벽한 투명인간이 되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면(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이후에도 한동안 울음소리나 냄새는 날 수 있다) 현실적으로는 영구 미제의 영유아 유괴사건으로 처리되는 게 보통이다. 또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 겨우 손톱이나 머리카락, 귀지 같은 피가 통하지 않는 죽은 세포만 투명화하는 경우도 있다. 투명화에는 심적, 물적, 인간적, 자연적인 것, 궁극적으로 삼라만상이 모두 포함된다. 투명화 정도에 따라 일반, 고속, 초고속, 정체, 지체, 지연, 부분정체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투명인간이 되는 결정적인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져 있지 않다. 하긴 흔하디흔한 감기를 치료하는 약도 없는 세상이니 이상할 건 없다. 제대로 된 감기약이 없는 건 감기 바이러스 종류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부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바이러스까지 워낙 다양한데다 감기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이 되는 원인 역시 감기 바이러스처럼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른 방식의 변이를 보인다. 유전, 우주선(宇宙線), 바이러스, 날벼락(청천벽력이라고도 한다), 외계인, 선택진화론, 숙명론 등등 갖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투명인간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다.

내게는 투명인간이 아닌 사람, 곧 ‘비투명인간’이나 ‘불완전한 투명인간’ ‘반 투명인간’ ‘투명해지고 있는 인간’이 모두 보인다. 반면에 나처럼 완전한 투명인간을 볼 수 있는 존재는 나 같은 완전한 투명인간뿐이다. 투명해지고 있는 인간, 반투명인간들은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데 오래전부터 그런 존재를 두고 신선이니 혼령, 도깨비, 귀신, 천사, 악마, 외계지성체, 나그네, 이방인, 유랑의 무리니 뭐니 하고 불러왔다. 당신이 잘 알던 사람이 어느날 잘 안 보인다고 해서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속단할 건 없다. 어디에 입원했거나 여행을 갔거나 당신이 꼴도 보기 싫게 지긋지긋해졌을 확률이 훨씬 높으니까.

나처럼 완전하고 순수한 투명인간이라고 해서 무슨 특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눈에 몸이 안 보이는 것뿐이다. 정상적인 생활, 아니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누리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투명인간에 따라서는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의 장애가 당사자와 그의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불편한지, 세상이 어떤 편견으로 장애인들을 대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비투명인간들 또한 우리의 고충을 모른다. ‘투명인간이면 아무 때나 은행을 털 수 있지 않느냐, 아무 목욕탕이나 골라잡아 들어갈 수 있지 않느냐, 남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지 않느냐’고 묻는 얼간이가 꼭 있다. 내 대답은 “그러면 뭐하는데?”이다.

단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은행 금고를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적절한 도구나 권한이 있어야 문을 열 수 있다. 문이 열리는 것, 돈이 든 자루가 공중을 오가는 것은 일반인의 눈에도 잘 뜨인다. 또 만난을 무릅쓰고 은행을 털어서 돈을 가지게 되었다 한들 쓸데가 별로 없다. 성형수술을 할 것도 아니고 명품을 온몸에 휘감을 이유도 없고. 옛 애인에게 돈다발을 집어던진다든지 무슨 의적처럼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집의 문간에 쌀가마니를 갖다놓는다든가 할 수는 있겠다. 정말 그러고 싶다면. 나는 스스로가 투명인간임을 지각하게 된 이후 그런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그런 통속적이고 뻔한 사고, 가치관이 나처럼 완전한 투명인간에게는 없다. 투명인간이 되면 가치관 역시 세속적 기준으로 볼 때는 투명해진다고 할지, 수도자처럼 성욕이며 인간사의 희로애락에 초연해진다고나 할지. 하여튼 그렇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고 싶다, 알고 싶다고? 그건 굳이 투명인간이 될 필요 없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투명인간과 상관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월급 받아가며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경찰·검찰·세무서·법원 등의 공무원, 수많은 고객정보를 관리하는 금융기관, 통신사, 유통회사, 인터넷 업체, 보안전문가, 해커, 기자, 술집 종업원, 의사,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비서, 개인운전기사 등등 몇천년의 역사를 가진 직업이 있다.

