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신예작가 5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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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金希鮮

1972년 강원 춘천 출생. 201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biflowers@hanmail.net

 

 

 

라면의 황제

 

 

한때 라면이라는 음식이 있었다. 그것은 기름에 튀겨 건조시킨 국수를 스프와 함께 끓이거나 혹은 그냥 뜨거운 물만 부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즉석식품이었다. 물론 듣기론 지금도 극빈국 어디에선가는 이 괴상한 인스턴트식품이 필수 식량의 하나로 유통되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보건기구는 그런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전성기에 라면은 연간 약 천억개 이상이 소비되던, 그야말로 지구상 최고의 인기식품이었다. 200719일, 『뉴욕타임즈』가 라면을 처음 만든 대만계 일본인 안도 모모후쿠의 죽음을 추모하며,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라면이야말로 세상을 구원한 음식”이라고 치켜세운 적이 있다는 것만 봐도, 라면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아이티를 강타한 대지진 당시 난민에게 제공된 음식도 라면이었다. 세계적 구호단체인 해피월드 홈페이지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홍보 동영상에선 자신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난민이라고 소개한 한 아이티 여성(메리, 27세, 세 아이의 엄마)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지급되었던 다른 구호식량보다 훨씬 낫습니다. 면과 함께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여자는 손에 들고 있던 컵라면을 들어 보였고, 삽시간에 갈라진 땅이 자신의 아이들을 삼켜버렸다고 외치며 흐느꼈다. 어쨌든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적어도 선진국에선 말이다) 라면이란 식품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것은 아마도 2005년 즈음이었던 듯하다. 그해에 라면은 ‘지상의 간편식품’이라는 스스로의 한계를 깨고 드디어 우주로 진출했으며, 한동안, 그러니까 아직 라면 유해론이 완전한 대세로 자리잡기 전인 2015년 중반까지 우주비행사의 필수식량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정도로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김기수씨 역시 2005년 즈음 생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때 그는, 비록 대형서점은 아니지만 꽤 큰 규모의 동네서점에서 자신의 자서전 출판기념회를 열었으며(자서전 겸 식당 홍보책자였던 그 책의 제목은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이었다), 주요 일간지는 아니지만 『식품음료신문』을 비롯한 몇몇 군소 신문사에서 그것을 취재해가기도 했다. 게다가 그해에 그는 라면이 우주로 진출하는 역사적 장면을 목격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물론 인스턴트 라면이 우주로 진출했는지 어쨌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2005년에 김기수씨는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영광을 얻었다. 어느 조그만 케이블 방송사가 새로 만든(그러나 시청률 부진으로 약 이년 뒤 폐지된) 기인과 달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의 빛바랜 화면 속에서, 김기수씨는 라면 그릇을 들고 환하게(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저 찡그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들 하지만) 웃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자서전인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을 구비하고 있는 도서관은 어디에도 없다. 라면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그 책 역시 똑같은 운명을 겪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도 없을 정도니 서점엔 당연히 없다. 서점 직원들은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이요? 처음 들어보는군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들은 그게 식품에 관한 책인지 아니면 일종의 요리책인지 되묻고는 도서 검색용 컴퓨터에 다시 한번 제목을 입력해본다. 혹시 무척이나 열성적인 직원이 있다면, 그가 조용히 서고로 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 한참 뒤 그 직원은 먼지가 잔뜩 덮인 책 한권을 들고 빠르게 걸어온다. “이걸 찾는 건가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그러나,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인 경우가 태반이다. 하긴, 둘 중 어떤 책이 먼저 나왔고, 어떤 책이 먼저 잊혀졌는지 따져보는 것조차 불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만약 정말로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서점이나 도서관 대신 차라리 폐지수집상을 방문하는 게 나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W시(김기수씨가 말년을 보낸 곳) 인근에 위치한 오래된 폐지수집상 한구석에서 파쇄되길 기다리고 있는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 한권쯤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팔리지 않은 채 출판사(당연히 자비출판 전문 업체를 말한다. 쉽게 말해서, 김기수씨는 그 책을 자기 돈으로 찍어냈던 것이다) 창고에 쌓여 있던 그 수많은 『내 영혼의 라면 한 그릇』들은, 어느날 회사가 부도로 문을 닫음과 동시에 폐지수집상으로 넘어가는 신세가 됐다. 평소 책이라곤 단 한줄도 읽지 않던 폐지수집상 주인은, 그러나 겉표지에 먹음직스러운 라면 한 그릇이 선명하게 인쇄된 그 기이한 책에 단번에 매료됐다. 그는 그립고도 아쉬운 마음으로 책들을 바라봤고, 파쇄기에 집어넣기 전 몇권을 빼서 컨테이너 박스 안에 마련된 휴게실 선반에 진열했다. 나중에 그가 더이상 폐지수집상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의 아들(이인호, 23세)이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고 휴게실도 새로이 정리했다. 그는 라면 그림이 그려진 화려한 장정의 책 몇권이 놓여 있던 선반을 치우고 거기에 벽걸이 텔레비전을 달았다. 폐지수집상의 아들이 그 책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건 그로부터 시간이 좀 흐른 뒤의 일이 될 것이었다.

