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핵심현장’에서 현대아시아사상의 탐구로

오끼나와, 한반도, 그리고 동아시아

 

 

백낙청 白樂晴

서울대 명예교수, 영문학.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인. 최근 저서로 『2013년체제 만들기』 『문학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일』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백낙청 회화록』(전5권) 등이 있음. paiknc@snu.ac.kr

 

*이 글은 본지 이번호 강영규의 참관기가 소개하는 제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서의 강연에 약간의 첨삭을 가한 것이다. 각주를 새로 달거나 내용을 추가한 경우는 〔 〕안에 넣었다.

 

 

1. 오끼나와에 와서

 

오끼나와(沖縄)에서 열리는 제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에서 첫 쎄션의 발표를 맡게 된 것은 큰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더구나 아제서원(亞際書院, InterAsia School)에서 새로 시작한 ‘현대아시아사상’ 연례강연 첫 회를 겸하게 되어 영광이 곱절입니다. 금년은 또 계간 『케에시까지(けーし)』의 창간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지요.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케에시까지』가 상징하는 소통과 연대 및 저항의 정신이 동아시아 전역에, 나아가 전세계에 퍼져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이번에 오끼나와에 처음으로 왔습니다. 이 또한 기쁜 일이지만 이렇게 늦게 오게 된 데 대한 착잡한 느낌이 따릅니다. 중요한 배움과 연대의 기회를 놓치고 살아온 자신의 박복(薄福)함에 대한 아쉬움과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저는 오끼나와에 대해 매우 무지합니다. 한국과 오끼나와 민중 및 지식인의 연대운동에서도 이렇다 할 역할을 못했습니다. 그러한 제가 오끼나와에 관해 또는 한국-오끼나와 연대에 관해 길게 말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겠습니다. 다만 오끼나와를 찾은 소감을 겸해 몇가지 말씀을 드린 뒤, 저에게 친숙한 현장인 한국과 한반도의 이야기로 넘어갈까 합니다.

한국과 오끼나와의 인연이야 오래됩니다만 두 지역의 민중연대는 미군기지반대운동을 중심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했습니다. 반기지(反基地)연대를 특히 뜻깊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현장활동가들이 이룩한 연대일 뿐 아니라 실제로 상호적인 연대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1970~80년대 일본에서는 ‘일한연대운동(日韓連帶運動)’이 활발했고 한국의 민주화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운동 쪽에서 일본의 민주주의를 위해 협동하는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럴 형편도 못 되었지만, 일본의 대다수 활동가들이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문제의 해결에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적었던 걸로 압니다. 그에 비해 한국과 오끼나와의 민중 사이에는 처음부터 한결 수평적인 연대가 성립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 한국에서의 기지문제를 오끼나와에서와 같은 ‘구조적 차별’의 산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컨대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문제가 평택지역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라 볼 수는 없으며, 차별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하는 제주도의 경우에도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게다가 강정마을 해군기지는 일단 한국해군의 기지로 계획된 것이지요). 물론 한국에는 한국 나름의 구조적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한반도 전역을 망라하는 ‘분단체제’가 결정적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더 논하고자 합니다.

아무튼 반기지연대(反基地連帶)는 그것대로 견지하고 발전시키되, 이것이 폭넓고 효과적인 한-오끼나와 민중연대의 기반이 되려면 쌍방이 당면한 현실의 구조적 차이도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물론 오끼나와에서도 기지반대를 운동의 전부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미군기지는 어디까지나 저의 동료 백영서(白永瑞) 교수가 말하는 ‘핵심현장’의 핵심 쟁점일 따름입니다.1) 단순히 오끼나와에 미군기지가 너무 많아서 주민이 불편하고 미군에 의한 불미스러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이 자신의 패권국가적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 내부의 구조적 모순을 악용하며 조장하기도 하는 현실을 오끼나와만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경우도 드물 것입니다. 동시에 ‘구조적 오끼나와 차별’은 일본국가의 성격과 일본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가늠케 하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야마또’ 정권이—미군정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