단언컨대 일상생활에서 비투명인간이 투명인간보다 못할 게 없다. 투명인간은 가능하고 비투명인간은 불가능한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양자가 다 불가능한 일은 자신의 의지로 투명인간이 되는 것, 또 투명인간으로 계속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만 한 우연성의 성채를 필연성이라는 비루먹은 말을 탄 기사가 혼자 힘으로 정복하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 말이 많았다. 나는 말이 많은 유형의 완전한 투명인간이다.

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투명인간도 더러 있다. 우선 나부터 그러니까. 내가 입는 일상적인 의복은 일반 사람들 눈에 보이지만 옷 밖으로 드러나는 부분, 그러니까 손이나 목이나 얼굴이나 머리칼이나 귀때기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웬 반바지와 티셔츠가 조깅을 하는 사람과 같은 속도와 높이로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다면 그건 어떤 부주의한 투명인간의 것이기 쉽다. 나는 그런 너절한 방식으로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 사람들 눈에 띄기 위해 자신이 투명인간임을 과시한다는 건 자기모순이기도 하다. 낯모를 행인에게 다가가서 모자를 벗겨 날려보내고는 무슨 엄청난 장관이라도 연출한 듯이 만족스럽게 낄낄대는 투명인간을 보고는 한심해하다 못해 아침에 먹은 라면을 토해버린 적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바람과 찬 공기, 비, 햇빛 등등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걷거나 뛰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복장을 갖춘다. 자전거는 빠른 속도로 인도와 차도를 달리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아,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은 필수품이다. 손에는 장갑을 끼어야 한다. 거기다 자외선과 날벌레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고글, 마스크와 버프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릴 수 있게 된다. 나는 자전거 인구의 급증에 대해 고마워하는 사람, 투명인간 중 하나다. 일반인처럼 보이기가 쉬워졌고 나 자신이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말이 난 김에 좀더 하자면 자전거는 자칭 지혜롭다는 인류가 발명한 것 가운데 지성과 감성이 제대로 발현된 최고의 도구다. 경제적이고 건강에 도움이 되고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이며 아름답다.

나는 여느 때처럼 자전거를 좀 타는 사람들이라면 약간의 질투심을 느낄 정도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복장을 제대로 차려입고 저녁에는 사실상 필요 없는 자외선 차단 크림까지 얼굴에 덕지덕지 바른 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자전거로 한강 다리를 통행할 때는 인도로 가야 하는데 인도가 좁은 경우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보행자, 특히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린다. 마주 쥔 손을 놓고 일렬로 서서 자전거를 피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끼리 서로 지나갈 때도 혹 부딪칠까, 만에 하나 자전거가 쓰러지며 난간을 너머 차들이 고속으로 달리는 차도나 까마득한 강으로 떨어지지나 않을까 싶어 불안하고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남의 주목을 끌기 쉽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인도가 넓은 마포대교나 한강대교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마포대교는 한강 서른한개의 다리 가운데 가장 투신자가 많아 ‘자살대교’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서울시에서 민간 생명보험회사와 함께 마련한 ‘생명의 다리’라는 이름의 자살예방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다리 한가운데 ‘한번 더’ 동상이라는 게 있는데 ‘(자살을 하기 전에)한번만 더 생각해보자’는 취지의 글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다리 남단과 북단 양방향 시작 지점에서 각 두개씩 총 네 구간에 보행자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쎈서를 설치하고 보행자의 움직임에 따라 조명과 메시지가 밝혀지게 만든 장치다. ‘한강 다리에서의 투신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희망 메시지’로 ‘세계 최초의 쌍방향 스토리텔링 교각을 조성하여 서울의 대표적인 힐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앞장선다’는 훌륭한 취지란다. 메시지에는 배우, 스포츠 스타나 종교인 같은 유명 인사가 쓴 것도 있고 일반인들이 올린 글이나 사연, 사진을 모집해 실은 것도 있었다. 예컨대 긴 띠처럼 다리를 따라가며 글자가 나타나는 대화형 메시지는 이런 식이다.

—밥은 먹었어? 잘 지내지? 별일 없지? 무슨 고민 있어? 음… 3년 전에,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는지 기억나?

