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신예작가 5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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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崔旻宇

1975년생. 2012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daftsounds@gmail.com

 

 

 

코끼리가 걷는 밤

 

 

나는 민영의 결혼식 전날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서 결혼식 다음날까지 양동이와 변기를 닮은 거라면 뭐든 붙들고 토했기 때문에 준호가 그녀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적어도 1월의 어느 저녁 홍대 부근 일본식 주점에서 인사를 나눌 때는 그랬다. 경기가 나쁜 탓에 신년 기분은 약에 쓰려 해도 없었고, 거리에서는 요란한 음악과 번쩍이는 네온사인이 호객에 안간힘을 썼다. 그날 준호는 멋스러운 인디 핑크색 코듀로이 셔츠에 폭신한 느낌을 주는 재질로 된 연두색 격자무늬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짧게 친 머리는 바짝 올렸고 갈색 뿔테안경 뒤에서 작은 눈을 깜박였다.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맞추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한 답에 다큐멘터리 감독은 없었다. 사생활이 문란한 게이 인테리어 디자이너라면 모를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진짜로 그때 그가 누군지 몰랐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독립잡지 편집자, 문화평론가(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생태주의자(이 사람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다), 고양이를 데리고 제주 이민을 고려중인 씨나리오 작가 등이었다. 잡지 편집자를 제외하면 모두 초면이었다.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고, 준호는 팔짱을 낀 채 대화 틈틈이 ‘흠, 흠’ 하는 추임새를 넣었다. 어쩌면 추임새는 생태주의자가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남자처럼 목소리가 굵었는데 대체의학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직장에 채식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으며 친구 아버지가 버섯으로 암을 고쳤다고 확신했다.

밤이 깊어지면서 술이 거나해진 문화평론가가 날 붙들고 단편소설 원고료가 얼마인지 캐물었다. 말을 못할 건 없었지만 질문하는 방식이 무례했고, 그래서인지 대답하고 나자 이유도 없이 중요한 걸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아무튼 그걸 계기로 사람들이 앞다퉈 자신의 별 볼 일 없는 경제상황을 테이블 위로 내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준호가 신도시 아파트를 올려놓았을 때는 테이블이 한쪽으로 기우뚱하는 게 실제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 자리에서 은행대출을 받을 깜냥이 되는 유일한 사람인 셈이었다. 그의 첫 직장은 케이블 방송국이었고, 현재는 학교 선배가 경영하는 외주제작사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지상파 방송국에 납품하고 있었다. 아이 다섯을 혼자 키우는 호떡장수, 운영비가 없어 내일 모레 하는 보육원, 리어카 한대가 생계수단의 전부인 할머니 등이 그가 촬영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문화평론가가 그런 프로그램들의 진짜 역할은 사실 시청자들에게 상대적인 안도감을 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타인의 불행을 전시하면서 말이에요.” 대체의학이 사기라는 문화평론가의 주장에 속이 상해 있던 생태주의자가 준호를 보았다. 준호는 그녀처럼 그럴 수도 있지요,라며 착하게 항복하지 않았다. 한쪽 눈썹을 냉소적으로 치켜올리며 남의 직업을 너무 쉽게 말한다고 정색했다. “방송 끝에 자막으로 후원계좌가 나와요. 화면 왼쪽 위에 전화번호 뜨죠? 프로그램 가지고 뭐라 하기 전에 그거 한번이라도 눌러본 적 있어요? 지금 여기서 자기 불행을 전시하는 거 말고?” 준호는 ‘전시’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양손 약지를 작은따옴표처럼 까딱였다. 나는 한편으로는 고소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파트 소유자에게 가차 없이 면박을 당하는 문화평론가가 가엾기도 했다. 조금 전 그가 자기 두달 수입을 합쳐도 단편 고료보다 적을지 모른다고 토로한 참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토로한 게 우선이었다.

그 모임이 있고 나서 두달 뒤 나는 중남미문학 세미나를 참관하러 경기도의 한 대학에 갔다. 중남미문학에 대해서는 사자가 여물 앞에서 보이는 수준의 관심밖에 없었지만 거기서 발표를 하기로 한 대학 선배가 이번에 못 만나면 다음에는 자길 보러 스페인으로 와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놨던 것이다. 나는 타면 탈수록 차체가 바람에 닳아 얇아지는 베이지색 경차를 몰고 가서 모데르니스모1)에 대한 프랑스 교수의 난해한 주장을 경청했다. 질의응답 시간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박사과정 학생이 통역과 청중은 아랑곳없이 프랑스 교수에게 에스빠냐어로 질문을 하고 있는데 감색 정장을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틀어올린 여자가 세미나실 앞문으로 조용히 들어와 교수 옆자리에 생수병을 올려놓았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영은 나와 사귀던 시절 자주 차던 바다색 팔찌를 걸고 있었다. 전보다 좀 여위어 보였지만 그 때문에 늘 감탄하던 우아한 목선이 더 돋보였다. 물소떼가 평원을 질주하듯 옛 기억들이 심장 안쪽에서 쿵쾅거렸다.

나는 아옌데 정권 시절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뒤로하고 세미나실을 나왔다. 민영은 복도에서 팸플릿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제 헤어진 친구를 만나듯 가볍게 손을 들어 인사했다. 검고 침착한 눈이 나를 차분히 응시했다. 저 눈 뒤에 있는 뜨거움과 자만심을 나만 안다고 생각했던 게 언제 적 일이던가? 그녀는 내가 세미나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면서 소설가는 소재 찾으러 이런 데도 오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늘 그런 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잘 지내냐고 묻자 그녀가 말했다.

“나 이혼할지도 몰라.”

세미나가 끝난 뒤 나는 선배에게 마드리드에서 꼭 만나자고 약속한 다음 민영이 행사 뒷정리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결혼 뒤부터 교직원으로 근무했다며 가녀린 몸으로 바지런히 책상과 의자를 옮겼다. “내 전공하고 대충 어울리지 않아? 하긴 교직원에 전공이 무슨 상관이야. 연극할 시간이 없게 된 건 좀 아쉽긴 해도.” 민영은 내가 기다린 것에 대해선 별말이 없었지만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묻자 저기 남는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고 정리가 다 끝난 다음 어디 가서 차나 마시자는 제안도 점잖게 물리쳤다. 그녀가 옳았다. 솔직히 그때 나는 여러가지 의미로 좀 꼴사납게 흥분한 상태였으니까. 우리는 잠시 강당 로비에서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다 형식적인 안부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녀는 이혼이라는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에서 내 머리에 남은 건 그 단어뿐이었다.

그뒤로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민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단편소설 마감이 엿새 남았던지라 이야기의 시작을 결정하는 첫 문장을 막 멋지게 뽑아낸 참이었다. 우리는 불편했던 추억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옛날이야기를 했다. 내가 쓴 소설을 한편 읽어봤다길래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음, 그냥 순문학 같았어”라고 대답했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내가 그녀의 남편을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이런 게 진짜 우연인가보다 하며 듣기 좋은 목소리로 웃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내게 하고팠던 게 남편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연락하는 게 너 이용하는 거 맞지? 내가 나쁜 거겠지? 그런데 지금 떠오르는 사람이 정말 너밖에 없네. 바쁜 거 아니야?”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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