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강렬도의 미학과 장편소설

들뢰즈 문학론의 잠재력에 관하여

 

 

김성호 金成鎬

서울여대 영문과 교수. 역서로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헤겔, 아이티, 보편사』 『바그너는 위험한가』 등이, 최근의 글로는 「죽음과 죽음욕동의 담론들프로이트, 라캉, 하이데거」가 있음. shkim@swu.ac.kr

 

 

1. 이론의 영토성

 

질 들뢰즈(Gille Deleuze)가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타계한 1995년 전후일 것이다.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앞선 시점에 우리의 담론장에 진입한 푸꼬, 데리다, 라깡과 더불어 들뢰즈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전반에 거의 대중적이라 할 만한 인기를 누렸다. 이 시기에 들뢰즈의 주요 저작 대부분이 번역되었고, ‘유목주의’나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도주’냐 ‘탈주’냐, ‘판’이냐 ‘구도’냐 하는 번역어 논쟁이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들뢰즈에게 영감을 받은 이들과 다시 그들에게 영감을 받은 이들의 활동은 더 폭넓고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들뢰즈에 관한 새 책이 계속 등장하고, ‘기계’ ‘리좀(뿌리줄기)’ ‘도주선(탈주선)’ ‘되기’ ‘탈영토화’ 같은 표현이 어디선가 줄기차게 들려온다. 이를 보면 들뢰즈의 이론은 그사이 세를 확장해왔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제 들뢰즈는 들뢰즈주의자들이 둘러친 경계 바깥으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탈영토화 이론의 영토화라고나 할까?

이론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그 자기충족적이고 자기지시적인 성격이 강화되는 경향을 ‘이론의 영토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생소한 개념들이 더이상 쑥스러워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무한복제를 시작할 때, 또는 이론이 현실의 구체적 상황이나 다른 이론과의 대결보다 내부적 논쟁을 더 흥미로워 할 때는 영토화를 의심할 만하다. 개념의 사용이 불가피하듯 이론의 영토화는 얼마간 불가피하다. 그 주요 추진체가 다름 아닌 학적 엄밀성의 추구와 정서적 투신(둘 다 이론의 발전에 긴요하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영토화의 극단에 이론의 정신착란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때 이론은 황홀한 동어반복의 행위가 된다. 자기 모양대로 창조된 현실을 자기 모양에 따라 설명하는 데서 자기의 존재이유를 발견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하나의 위험이고, 들뢰즈주의뿐 아니라 라깡주의 같은 다른 이론도 경계해야 마땅한 위험이다. 이를 환기하는 것이 현재 들뢰즈를 지적・실천적 원천으로 삼고 있는 많은 이들의 진정성을 폄훼하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 덕분에 바로 이 글도 가능해진 것이다. 이 글에서 염원하는 바는 들뢰즈가 더 풍요롭게, 더 열린 광장에서, 더 많은 이질적 이론들과 ‘접속’되는 가운데 논의되는 것이다. 이를 들뢰즈 이론의 탈영토화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탈영토화가 이론의 대중화나 실천적 활용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탈영토화, 또는 도주는 들뢰즈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체계로 하여금 도주하게 하는 것”1)이기도 한데, 우리의 경우에는 이론이 자신의 잠재력을 해방하여 자신의 현재적 한계, 즉 해석적 동일성의 체계를 넘어섬을 뜻할 것이다.

이런 염원을 바탕에 깔고 이 글이 실제로 하려는 바는 들뢰즈의 미학과 문학론이 지닌 잠재력, 즉 여러가지 미학적 가능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들뢰즈 미학이나 문학론의 충실한 재현도, 그 난점과 공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도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우선 들뢰즈 미학의 일반적 특징과 그 함의를 제시해보고, 다음으로 카프카론을 중심으로 그의 소설 미학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2. 강렬도 미학

 