이외에도 다리 양방향에 각각 네개씩 여덟개의 폴에 지능형 감시 카메라와 열 감지 카메라, 비상호출 벨과 언제든 상담원과 통화 가능한 ‘생명의 전화’를 설치해두기도 했다. 감시 씨스템은 다리에서 보행자가 난간 앞에 오랫동안 머무르거나 차량이 주행 중 갑자기 난간 옆에 정차하는 등의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자동으로 가장 가까운 수난구조대에 일차 경고신호를 보내고, 실제로 투신하면 구조대가 3분 안에 긴급 출동하도록 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본 모자 쓴 남자는 마포대교 남단 초입, ‘양보’라는 교통표지판 아래에서 출발해 다리 길이 구백여 미터의 절반을 넘어 걸어가면서 자살예방 캠페인의 문구 앞에서 한참씩 지체했다. 다리 한가운데 있는 ‘한번 더’ 동상과 거기 붙은 문구를 살폈다. 옛일을 회상하는 것처럼 멍하니 서서 강물을 보기도 하고 망설이듯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감시 카메라와 비상호출 벨, 스피커가 달린 폴 앞에서는 중간에 매달린 ‘CCTV 설치 안내’의 내용이 뭔지 자세히 알아보려는 듯 한참을 서서 읽었다. 누가 봐도 저 사람 혹시 저러다 투신자살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일단 그게 내 시선을 끌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미안하지만 나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신봉하는 사람도 아니고 누가 우물에 빠져 죽든 홍수에 집이 떠내려가든 구경거리가 있으면 재미있어하는 사람이다. 문제는 그 남자에 대해서 지능형 감시 카메라와 ‘생명의 다리’ 캠페인의 보행자 감지 쎈서 같은 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머리는 평균보다 상당히 큰 편이어서 쓰고 있는 야구 모자가 초등학생용 모자를 가져다 살짝 얹어놓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 큰 머리를 쎈서, 지능형 카메라, 열 감지 카메라가 식별하지 못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동태를 살피면서 뒤를 따라가다 그가 아예 걸음을 멈추면 추월해서 앞으로 가 그가 다시 몸을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기도 했다.

여름 저녁처럼 날씨는 푸근했다. 성급한 사람은 반소매의 옷을 입고 나왔고 바람막이 재킷을 걸친 사람이 간간이 보였다. 그는 겨울에 입는 긴소매의 점퍼까지 걸치고 있던 터였고 몸피도 평균 이상으로 컸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는 그의 곁을 스쳐간 행인이며 자전거를 탄 사람, 차량 운전자 수천명에게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보이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두워지는 다리 위를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자동차 운전자 중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 역시 다른 사람들, 세상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는 다리를 완전히 건너가서 자전거를 반대방향으로 돌렸다. 그런 뒤에 마치 처음으로 다리에 올라온 사람처럼 천천히 페달을 밟아 그가 있는 쪽으로 나아갔다. 최대한 천천히 그에게 접근한 나는 쎈서등이 켜지면서 드러난 흰 아크릴판의 ‘다 그런 거지 뭐’라는 문구와 하얀 접시 위의 빈대떡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는 그의 곁에 가서 자전거를 완전히 세웠다. 하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래 봐야 내가 걸치고 있는 복장과 장비밖에는 볼 수 없었을 것이지만. 자세히 보니 그의 나이는 쉰살이 넘어 보였으나 막 산골에서 걸어내려온 소년 같은 인상이었다. 그는 내가 투명인간이 되기 전에 알던 사람이었다. 김만수라는 이름이 섬광처럼 떠올랐으니.

나는 알았다. 그 또한 투명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그가 왜, 어떻게, 언제부터 투명인간이 되었는지를.

만수가 태어날 때 난 정말 죽는 줄 알았다. 만수는 머리가 유난히 컸다. 나는 스무살 때 결혼을 해 이듬해에 맏아들을 낳았고 삼년 터울로 두 딸을 낳았다. 애를 셋쯤 낳아보면 뱃속의 태아가 어떤 앤지 대충은 짐작이라도 하는 법이다. 그런데 만수는 하도 커서 쌍둥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결국 무지막지한 산통 끝에 배 속에서 나올 때 머리통이 수세미처럼 길쭉하게 늘어져서 나왔다. 여기가 이승인가 저승인가 하는 중에 시어머니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뭔 아가 대가리만 절구통겉이 크고 팔다리는 쇠꼬챙이겉이 빌빌 돌아가고 저카나. 저기 지대로 커서 인간이 될랑가 걱정일따.”