 

W시에서 좀 떨어진 어떤 황량한 공원묘지에 김기수씨의 묘비가 있다. 라면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건재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라면동호회 회원들이 해마다 그의 기일이면 이곳에 들러 꽃을 놓고 간다. 사실 그들은 라면을 먹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라면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그 음식을 먹어본 적 있다는 엄청나게 나이 많은 노인(허삼식, 연령미상)이 동호회의 자문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건 진짜 최고의 음식이었어. 아마 자네들은 상상도 못하겠지, 그 따뜻한 국물 맛을.”

어쨌거나, 그들이 꽃을 두고 간 묘비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기수

19572013

27년간 오직 라면만 먹은 자, 여기 잠들다

 

*

 

라면 유해론은 20세기 후반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기름에 튀겨 건조시킨 면과 각종 첨가물이 들어간 스프가 수만가지 질병을 비롯하여 우울증이나 폭력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까지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줄을 이었으며(신기하게도 그런 문건들의 결론은 하나같이 똑같았는데—라면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그 원초적인 문장은 라면 애호가들만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먹어야 했던 이들에게도 엄청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급기야는 현대사회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제의 주범으로 라면이 지목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시 경제전문가들은 “일인당 라면 소비량이 많은 지역일수록 거주자의 월평균소득이 감소한다”는 보고서를 내세워 빈곤의 기저에 라면이 있음을 지적했고, 교육 관계자들은 “어린 시절 라면 소비량과 명문대 진학률은 반비례한다”는 컨설팅 업체의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학교 주변 300미터 이내의 라면가게를 모두 추방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사악한 의도를 가진 게 거의 확실해 보이는 한 이슬람 청년(이븐 바투타, 25세, 출신국 미상)이 모 신문사의 마라톤대회(종이신문은 이미 지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와 함께 신문사 역시 없어졌지만, 기이하게도 신문사의 이름을 딴 달리기대회만은 계속 남아서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며칠 전 인천공항에서 체포됐는데, 그의 가방 속엔 사제폭탄을 만들려고 한 게 분명해 뵈는 한국산 압력밥솥 하나와 라면 스무 봉지가 꽉꽉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븐 바투타는 폭탄을 만들 의도가 없었다고 항변했으며, 라면이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급할 식량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정보국 직원들은, 머나먼(그러나 어딘지는 제대로 알 수 없고,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던) 엄청나게 가난한 어느 나라의 십대들이 한쪽 어깨에 구소련에서 쓰다 버린 구식 소총을 멘 채, 쓰러져가는 담벼락에 기대어 컵라면을 먹고 있는 영상을 보여주며 자백을 강요했다. 영상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이븐 바투타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그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그건 온 세계를 놀라게 한 테러 미수 사건이었고, 라면이 악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로 자리 잡았다.

결국 어느날부턴가 라면은 죄와 타락의 이미지를 지니게 되었다. 대도시를 빠르게 걷던 시민들은 문득 편의점 유리창 너머를 쳐다봤고, 그 안에 쭈그리고 앉아 라면을 먹고 있는 추레한 차림의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어쨌거나 그들은 잠재적인 범죄자였으며(아무 생각 없이 후루룩 마셔버린 국물 속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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