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북한은 반인도적 범죄국가인가
식량권 침해에 대한 ‘상식’화된 가설 분석
헤이즐 스미스 Hazel Smith
영국 크랜필드대학 인도적 지원 및 안보학 교수. 사회복지사 출신으로 런던정경대학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북한과 동아시아 안보 및 식량원조를 비롯해 국제 인도주의에 관해 폭넓게 연구해왔으며, 많은 유엔기구의 본부와 여러 나라에서 현장활동을 펼쳤다. 특히 2000~2001년에는 북한에 머물며 유엔 식량계획 역사상 최대 규모의 식량원조 사업을 감독했고, 유수의 국제매체에서 북한과 동아시아 안보, 유엔과 국제문제 논평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Hungry for Peace: International Security, Humanitarian Assistance and Social Change in North Korea, 공편서로 Reconstituting Korean Security: A Policy Primer, Diasporas in Conflict 등이 있다.
한 나라의 식량부족과 기아상황에 국가가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 세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첫째, 불가항력의 재난적 기근이 닥친 경우. 이때엔 국가의 책임보다 국제사회의 지원의무가 더 커진다. 둘째, 식량부족 사태에다 국가의 정책적 무능이 더해진 경우. 이때엔 정부에 대한 비판과 시정요구 그리고 외부지원이 모두 필요하다. 셋째, 정부가 악의적으로 주민을 기아와 죽음으로 몰아넣는 경우. 그런 정부는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헤이즐 스미스는 유엔에서 위의 셋째 경우를 북한 인권문제의 핵심으로 상정한다고 본다. 또한 이것이 북한에 대한 군사개입을 정당화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우려한다. 북한이 고의적으로 주민을 굶겨죽인다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는 셈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 사정에 정통한 국제기구들의 조사결과와 배치된다. 왜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한 사실확인보다 가치판단이 앞서는가. 스미스 교수는 북한을 안보논리로만 파악하는 인식론적 왜곡이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이런 편견을 조장하는 주체는 한반도의 긴장고조로 이득을 보는 측일 것이다. 스딸린이 우끄라이나 주민을 아사로 몰아넣은 1930년대의 홀로도모르 사건과 북한을 은연중에 비교하는 국제사회의 시각도 한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저자는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동의한다. 이는 자의적 구금, 강제된 실종, 의사표현 제한, 이동의 자유 제약, 사형집행 등을 북한의 주요 인권문제로 확인한 국제앰네스티의 2013년 연례보고서와 비슷한 입장이다. 하지만 아무리 문제가 심각하더라도 예단을 피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정치적 고려를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식량난이 극심한 상태를 벗어났다 하더라도 인도적 지원은 계속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북한 인권문제를 다룰 때 맥락의 고려와 균형잡힌 시각이 대단히 중요함을 상기시켜준다. 참고로 원문에 달린 다수의 상세한 서지사항을 한국어본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선별해 싣자고 편집진에서 제안했지만, 저자는 북한연구에서 특히 엄밀한 논증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본고의 취지와 평소의 소신에 비추어 원문대로 수록해줄 것을 요청하여 한국어본에도 그대로 두기로 했음을 밝혀둔다. 창비의 청탁에 응해 새 원고를 집필해준 저자에게 편집진을 대신해 감사를 표한다.
조효제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2013년 유엔 인권이사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 이하 북한)에서의 인권유린을 조사하는 특별기구를 설치했다. 조사위원회의 창설은 북한의 인권침해를 우려해오던 비정부기구들의 지속적 로비의 결과로 두루 이해되었다.1) 조사위원회의 임무는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지속되고 있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조사함으로써, 특히 반인도적 범죄에 해당하는 침해에 대해 전적인 책임규명을 하는 것”이다.2)
“반인도적 범죄” 혐의는 북한정부가 “식량권(right to food) 침해”를 하고 있다는 주장에 일부 근거하고 있으며, 이는 “정부가 통제하는 식량배분 정책이 주민의 영양상태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에 의해 뒷받침된다.3) 이러한 주장은 국제정치 분석자와 언론에서 널리 추론되고 있기에 북한이 “주민을 굶기고 있다”는 언급을 종종 읽을 수 있다.4) 거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북한에 대한 ‘상식’ 중 하나는 국민의 건강이나 영양상태가 너무 열악해서 북한정부가 방조했든 의도했든 주민의 ‘식량권’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은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가 북한주민의 식량, 건강, 영양상태 등이 예외적인 상황임을 암시하는 반면에 북한에서 활동하는 유엔 산하 인도적 원조 및 개발 전문기구들에서 나온 실증적 자료는 상반되는 결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북한에서 활동하는 유엔 산하 기구들이 수집하고 배포한 숱한 자료에 의하면 어린이의 건강 및 영양상태가 1990년대 초반의 기근 이후로 상당히 개선되었다.5) 또한 2013년 조사위원회가 설치될 시기에 이르러 북한의 아동은, 영양결핍 등을 포함하는 주요 국제적 빈곤지표에 비추어볼 때, 인도나 인도네시아처럼 전반적으로 더 부유한 다른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의 아동보다 양호한 상태였다. 마찬가지로 유엔 단체의 자료와 분석에 따르면 북한 여성의 건강상태는 실로 불안정한 상태임이 드러나지만, 불행히도 그들의 건강 및 영양상태는 예외가 아니라 저소득에서 중간소득 수준의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상태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글은 북한의 건강과 영양에 대한 통상적인 담론이 어째서 접근이 쉽고 공개된 통계지표들과 일치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필자의 가설은, 다른 지면에서 체계적으로 논의한 바처럼, 북한사회에 대한 정책, 언론, 그리고 지배적 학술담론 등이 너무 안보중심이라서 북한사회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막는다는 것이다.6)
북한에 대한 지식의 안보중심화
북한의 국가, 정부 그리고 사회에 대한 안보중심의 연구는 지나치게 편향된 가정들이 종종 분석에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도출된 ‘지식’을 사전에 결정한다. 이러한 선험적 가정들은 분석의 렌즈를 굴절시켜서 왜곡이나 편향, 혹은 비논리성을 낳는다.