그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던가. 내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기를 봤다. 사지가 멀쩡하고 눈·코·귀·입이 달릴 데 다 달려 있었다. 손가락, 발가락도 열개씩이었다. 아기는 큰 머리에 비해 가느다란 몸통에 유난히 길어 보이는 팔다리를 달고 있었다. 그런 채로 늦여름 모기처럼 애앵애앵 하고 힘없이 울고 있었다. 아무리 아기가 그렇다고는 해도 ‘인간이 안될 바에는 차라리 포기하라’는 식의 말이 사람으로서 할 소린가.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 내 눈에서부터 눈물이 나는 게 억울하고 천불이 났다. 미역국이 놓여 있는 밥상을 걷어차버리고 싶었다. 당신들이나 많이 드시라고 소리소리 지르고 싶었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은 평생을 잊지 못한다. 당신은 내 남편 하나 열아홉살에 사대독자로 똑 떨어뜨려놓았더니 시부모가 침모·찬모·유모 다 붙여서 키워주더라고 그렇게 자랑을 하더라만, 평생 공자님·부처님같이 훌륭한 시아버지 곁에 붙어서 사랑스러운 마님 노릇을 하느라고 아무리 세상물정 모르고 철이 안 났다 해도 그게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리던가. 같은 여자 입장에서도 그런 말은 절대 못한다. 천벌 벼락 맞을 소리다. 아기가 돌 지나고 나서도 안 죽고 그냥 저냥 크니까 나한테 ‘미안타’ 하긴 하더라. 애도 하나밖에 안 낳아본 당신이 뭘 알겠느냐고. 알겠다고는 했다. 그래도 나는 그 말만은 절대로 못 잊는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가 않는다. 말은 안했지만 정말 피눈물 나게 힘들게 만수를 키웠다.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이상하게 만수를 낳고 나서는 젖이 많이 안 돌았다. 아기가 워낙 허약한 몸을 하고 태어난데다 젖도 다른 아기들처럼 제대로 먹이지 못하니 살이 오르지를 않는 것이었다. 삼칠일도 되기 전에 무릎걸음으로 밖에 벌벌 기어나가 산에서 밤톨도 줍고 추자(楸子, 호두)도 흔들어 따고 멧대추·칡뿌리·고욤 할 거 없이 닥치는 대로 구해서는, 수수·고구마·감자·좁쌀 같은 걸 넣어 암죽 끓여서 먹였다. 남편 모르게 금싸라기 같은 쌀을 씹어 뱉은 걸 죽으로 쒀서 식혀가지고 먹이기도 했다.

그때는 또 아이들 잡는 전염병은 얼마나 많았는지. 큰마마(천연두) 돌면 태반이 죽었고 후유증으로 평생 얽은 얼굴로 사는 사람이 동네에도 수두룩했다. 작은마마(홍역)만 해도 동네서 한 애가 걸리면 금방 그 또래 애들이 다 걸려가지고 앓고 백일해·감기·소아마비·천식, 뭐 해서 애들 낳으면 한 절반은 죽었다. 아기가 돌도 못 넘기고 죽으면 아비가 거적때기로 싸서 지게에 지고 산비탈로 가서는 산짐승 안 타게 나무 위에 올려놓고 오곤 했다. 밤중에 으앙으앙 하고 꼭 늑대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우훙우훙 부엉이 우는 소리 같은 울음소리가 들리면 나무에 포대기로 걸려 있던 애 중 하나가 황천을 건너갔다가 되살아온 거다. 내 배 아프게 하고 나온 아이 중에 아기 때 제일 황천 가까이 갔다 온 애가 만수였다.