예술과 문학에 대한 들뢰즈의 생각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고 여러 저작에 산포되어 있다. 때로는 이 저작들 간에 분명한 이념적・개념적 연속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가령 「영미문학의 우월성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대화』(Dialogues, 1977) 제2장의 일부 대목은 들뢰즈와 가따리(Félix Guattari)의 공저 『카프카: 소수문학을 위하여』(Kafka: Pour une littérature mineure, 1975, 이하 『카프카』)의 축약판처럼 읽힌다. 『카프카』와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1980) 사이에도 널따란 공통지대가 있다. 그러나 들뢰즈의 논평들이 미학적으로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듯이 보일 때도 있다. 그가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 1969)에서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작품을 두고 펼치는 시뮬라크르와 ‘표면’의 담론은 『니체와 철학』(Nietzsche et la philosophie, 1962)에서 니체의 ‘징후학’을 매개로 전개하는 ‘힘’의 담론과 얼마나 다른가. 범박하게 말해 전자가 포스트모던한 ‘깊이 없음’이나 ‘무근거’의 미학을 지향한다면 후자는 좀더 모더니즘적인 ‘깊이’의 미학을 지시하는 듯하다. 물론 이 ‘깊이’의 미학은 본질의 재현을 추구하는 또다른 ‘깊이’의 미학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들뢰즈에서 ‘깊이’힘, 잠재태, 감각, 강렬도적인 개체화2), 그밖의 용어들로 지칭될 수 있는 내용의 예술적 ‘표현’은 실재의 재현이나 재인(再認, recognition)이 아니라 그 발생적 전개로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3)

예술적 표현을 실재의 발생적 전개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 표현을 실재에 대해 그저 이차적이지 않고 그 자체로 실재적이며 현재적인 사건으로 파악한다는 뜻이다. 예술적 표현은 현재진행형의 강렬도적 사건인바, 이 사건 안에서 잠재태는 현행의 체계와 질서에 대립하는 힘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그럼으로써 예술작품을 다른 존재자의 변용(affection)의 원인으로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잠재태는 현실적이지 않지만 실재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앞서 대립했던 ‘깊이’와 ‘깊이 없음’의 차이는 모호해질 수 있다. 미학에서 ‘깊이’란 일반적으로 형상(형식, 외연)과 그것이 지시하는 내용(내포) 사이의 거리를 가리킬 것이다. ‘깊이’가 성립할 때 현재적인 강렬도적 사건은 형상에 의해 재현된다기보다 우회적으로 지시된다.4) 하지만 사건이 형상을 극도로 왜곡하거나 폭파시킬 경우 그런 우회적 지시의 기능마저 붕괴된다. 형상과 내용의 거리는 사라지거나 극소화된다. 재현하는 형상 대신 어떤 것도 모방하지 않고 모방되지도 않는 강렬도 및 특이성들(singularities)의 세계가 들어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들뢰즈의 미학을 ‘강렬도 미학’으로 통칭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이 모더니즘적이냐 포스트모더니즘적이냐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혹은 그 두 종류의 (그리고 그밖의) 미적 정향을 모두 수용하면서 예술의 현재성을 조명하는 것이야말로 강렬도 미학의 한가지 강점이랄 수 있다. 물론 들뢰즈가 강렬도적 사건의 비형식성 또는 반형식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외의 들뢰즈 해석자들 역시 형식의 해체에 역점을 두고 그의 미학을 설명함으로써 들뢰즈의 ‘탈근대성’을 부각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형식’의 의미를 따져보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는 길게 논할 만한 쟁점이지만 여기서는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문학과 삶」이라는 글에서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글쓰기란 확실히 체험이라는 질료에 (표현의)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곰브로비치(Witold Gombrowicz)가 말하고 또 실천했듯이 문학은 형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 또는 미완의 것을 향한다. 글쓰기는 되기의 문제이며, 언제나 미완이고, 언제나 형성되는 와중에 있는바, 그것은 여하한 체험이나 체험 가능한 것이라는 질료를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 즉 체험 가능한 것과 체험된 것 모두를 가로지르는 ‘삶’의 도정(a passage of Life)이다.5)

 

이 반()아리스토텔레스적 진술에서 들뢰즈는 글쓰기를 질료와 형식의 인과론에서 빼내온다. 글쓰기는 질료가 형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질료와 형식을 동시에 넘어서서 특이성의 지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되기는 하나의 형식(동일시, 모방, 미메시스)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근방역(近方域), 식별 불가능성 또는 미분화(未分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