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시대변화의 길에서 멀어지고 있는 박근혜정부

 

 

시대교체를 내걸었던 박근혜정부의 출범 6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정원의 노골적인 정치개입에 대한 방조, NLL 포기 논란을 되살리려는 집요한 시도, 상대의 굴복을 요구하며 대화의 길이 닫혀가고 있는 대북정책 같은 정부 여당의 행태는 새 시대의 희망보다는 구시대의 악령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박근혜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60%를 넘나드는 상황이 진보개혁세력을 적지 않게 당혹시키고 있다.

현재 박근혜정부의 지지도가 높아 보이는 데는 일종의 착시현상이 작용하고 있다. 촛불항쟁을 거치며 같은 시점에서의 지지도가 20%대로 추락했던 이명박정부, 그리고 지지부진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야권과 비교하면 박근혜정부의 지지도가 유독 높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수준의 지지도는 출범 초기의 정부에 대한 것 치고 특별히 높은 편은 아니다. 김영삼정부와 김대중정부 모두 취임 6개월 시점까지 지지도가 70%를 상회했다. 유권자 자신의 선택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탄생한 정부에 대한 이같은 존중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징표이기도 하다. 즉 현재 박근혜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과거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러한 지지는 언제든지 철회될 것이다.

아무튼 이명박정부 초기보다 여러모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음에도 박근혜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전임 정부보다 오래 유지되고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정권 초기부터 사적 이익추구 행위와 공적 행위의 구별을 무시했던 지난 정부와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이 적어도 본인은 공적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정치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이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정권 초기부터 한반도 대운하처럼 터무니없는 의제를 적극 밀어붙였던 이명박정부와 달리 박근혜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국민 다수의 이익과 밀접히 관련된 의제를 앞세우는 한편, 국민이 지지와 반대를 분명히할 수 있을 정도의 적극적인 통치행위는 아직 없었기 때문에 더 두고보자는 심리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NLL 논란 등의 주요 현안에 대한 야권의 어설프고 혼란스러운 대응은 이러한 통치전술이 유효하게 작동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렇지만 실적의 뒷받침 없이 통치전술에만 의존해 정권의 지지도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들다. 정부 출범 초기에 받는 국민의 기대성 지지를 실적 평가에 기초한 적극적 지지로 전환시키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높다. 특히 출범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미래지향적 의제와 실행 프로그램을 내놓지 못함으로써 그 산은 더 높아졌고 이런 상태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정부의 편이 되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청와대 비서진을 대폭 교체한 것도 이러한 절박감을 반영하는 것일 텐데 이것으로 정부에 대한 장악력은 높일지 몰라도 나쁜 방향으로 흘러온 정국의 흐름이 반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박근혜정부가 국정원 댓글사건에 NLL 논란으로 맞불을 놓은 데서도 나타나듯 정치적 위기를 반북정서 동원으로 헤쳐가려는, 분단체제하에서 형성된 수구적 습성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었던 이른바 ‘신뢰 프로세스’가 북의 굴복을 요구하는 ‘대북압박 프로세스’로 전환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관습적 행태와 연관된 퇴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수구세력의 발호로 남한사회의 개혁을 추진할 동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고, 분단체제를 활용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는 유혹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민생개선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 순리겠지만 수구세력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경제와 사회 시스템 개혁을 박근혜정부 스스로 어렵게 만들어놓은 상황에서는 성공하기 힘들다. 앞으로 ‘개혁 동력의 약화-분단체제하에서의 수구적 관습 강화-개혁 동력의 추가적인 약화’라는 악순환을 끊고 분단체제의 개선과 사회개혁 사이의 선순환 구도를 만들어내는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시대교체가 공염불이 됨은 물론이고, 박근혜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도 곧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 획기적인 변화를 박근혜정부가 스스로 주도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상황은 진보개혁세력에도 큰 짐이다. 무엇보다 분단체제가 나쁜 방향으로 변화할수록 남한사회의 개혁도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근혜정부의 실패가 바로 자기혁신이 없는 야권에 대한 지지로 옮겨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우리에게 던져진 중요한 고민거리다. 진정한 변화에 대한 신뢰를 주는 비전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주체를 만드는 일은 느릴 것 같지만 오히려 이러한 고민거리를 해결해가는 지름길이다. 진보개혁세력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실패한 이유도 겉으로는 변화를 이야기했지만 변화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며, 지금도 변화를 위한 비전과 주체의 문제를 풀지 않고 어떤 성과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다.

국민은 항상 그랬듯 먼저 새로운 과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나서고 있다. 2008년 같은 폭발적인 열정과 흥분의 물결과는 양상이 사뭇 다른 새로운 촛불들—그때와 달리 거대언론이 기득권세력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상태라 어떤 점에서 더욱 끈질긴 촛불들—의 등장에서 자신의 혁신과 시대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성찰적 변화의 움직임과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이 희망을 키워가는 것으로부터 시대변화를 위한 장정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야권도 시대변화를 갈망하는 흐름에 동참하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힘들에 자기 자리를 내놓겠다는 각오로 엄중한 상황에 임할 때 자신의 정치적 무력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생길 것이다. 성찰적 변화에 대한 진정성있는 태도가 그 누구보다도 이들에게 필요하다.