안보중심 패러다임은(…) 군사력과 군사적 수단이 분석에서 유일하게 유의미한 요인이라는 고전적인 안보론 가정을 수용한다. 나아가 북한의 경제, 문화, 인도주의 정책을 포함하는 제반 문제를 모두 군사를 기본으로 하는 분석 속으로 승화시킨다. 덧붙여 이런 패러다임에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이 한반도의 모든 긴장의 근본 원인이라는 규범적 가정이 내재해 있다.7)
북한에 대한 지식이 안보중심화하면서 나타나는 사회학적 양상은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는 가정들이 ‘진실’로 통용된다는 점이다. 이 접근법은 톨레미를 시작으로 갈릴레오, 그리고 아인슈타인에 이르는, 당연하게 받아들인 설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과학적 방법론과 대립된다. 분석이 안보중심화되면서 북한에 대한 추정된 ‘진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자 하는 학자와 정책 담당관이 종종 인신공격적이기까지 한 비난을 받는 결과를 낳는다. 좀더 장기적이고 심각한 결과로는 젊은 연구자나 대학원생이 경력을 그르칠까 두려워 기존의 패러다임으로부터 많이 벗어나지 않도록 자기검열을 한다는 점이다. 혁신적 과학철학자인 토마스 쿤(Thomas S. Kuhn)과 탁월한 사회학자인 C. 라이트 밀스(C. Wright Mills)는 통념에 도전하는 이들이 직면하는 학계 내부의 배제과정에 대해 썼지만, 그들의 통찰은 아직은 북한연구에 대한 사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8)
식량권에 대한 안보중심적 가정들이 정책분야나 언론에서 주류를 이루는 주된 이유는 분석자가 북한에 대한 ‘상식’ 담론에 내장된 유력한 가정들을 비판적으로 조사하거나 검증할 배경이나 시간 혹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왜 식량권에 초점을 맞추는가?
이 글은 윤리적인 이유는 물론이고 방법론적인 이유로 식량권에 초점을 맞춘다. 방법론적으로 식량권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북한 내 식량 불안정상태에 대한 ‘상식’이 그럴 듯하여 지금까지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는 점이며, 둘째는 (북한사회의 다른 부문과는 달리) 지난 20년간 북한 전역에 걸친 건강/영양에 대한 시계열 분석자료는 풍부하고 대체로 신뢰할 만하다는 점이며, 셋째는 식량, 영양, 건강에 대한 실증적 자료가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고, 마지막으로 식량 안보에 대한 ‘상식’이란 것이 실증적 자료와 모순된다는 점 때문이다.9) 윤리적으로 보자면, 북한정부가 고의적으로 “국민을 굶기고 있다”는 주장은 중차대한 문제이기에 이것이 만약 사실임이 검증된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무력 개입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10)
이 글의 연구 초점은 일반 주민임을 밝히고자 한다. 불순분자 탄압정책의 일환으로 음식을 제공받지 못하거나 제한된 식량배급을 받는다고 전해지는 15만에서 20만의 수감자 상태는 이 글에서 평가하지 않는다.11) 수감자의 기아상태에 대한 주장들은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이며 체계적으로 이 문제에 관한 근심, 출처, 연대기, 증거 등을 평가하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수용소시설 상태개선을 국제적인 임무로 삼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2002년 초기부터 북한에서 활동 중이라는 사실은 고무적이다.12) ICRC는 파견국의 정부와 기밀 준수의 의무가 있지만, ICRC의 북한 내 활동에 대한 후속 연구와 정책분석은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적으로 볼 때, 북한 행형제도하에서 감금된 사람들의 상태에 대한 면밀한 조사를 가능하게 할 정도의 신빙성있고 일반화할 수 있는 실증적 자료는 없다.13) 체제의 불투명성 때문에 수감자의 상태에 대한 혹은 상태의 주장에 대한 독립적인 평가는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이 글의 초점은 일반 주민의 식량상태이며, 이는 부분적으로 일반 주민의 식량안보에 관해 실체적인 조사가 가능할 만큼 증거토대가 있기 때문이다.
