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누가 여성인가

박근혜 시대와 여성주의 정치

 

권김현영・권미혁・이유진・황정아 ©송곳

권김현영・권미혁・이유진・황정아  ©송곳

 

권김현영 權金炫伶

여성학자. 공저서 『성의 권리, 성의 정치』 『남성성과 젠더』 등이 있음.

 

권미혁 權美赫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역임.

 

이유진 李侑珍

한겨레 문화부 기자.

 

황정아 黃靜雅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영문학. 역서로 『왜 마르크스가 옳았는가』 등이 있음.

 

 

황정아(사회) 이번호 대화에서는 박근혜(朴槿惠) 시대가 여성주의 정치에 어떤 물음과 과제를 던져주는가 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성 대통령’이라는 대선 캠페인 구호에서 당선 이후의 ‘통치 스타일’이나 지지도에 이르기까지 박근혜정권에서 여성이라는 범주가 상당히 핵심적으로 동원되고 또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누가 여성인가’ 하는 여성 대표성에 관한 질문을 비롯하여 여성운동에 전과는 다른 종류의 질문들을 제기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오늘 대화의 배경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세분을 모셨는데 박근혜 시대 여성운동이라는 주제를 아주 풍부하게 조명해주실 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종의 워밍업 차원에서 각자 자기소개를 해주시고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최근에 어떤 생각으로 살고 계신지 편하게 말문을 열며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權美赫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역임.

權美赫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역임.

권미혁 저는 여성운동 영역인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창비에서 이렇게 여성문제를 다뤄주셔서 반갑습니다. 근래에 여성 관련 의제가 대중은 물론 지식인들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지는 경향이 안타까웠거든요. 여성운동은 현장에선 어떤 영역보다 이론적 쟁점이 많은 곳인데도요. 오늘의 주제에 대해서는 여성운동이야말로 할 이야기가 정말 많죠. 실제 여성연합 2013년 총회 정책토론 주제가 박근혜 여성 대통령과 관련된 것이었고 저는 후에 여성학회 월례포럼에도 참여해 ‘18대 대선을 통해본 여성주의 운동의 딜레마’라는 주제의 발표를 했었죠.

 

권김현영 저도 지난 4월 같은 포럼에서 박근혜 시대의 여성정치에 대해 발표했는데, 아마 그 때문에 여기 참여하게 된 것 같습니다. 드디어 여성이 국가의 최고통수권자가 되었다는 것은 여성에게 가로막혀 있던 장벽이 무너졌다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한국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차별, 권리, 평등의 문제 같은 의제가 1990년대에 부상했다가 이제는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평등이 실현되었다고들 생각하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비정규직 문제와 여성빈곤화라든가 여성혐오 따위의 현상을 보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한명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 이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李侑珍 한겨레 문화부 기자.

李侑珍
한겨레 문화부 기자.

이유진 저는 『한겨레』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고,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정부 때 상당기간 여성가족부를 출입했고, 대선 때도 보건복지 분야와 여성 분야를 맡았습니다. 대선 때는 특히 기자로서 자괴감이 컸죠. ‘여성 대통령’에 관한 자격 논쟁이 여성계 내부에 머물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당의 대응은 비판조차 민망한 수준이었고 여성공약 역시 막연한 내용 탓에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죠. 정책경합 자체가 안됐어요. 권미혁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성운동 진영에서 박근혜 담론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는데 각을 세우기엔 아쉬움이 컸어요. 지금은 정책보다 여성대중의 관심과 생산-소비자 주체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문화부에서 패션과 스타일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황정아 권미혁 선생님께서 창비에서 여성문제를 오랜만에 다뤄서 반갑다고 하셨는데, 저 개인적으로도 그 ‘오랜만’에 일조했던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되네요. 오늘의 대화가 어떤 분명한 해결책이나 방향을 제시하기는 어렵더라도, 말문을 트고 앞으로 여러 다른 논의를 계속 끌어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침묵에 방조해온 저는 주로 세분 말씀을 열심히 경청하는 입장이 되지 싶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해야 할 텐데, 아무래도 지난 대선과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등장을 돌아보는 데서 출발해야겠지요.

  

‘여성 대통령’ 시대, 여성은 어디에 있나

 

권미혁 우선 에피소드를 하나 말씀드리고 싶어요. 지난 대통령선거 때 여성연합의 회원단체인 포항여성회 활동가를 만나 들은 이야기예요. 포항이 워낙 보수적인 동네여서 김형태(金亨泰) 사건(20124월 총선 과정에서 제수 성추행 혐의가 제기된 새누리당 포항남구 김형태 후보가 시민사회단체의 사퇴 압박을 받았으나 결백을 주장하고 당선됨. 이후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국회의원 신분을 이어가다 결국 선거법 위한 혐의로 20137월 의원직을 상실함편집자) 같은 여성인권 사안에 대한 대응조차 힘들다고 얘기했던 곳이거든요. 그 활동가가 박근혜를 지지하는 자기 시아버지에게 물어본 거예요. “아버님은 여자가 밖에서 활동하는 걸 그렇게 비판하시면서 왜 박근혜가 정치하는 건 용인하세요?”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했다는 거예요. “박근혜는 여자가 아니잖냐.”(웃음) 두 사람의 대화에 오늘 우리 얘기에 시사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첫째는 과연 박근혜가 여성 대통령 후보였다고 할 수 있나. 둘째는 대중이 박근혜 후보를 여성 대통령으로 인식했다면 그 이유가 뭘까. 셋째로 이번 대선에서 여성 이야기가 많았지만 과연 여성 의제가 그만큼 활발한 쟁점이었나. 제 경험에 비춰보면 최근 몇차례 대선 중에서 여성 의제나 정책에 대해서는 가장 관심이 없던 선거였고,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서 여성 대통령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진지한 논의도 없었죠.

 

權金炫伶 여성학자. 공저서 『성의 권리, 성의 정치』 『남성성과 젠더』 등이 있음.

權金炫伶
여성학자. 공저서 『성의 권리, 성의 정치』 『남성성과 젠더』 등이 있음.

권김현영 저도 에피소드 한가지를 말씀드릴게요. 201110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朴元淳) 후보가 나왔을 때 우익단체 할아버지들이 ‘서울시장 여자가 웬말이냐’라고 쓴 현수막을 걸려다가 박원순이 남자라는 걸 알고 깜짝 놀라 취소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