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 황병승 시집 『육체쇼와 전집』
 

이 쓸쓸한 육체쇼의 무대

 

왼쪽 황병승, 오른쪽 이장욱ⓒ 송곳

왼쪽 황병승, 오른쪽 이장욱ⓒ 송곳

 

이장욱 李章旭

1968년 서울 출생. 199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내 잠 속의 모래산』 『정오의 희망곡』 『생년월일』, 장편소설 『칼로의 유쾌한 악마들』, 소설집 『고백의 제왕』 등이 있음.

 

황병승 黃炳承

1970년 서울 출생. 2003년 『파라21』로 등단.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 『육체쇼와 전집』이 있음.

 

  

 

힘센 책들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의 정치적 급진주의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성실한 독자이다. 현란한 지적 포즈라거나 정치철학적 유행이라는 평은 이상하게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그의 신간들을 손 닿는 대로 읽어왔으며, 앞으로도 이 논쟁적 독서를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그의 급진적 사유가 ‘현실적으로’ 변한다면 아마도 나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낄 듯하다.

맥락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말을 시인 황병승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그의 시가 보여주는 세계에 대부분 깊은 이질감을 느끼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의 성실한 독자이다. 난해한 개인방언이라거나 시적 유행에 불과하다는 평은 이상하게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그의 시들을 손에 닿는 대로 읽어왔으며, 앞으로도 어둡고 매혹적인 이 시-드라마에 이끌릴 것 같다. 그저 상상일 뿐이지만, 황병승이 ‘성숙한’ 시를 쓴다면 아마도 나는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낄 듯하다.

드물지만, 그런 힘센 텍스트들이 있다. 모든 면에서 나와 다른데, 다르기 때문에, 읽지 않을 수 없는 책들이. 그런 책들은 정보량이 많다거나, 신선한 관점을 보여준다거나, 공감을 자아낸다거나, 그런 식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단지 ‘격렬한’ 독서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런 책들을 좋아한다. 그 책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좋아한다. 그 거리가 나를 깊은 곳에서 움직이고 꿈틀거리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움직임과 꿈틀거림이다.

황병승의 세번째 시집 『육체쇼와 전집』(문학과지성사 2013)이 나온 것은 얼마 전이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코리아 2005)와 『트랙과 들판의 별』(문학과지성사 2007)을 통해 그는 2000년대 이후의 시사(詩史)가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시인 황병승을 둘러싼 풍문은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실제로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인터뷰 직전에야 깨달았다. 술 취한 새벽에 몇번 그와 통화한 적이 있지만, 시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에서 던질 몇개의 질문을 준비했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사사로운 호기심에 가까운 것이기도 했다.

 

 

더 잘 읽히는 책, 그러나 더 아픈 책

 

이장욱 연락이 안돼서 인터뷰가 무산될 뻔했는데,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황병승 몸이 안 좋아서 시집이 나오고 한동안 병원에 있었어요. 요즘은 산문집 준비하고 있고요. 제가 다양한 형식의 짧은 글을 쓰고 성기완(成耆完) 형이 그림을 그리고. 올가을쯤 출간 예정이었는데, 원고가 늦어져서 좀 미뤄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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