핵심 주장
북한인권 특별보고관 마르주끼 다루스만(Marzuki Darusman)은 2013년 2월 1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의, ‘식량권 침해’라 명시된 첨부문서에서 북한의 식량권 유린에 대한 유엔의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14) 이 첨부문서는 2009년 유엔 사무총장의 유엔 보고서, 즉 북한이 “국제인권법이 정한 식량권 보장 의무를 위반하고 있다”는 골자의 내용과 반복되는 주장이다.15) 이 문서는 사안의 중요성에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 굵은 활자로 기록되어 있다.16) 정부의 실정이 식량부족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2009년에는 “구호 상황이 더 절박해졌으며” 2011년에 이르러서는 600만의 취약한 주민이 “국제사회의 식량원조를 긴급히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17) 특별보고관은 “어린이의 영양결핍 상황은 몇몇 지점에서 개선되었다”는 점을 인정했지만 “여성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18) 그러나 2013년 보고서에서는 2011년 유엔 총회의 결의안을 인용하면서 “특히 임신부, 영아, 노인 등 취약집단에 만연되어 있는 만성적이고 심각한 영양결핍”에 대한 우려를 반복하고 있다.19)
제한된 지면에서 북한의 식량안보와 식량지원 정책의 모든 측면을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필자는 핵심적이고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즉 “정권에 의한 식량배분의 조작적 통제”(이것도 역시 굵은 활자임)처럼, 무용할 뿐 아니라 악의적일 수도 있는 정부정책 탓에 북한 주민이 심각하고 예외적인 식량난을 겪고 있다는 주장 말이다.20) 지면사정상 논의의 초점을 ‘식량사정의 심각성’에 관한 특별조사위원회를 설립하게 되는 2013년 보고서의 핵심 주장으로 더욱 좁히고자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북한의 식량 관련 복지 결과가 정부 주도의 반인도적 범죄의 징후로 볼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21)
증거토대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는 2013년 보고서는 북한 인권에 대한 기존의 유엔 보고서나 결의안을 종종 문구도 바꾸지 않고 통째로 인용한다. 학술자료를 인용하지도 않을뿐더러 참고문헌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지도 않는다.22) 사실 국가기관이나 국제기구의 보고서는 기존 보고서들을 발췌하는 것이 관행이라서 이런 방식이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이 관행의 문제점은, 이 보고서를 피상적으로 읽는 독자에게 마치 인용문들이 엄격하고 비판적인 평가를 거친 증거토대라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사실상, 인용문들은 대개 기존의 주장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 비판적으로 분석되거나 조사된 자료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서는 확신에 찬 많은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자료토대의 유효성, 신빙성, 혹은 일반화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다. 따라서 2013년 보고서는 증거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북한의 식량 및 보건에 대한 실증적 자료
2013년 보고서를 포함해서 기존의 인권이사회 보고서들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정부기구나 지원단체는 물론이고 유엔 체제 내의 전문기구들에서 자유롭게 구할 수 있는 다양한 관련 자료를 거의 참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의 웹사이트에서 북한사회에 대한 4500개 이상의 보고서에 즉각 접속할 수 있다.23) 국제적십자사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스위스개발협력기구(SDC)와 함께 유니세프(UNICEF),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1990년대 중반부터 북한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들 기구의 직원들이 북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활동 중이다.24) 이 기구들은 1990년대초에 발생한 북한의 경제붕괴, 70만명에 가까운 인명피해를 낸 1990년대 중반의 기근, 그리고 뒤이어 주민 상당 부분의 지속적인 영양결핍을 초래한 식량부족 등의 문제에 대응해왔다.
인도적 단체들이 북한정부와 협력하면서 그 부산물로 북한 내 영양, 보건, 농업 등과 관련된 점점 더 상세한 자료가 산출되었다.25) 예를 들어 유엔 인구기금(UNFPA)은 북한 중앙통계국을 지원하여 엄청나게 풍부한 자료인 2008년 인구조사를 내놓게 했다.26) 이러한 단체들을 통해 산출된 질적・양적으로 풍요로운 자료들은 대부분 웹사이트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고 접근이 용이하다.27) 즉 이 자료들은 여타 연구자들과 당연히 유엔 인권기구도 구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본고는 북한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진 유엔 기구들에서 획득할 수 있는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어린이 영양 결핍
북한의 중앙통계국과 공조하여 UNICEF와 WPF가 시행한 다양한 조사에 따르면, 1998년과 2002년 사이 어린이들에게 체력저하 수치는 상당히, 발육부진 수치는 지속적으로 줄었다.28) 영양학자들은 신장에 비해 저체중인 어린이는 ‘체력저하’로, 연령 대비 저신장인 어린이는 ‘발육부진’으로 어린이 영양실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
-
2013년 가을호 북한은 반인도적 범죄국가인가헤이즐 스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