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신예작가 5인선

기준영 奇俊英
1972년 서울 출생. 2009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장편소설 『와일드 펀치』가 있음. ariel_1@naver.com
이상한 정열
그녀에게 그는 스물일곱 생일에 소개받아 칠개월을 사귄 남자였다. 서른살 그 남자는 이름이 무헌이었다. 그는 때로 아무 데서나 연인을 치켜세우며 자랑스러워했다. 있지, 넌 뭔가 신이 나서 말할 때 열살은 어려 보여. 그때 네 눈은 반짝 빛이 나. 많이 먹어. 살 빼지 마. 그대로가 좋아. 주황색이 잘 어울려. 긴 머리칼 자르지 마. 샴푸도 채소도 내가 사주는 유기농 제품만 써. 내 예쁜 별님.
그녀의 본명은 말희였다. 어떤 여자들이 옷장 저 깊숙한 데다 한두벌쯤 처박아둔 유행 지난 주름치마 같은 이름. 물론 정감 어린 데가 없진 않았지만 그녀는 자기 이름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서 ‘말희’ 대신 ‘마리’라고 흘려 쓰거나 말하곤 했다.
무헌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해 초가을부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말희는 좀처럼 입을 다물 줄 모르고 떠벌리며 들떠 있는 그가 신기해서 때로 손뼉을 쳐가면서 화답해줬다.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그래, 그것도 좋겠다. 그는 일관되게 서툴렀다. 그와 키스하던 때마다 말희는 그와 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는 그녀에게 자자고 하지 않았다. “지켜줄게” 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그녀는 때로 불타올랐다가 얼음창고에 갇히곤 하는 벌받은 인형 같았다.
그러다 그들은 그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지 못하고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늦가을 무렵이었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꼭 집어 말할 필요가 있는가 모르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내 탓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희는 친구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사월부터 구월까지 그녀는 그와 이것저것 함께했지만, 시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만사에 시들해져서 맥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 십일월이 되자 혼자 시간을 갖겠다며 화를 냈고, 간혹 슬픈 표정으로 자기를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호소했다. 그는 그녀와 아직 해보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앞으로 어떻게 하면 그녀가 그를 다시 받아줄 수 있을지 묻고 되뇌며 괴로워했다. 그녀는 세련되고 성숙한 이별의 방식에 관한 책들을 서너 권 찾아 읽었지만 실전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래서 최대한 비겁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고, 어쩌다 연락이 닿게 되면 새로 만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꾸며댔다. 그 무렵 무헌은 프랑크푸르트 지사로 발령이 나 있었다. 최소한 일년 반 정도 해외로 나가 있게 된 마당에 결혼 계획을 꺼내놓지 않아서 그녀가 마음을 정리한 것 아닌가 지레짐작하여 다급히 청혼을 해 그녀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그녀는 냉담했다.
이듬해 무헌은 직속 상사와 몇차례 불화를 겪으면서 탈모가 진행됐다. 머리털이 일찌감치 하얗게 세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지만 머리가 벗어지기까지 하는 데는 초연하기 힘들었다. 식이요법, 두피마사지, 바르는 약과 먹는 약을 가리지 않았으나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는 스스로 인내심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반추하기도 했고, 예고 없이 일어난 사사로운 일들에 과민해지며 괴팍하게 굴었다. 현지에 남을 것인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우연히 재회한 대학 동창과 이년을 사귀다 결혼했다.
결혼 오년 차에 접어들면서 무헌은 아담한 전원주택을 지었다. 좋은 시절이었다,라고 그의 아내는 회고했다. 그가 다니던 바이오산업체에서는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한 약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찜질팩과 한방화장품을 개발하여 매출 기록을 갱신했고, 그가 사놓은 땅은 도로 개발로 값이 뛰었다. 무헌의 형은 그즈음 원목 수입과 인테리어 사업에 손대고 있던 친구와 어울려 다녔는데, 형의 친구가 무헌이 집을 짓는 데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 지금은 폐간된 『행복을 부르는 집』이라는 월간지에는 무헌의 이 전원주택 사진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때 집 안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들이대던 사진기자는 안방 벽에 걸어놓은 커다란 결혼사진 속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배가 불룩한 것을 보았다. 무헌은 신부의 배 속에 그때 이미 육개월 된 아기가 있었다고 기자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아기의 태명은 별님이었다. 무헌의 아버지가 곧 태어날 손녀를 위해 ‘현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으나, 부부는 딸아이가 여섯살이 되기까지 현서보다는 별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를 즐겼다.
현서는 어릴 적에는 얌전하고 총명해서 부모의 행복이었다가 사춘기에 접어들자 공부에 별 뜻이 없는 사고뭉치로 변하면서 골칫거리가 되어갔다. 공부가 아니면 다른 재능이라도 키워주겠다며 이것저것 레슨을 받게 했는데, 간신히 첼로에 재미를 붙이는가 싶더니 이내 싫증을 냈다. 늘지 않는 실력을 툭하면 악기나 선생 탓으로 돌리며 자기 미래를 한탄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숨이 막혀서 있기 싫다면서 뉴욕에 있는 막내이모한테나 가서 살려고 하니 보내달라고 떼를 쓰는가 하면, 아빠는 젊었을 때 왜 프랑크푸르트에, 아니면 빠리나 밀라노 같은 데 정착하지 못했는지 따져물었다. 자신이 진득하지 못한 것이 제 탓만은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럴 때마다 무헌의 아내는 네 이모도 타국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만만한 일이 하나라도 있는 줄 아느냐 하며 혼쭐을 내기도 하고, 비행기에서 운명의 상대를 만난 부부의 영화 같은 재회를 읊어대기도, 오래된 잡지를 펼쳐 보이며 집을 꾸미면서 품었던 꿈을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현서는 알아듣는 것처럼 잠잠해졌다가도 심사가 꼬이면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방 안에 틀어박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방법으로 부모의 복장을 터지게 했다.
현서가 열여섯살 되던 해 여름날에 무헌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무헌의 형은 벌여놓은 사업이 수습되지 않자 여기저기 돈을 융통하러 다니며 수시로 혈압을 체크했다. 여동생은 그해 겨울 아버지 장례식에나 얼굴을 들이밀었는데, 비쩍 마르고 퀭한 눈으로 그에게 이렇게 대충 조언해주었다. 현서를 그냥 몇달 내보내보지그래, 실제로 겪어보면 아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어. 여동생은 친구들 두명과 출자해 가게를 하나 낼 생각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는데 세상에 믿을 놈이 별로 없다고 했다. 장례식을 치르고 한달 후, 무헌은 이혼을 했다. 현서는 제 엄마가 키우기로 했다.
무헌은 진돗개 새끼 한마리를 분양받았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개보다는 낚시에 취미를 붙여보는 편이 어떻겠느냐고 하면서 커다란 참돔을 잡아올린 자기 사진을 스마트폰에서 찾아 보여주었다. 친구는 대구에 있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일이 있어서 서울에 올라왔다가 재미있는 모임에 참석하게 됐다면서 거기서 만난 부부가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 동석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무헌은 사람 두루 알고 지내서 나쁠 일이 없다는 비즈니스 차원에서가 아니라 혼자 저녁을 먹는 일이 번거로웠는데 잘되었다 싶은 생각에 친구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거기서 말희를 만났다. 말희는 무릎까지 오는 회색 치마를 입고 그 집의 주방 한쪽에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