시아버지가 한학에 서울의 대학까지 유학해 모르는 게 없다고 손주들 이름을 다 지어줬는데 맏이는 백살까지 살라고 ‘일백 백()’에 오래 살라고 ‘목숨 수()’를 붙여서 백수고, 맏딸은 천금처럼 귀하고 기쁘다 해 ‘쇠 금(金)’에 ‘기쁠 희()’ 하여 금희고, 둘째 딸이 해와 달처럼 환하다고 명희(明喜)다. 막내는 구슬처럼 예쁘다고 옥희(玉喜)다. 둘째 아들 이름은 무식한 내 소견에 백 다음이 천()이니 천수라 할 줄 알았더니 난데없이 백()의 백배인 ‘만()’을 써서 만수라고 했다. 그게 ‘많다’는 뜻도 된다고 한다. 셋째 아들은 크게 되라고 ‘클 석()’을 썼다는데 세번째라고 ‘석 삼()’을 쓸 걸 그렇게 한 것 같다.

만수 아버지가 관청을 참 무서워한다. 시아버지가 젊을 때 무슨 불온한 사상으로 감옥살이도 하고 패가망신에 집안 들어먹을 일을 저질러 온 가족이 야반도주까지 해서 그렇다고 한다. 읍사무소 공무원이 아기를 낳은 지가 언제인데 왜 이제야 신고를 하느냐고 닦달할까봐 바로 며칠 전에 출생한 것으로 했다 해서 잘했다고 했다.

만수가 출생신고 하고 밥을 먹기 시작하고 하니까 바로 다음 애가 섰다. 그래서 만수는 다른 아기 두돌까지 먹는 젖도 다 못 찾아먹었다. 금계랍(金, 말라리아약으로 쓴맛이 남)을 젖꼭지에 발라서 젖을 뗐는데 그때도 야물딱지게 제대로 울지 못하고 맥없이 이히잉이히잉, 했다. 제 할머니가 미안한지 어디서 얻어온 꿀이며 조청을 손가락 끝에 발라 빨리니 쪽쪽 소리 내며 잘 먹었다.

만수하고는 정반대로 두살 아래 석수는 울음소리도 우렁차고 몸은 뽀얗고 포동포동했다. 젖이 잘 나오기도 했지만 젖을 빠는 힘도 대단했다. 기운도 셌다. 만수에 비해 성장속도도 훨씬 빨랐다. 그러니 만수가 동생 젖을 얻어먹을 수도 없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들의 출생신고를 미루지 않아서 형제는 호적상으로는 한살 차이밖에 나지 않게 되었다.

 

며느리가 평생을 두고 나를 원망하는 말이 손자 만수를 낳을 때 내가 인간 안될 거라고 포기하라고 했다는 거다. 그건 며느리가 밤새도록 동네 떠나가라 소리 질러가며 진통을 하다가 새벽에 애를 낳을 때 구경인지 도우러 온 건지 한 이웃의 할망구가 한 말이다. 어떤 할미가 막 나온 손자를, 그것도 손 귀한 집에서 두번째로 본 손주를 두고 인간이 되니 안되니 못 생겼니 말았니 하겠나. 내가 그런 말을 했으면 천벌을 받는다.

만수가 머리는 좀 컸다. 삼칠일도 되지 않아 물동이를 이고 나서는 억센 며느리가 머리 큰 애 낳느라 생고생을 했는지 무슨 헛말을 들은 것 같다. 입만 열면 그 애기를 해대서 할 수 없이 내가 미안하다고 하긴 했다. 그랬더니 그것 보라고, 말을 했으면서 안했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이제 와서 바른말을 한다고, 자기를 등신으로 아느냐고 그렇게 구박을 했다. 그래 내가 죽을 때까지 평생 며느리 눈치를 봤다.

만수는 걸음마를 제 동생 석수랑 비슷하게 했다. 어미젖을 많이 못 먹고 배를 곯다가 동생 낳으니 그 젖이라도 얻어먹어야 하는데 며느리가 아무런 대책 없는 내게 만수를 떠안겼다. 만수가 울 때마다 내 마른 젖을 물렸다. 어찌나 세게 빨아대는지 양쪽 젖이 다 헐었다. 아파서 손가락을 입에 물리면 손가락이 퉁퉁 붓도록 빨다가 힘없이 울곤 했다. 만수 먹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