 

이번호 특집 ‘생태담론과 사회변혁’도 우리가 어떤 변화를 추구하는지, 그리고 그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 경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생태문제는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과제 중에서도 가장 도전적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변혁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점검하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으로 삼을 수 있다. 본지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생태담론이 사회변혁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생태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중단기적 과제와 장기적 과제를 어떻게 연결시킬지 등의 문제다.

이필렬은 원자력이 에너지공급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원자력진영의 프레임은 물론이고 ‘탈핵’진영의 프레임도 넘어서 에너지전환이라는 변혁적 장기기획에 대한 전망과 이에 입각한 실천이 필요함을 차분하고 치밀하게 주장한다. 특히 이 의제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하승수는 실상 ‘기후재난’이라고 불러야 할 기후변화에 속수무책인 기존 정치의 무능력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 녹색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장석준은 적록동맹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검토하고 ‘태양 꼬뮌주의’라는 흥미로운 기획을 제시한다. 데이비드 페퍼의 번역 논문은 생태사회주의론과 이를 추구하는 대안적 실천의 사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례가 전환적 체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논하는 부분이 특히 흥미롭다.

소설란에서는 성석제의 장편연재가 2회에 접어들면서 걸출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준영 김엄지 김희선 최민우 최정화 등 신예작가 5인이 내놓는 단편소설 역시 발랄하고 도전적인 개성이 가득하다. 시란에서도 올해 창비신인시인상 당선자 전문영을 포함해 열네분의 청신한 시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작가조명에서는 신작시집을 출간한 황병승 시인을 이장욱이 만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시단에 충격과 매혹을 선사하며 주목받은 시인을 시집 밖에서는 좀체 만나기 힘들었기에 더욱 반갑다. 문학평론은 여느 때보다 풍성하게 꾸려졌다. 김영희는 최근 젊은 시인들이 ‘시와 정치’에 대한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며 한국문학에 새롭게 그려놓은 지형도를 조망한다. 염무웅은 우리 현대문학사의 탁월한 리얼리스트인 염상섭의 작품에서 당대의 현실에 대한 그의 고뇌를 ‘중도적 민족주의’라는 키워드로 읽어낸다. 올봄부터 루카치, 바흐찐 등 주요 사상가들의 문학론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자리에 이번에는 김성호가 들뢰즈론을 선보인다. 아울러 창비신인평론상으로 등단한 류수연의 평문은 앞으로의 활발한 비평활동을 기대하게 한다.

대화에서는 박근혜 여성 대통령 출현이라는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향후 여성운동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현장의 활동가와 연구자 및 언론인이 모여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본지로서는 오랜만에 다룬 주제라 독자 반응이 기다려진다. 논단과 현장 역시 지금 우리 사회 현실을 진전시킬 쟁점들로 채웠다. 김종엽은 분단체제를 극복함과 동시에 박정희체제의 발전주의를 넘어설 때 비로소 87년체제로부터 생성된 사회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그 실천전략을 제시한다. 헤이즐 스미스는 북한이 주민의 식량권을 위협하는 반인도적 국가라는 국제사회 일각의 논리에 대해 풍부한 조사자료에 근거해 비판하고 인식론적 왜곡을 바로잡는다. 그동안 창비가 동아시아 연대를 위해 주도적으로 힘써온 제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가 지난 6월말 오끼나와 나하에서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강영규의 참관기와 백낙청의 기조강연문을 싣는다. 강연문에서 백낙청은 동아시아 곳곳의 ‘핵심현장’에서 일고 있는 국가주의를 어떻게 완화하고 극복할지 제언한다. 제3회 사회인문학평론상을 받은 이영유의 글은 민주주의와 선거권에 대한 참신한 통찰을 보여준다.

끝으로 최근 우리 학계에 근대 논쟁을 불러일으킨 미야지마 히로시와 김흥규의 저서에 대한 두편의 글은 본지의 촌평치고는 다소 길지만 ‘근대’ 자체에 대한 수준높은 이해로 안내하리라 믿는다. 이 계절의 화제작을 촌철살인으로 다루는 것이 이 코너의 특색임은 변함없다.

올해 만해문학상 수상작은 조갑상 장편소설 『밤의 눈』으로 결정됐다. 젊은 문인에게 수여하는 신동엽문학상은 시인 박준과 소설가 조해진에게 돌아갔다. 모두 진심어린 축하를 드린다. 본지 편집진에도 기쁜 소식이 있다. 소장 문학평론가 송종원과 인류학자 백영경이 이번호부터 가세한다. 날로 새로워지는 창비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길고 무더웠던 여름을 보내는 지금 우리 사회가 아직은 어두운 터널을 더 지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몸과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이를 통해 현실에 더 깊고 튼튼하게 뿌리내릴 수 있기를, 본지가 그 일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다짐한다.

南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