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 제20회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

 

통각의 회복, ‘이름’의 기원을 재구성하다

권여선의 『레가토』와 『비자나무숲』

 

 

류수연 柳受延

1977년생. 인하대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iamcat@inha.ac.kr

 

 

1. 잘못된 ‘이름’, 기원을 향한 추리들

 

프로이트(S. Freud)의 「늑대인간」(1918)은 유아 신경증에 대한 독보적인 저작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 논문은 내러티브의 권위에 대한 의미있는 이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늑대인간」에서 이야기하는 주체는 분명 늑대인간(러시아 청년)이지만 그것을 유의미한 담화로 이끌어내는 주체, 즉 내러티브의 권위를 가지는 것은 프로이트이다. 피터 브룩스(Petet Brooks)에 따르면 “내러티브의 권위는 기원을 종착점과 관련하여 말할 수 있는 능력에서 비롯된다.”(「늑대 인간의 허구들」, 『플롯 찾아 읽기』, 박혜란 옮김, 강 2011, 400면) 그는 「늑대인간」에서 프로이트가 내러티브의 권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만이 이 이야기의 출발점, 즉 신경증의 기원인 “최초 장면”을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프로이트는 탐정의 역할을 담당한다.

기억의 서사로서 권여선(權汝宣) 『레가토』(창비 2012)는 바로 이 「늑대인간」이 지닌 내러티브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것이 ‘기억’에 대한 서사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등장인물들의 기억을 조정하는 서술자의 권위는 기억의 현재화를 통해 “최초 장면”을 추적해 들어가지만, 거기에 다다를수록 그 권위는 오히려 약화되어가는 이중의 구조를 가진다. 여기서 기억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서술화자에게 절대적인 내러티브의 권위를 제공하는 것, 동시에 기억의 기원을 향한 여정의 끝에서 그 권위의 필연적 몰락을 예비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름’이다.

“하연이라. 이뿌긴 헌디 정연이 하연이, 니 해허고 딸 해허고 성 동생 안 같냐?”(261면) 한 사람의 이름은 새롭게 탄생한 한 생명에게 부여되는 최초의 선물이며,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며 그 생명을 탄생시킨 모성의 노고에 대한 인정이다. 『레가토』는 바로 이러한 이름에 대한 서사이며, 그것은 이름의 기원이 왜곡된 현재를 재구성하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된다. 아버지 박인하의 존재가 은폐된 채 정연의 동생이 되어버린 하연의 갈등이 왜곡된 이름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면, 죽음의 문턱에서 ‘아델’이 되어버린 정연은 자신의 이름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정연이, 하연이, 이름은 씨스터즈”(87면)라는 진태의 말처럼 『레가토』에서 두 사람의 이름은 서사적 증식의 기반이 된다. 박인하와 오정연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상 『레가토』의 서사는 하연의 이름을 둘러싼 오해가 해소되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가진다. 따라서 하연의 등장과 함께 플롯을 생성하는 내러티브의 권위는 자연스럽게 하연에게로 기울어진다. 하연은 이 작품 안에서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자신의 이름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밝혀내고자 하는 열정적인 탐정이기 때문이다. 끊어진 정연의 스토리를 연결시키고자 하는 하연이야말로 이 작품의 플롯을 만들어나가는 인물인 것이다. 이러한 하연의 등장을 출발점으로 조각난 전통연구회 구성원들의 기억은 조금씩 맞추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정연의 스토리는 인과관계 속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하연의 플롯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따라서 서사의 한 축이 아버지의 이름은 은폐된 채 정연의 동생이 되어버린 하연의 왜곡된 이름의 기원을 복원하는 것이라면, 다른 한 축은 아델이 되어버린 정연의 본래 이름을 되찾는 것이다.

그런데 탐정으로서 하연의 추적은 그 출발점부터 모순적이다. 하연은 분명 탐정이지만, 그녀 자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비밀을 드러낼 결정적인 제보자가 곧 탐정이 되어버리는 구조로 인해, 하연이 만들어가는 플롯은 오히려 진실의 발견을 늦추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하연은 정연의 스토리를 추적하고 재구성해 끊임없이 그것들을 겹쳐지게 만든다. 그러나 여러 인물들의 회상을 통해 겹치는 정연의 스토리는 완결되지 못한 플롯이며, 모두의 기억은 ‘정연의 실종’에 대한 기원으로 거슬러올라가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시키기 위한 동인이 된다. 결국 하연의 추적은 정연이 남긴 미완성의 스토리를 완성시켜 ‘정연의 실종’이라는 부재의 기원을 현존시키기 위한 노력들이다. 하연의 플롯 안에 정연의 이야기가 들어오고, 다시 정연의 이야기가 하연의 플롯으로 완성되는 구조가 바로 『레가토』인 것이다.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를 완결시키는 것이 플롯이기에 그것은 결말에 이르기 전까지 완성되어서는 안되며, 이야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레가토』에서 하연의 플롯을 완성하기 위해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정연의 스토리는, 오히려 이름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을 지연시키는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미완성된 플롯에 대한 독자의 기대야말로 독서를 이끄는 본질적인 힘이다.

 

 

2. 틈새가 된 골방의 투사

 

그렇다면 하연의 플롯은 어떻게 완결되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탐정으로서 하연은 자신의 추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한다. 하연은 『레가토』의 서사 안에서 내러티브의 권위를 끝까지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가 만들어가던 플롯은 미완으로 남는다. 끊어진 정연의 스토리를 하나의 플롯으로 재구성하는 내러티브의 최종적인 권위를 쟁탈하는 자는 바로 작가 권여선이다. 이렇게 내러티브의 권위를 바꾸어버린 원인, 즉 하연이 생성하는 플롯이 완성되지 못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박인하다. 『레가토』라는 서사적 퍼즐의 마지막 조각. 박인하는 바로 그가 플롯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이 작품의 ‘틈새’(피터 브룩스)가 되어버린다.

프롤로그에 등장한 국회의원 박인하, 그리고 1979년 전통연구회의 구심점이었던 박인하. 그는 가장 치열했던 5월세대가 그것을 통해 가장 세속적으로 성공을 거둔 우리 현대사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드러내는 전형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레가토』가 후일담이라면, 박인하는 거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걸친 배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레가토』를 남자들의 죄의식과 한 여자의 투쟁이 겹쳐진 권여선식 후일담(「에도와 우울」,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