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교차로에서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 행복의 정치학』 『연대와 열광』 『뒤르켐을 위하여』, 편서로 『87년체제론』이 있음. kim.jongyup@gmail.com

 

 

1. 루빈의 꽃병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에서 자주 예로 제시되는 ‘루빈의 꽃병’이라는 그림은 우리가 배경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형태가 달리 지각됨을 보여준다. 흰색을 배경으로 여기면 화병을 보게 되고, 검은색을 배경으로 생각하면 마주한 두 얼굴을 보게 된다. 이명박(李明博)정부와 박근혜(朴槿惠)정부를 어떻게 지각하는가 또는 김대중(金大中)정부와 노무현(盧武鉉)정부를 어떻게 인지하는가도 이런 게슈탈트 심리학의 통찰에 비추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파는 87년체제를 배경으로 이명박정부를 파악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집권을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어떤 이들은 우려가 없지 않지만 그리 심각하지 않은 일탈로 인지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명박정부의 집권 후 행태 속에서 민주적 법치국가의 파괴를 지각했다. 그래서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승리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서둘러 정상궤도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사태를 파악하게 된 경위는 납득할 만하다. 노태우(盧泰愚)정부로부터 노무현정부에 이르는 과정은 불만족스럽고 우여곡절이 많긴 해도 민주화가 꾸준히 진전된 과정으로 볼 수 있었다. 같은 견지에서 김대중정부 이래의 경과도 간명하게 조명된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기에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실패한 것이 보수의 집권을 불렀다. 이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면, 댓가는 작지 않았어도 이명박정부를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기로 정리하고 갈 수 있다. 2010년 지방선거부터 2012년 총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적 대중의 열띤 참여는 이런 인식과 연계된 것이었다.

그러나 총선 패배, 그리고 이어진 대선 패배는 많은 이들의 인지적 배경을 87년체제로부터 분단체제로 옮겨놓았다. 사람들은 해방 후 우리 사회에서 보수가 집권하지 않은 기간은 고작 민주정부 10년뿐이었다는 것, 우리 사회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이런 관점은 2012년 선거 패배의 ‘멘붕’에서 벗어나려는 방어기제의 측면도 있고,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민주당(또는 당시 민주당 지도부)의 변명으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심리적 동인이나 정치적 아전인수를 떠나 설득력이 있다. 분명 분단체제는 줄곧 민주주의 심화와 전개에 강력한 방해요소로 작동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혁신의 방향 모색에도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루빈의 꽃병’ 체험과 유사한 정신적 당혹감은 민주파 이전에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거치며 보수파가 먼저 경험했던 것 같다.1) 분단체제의 수호자인 보수파의 관점에서 보면, 김대중정부의 수립은 외환위기라는 자신들이 자초한 엄청난 위기상황 속에서 한번쯤은 눈감아줄 수 있는 것이었다. 김대중의 급진성은 오랜 탄압과정에서 어느정도 순치되었다고 여겨졌고, 그를 박해한 것에 대한 얕은 죄의식, 그리고 광주와 호남 전체에 대한 부채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용인할 수 없었다. 김대중의 당선 같은 일탈은 체제의 탄력성을 위해 한번쯤 수용할 수 있었으나 노무현의 당선은 일탈을 구조로 전환시킬 가능성을 가진 위협적인 사건이었다. 민주파에 박근혜의 당선이 그렇듯 노무현의 당선은 보수파에는 ‘멘붕’을 유발한 사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보수파의 기이할 정도로 강렬한 적개심은 자신들이 겪었던 ‘멘붕’, 즉 분단체제라는 안정적인 배경을 버리고 불가피하게 다른 인지적 틀을 도입해야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민주화를 원했다 하더라도 분단체제와 양립 가능한 민주화를 원했을 뿐, 그것을 해체하는 민주화를 원한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87년체제가 분단체제를 내파하는 수준에 이르도록 발전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행과 더불어 분단체제가 다시는 이전의 안정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재안정화하려고 하는 보수파, 그리고 분단체제와 87년체제를 함께 고려하지 않고 인지적 배경교체 속에서 혼동을 겪는 민주파 모두 균형감을 잃은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 좀더 구체적으로는 지난 총대선이나 현재 우리가 직면하는 박근혜정부의 여러 양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단체제와 87년체제라는 이중의 틀을 통해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분단체제가 87년체제 속에서 관철되는 방식과 87년체제가 야기한 분단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내적으로 연계해서 사고해야 한다. 이런 조망은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평이한 표현 속에 이미 깃들어 있다. 요점은 그 통찰을 활성화하고 상황 속에 더 철저히 적용해보는 것이다.

 

 

2.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귀결들

 

해방 후 남한사회의 변동을 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살핀다면, 네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815해방에서 한국전쟁을 거쳐 1953년 정전에 이르는 분단체제 형성기다. 두번째는 정전협정 이후부터 제2공화국이 516쿠데타에 의해 붕괴할 때까지로, 분단체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사회구조와 발전 패턴을 남한사회 안에 형성하고 관철할지 불확실했던 이행기라 할 수 있다. 자유당 독재하에서 419혁명과 516쿠데타라는 두가지 대안이 형성되고 경쟁했던 시기다. 세번째는 박정희(朴正熙)의 집권에서부터 1987년 민주화 이행 이전까지의 기간으로, 전두환(全斗煥) 집권기를 포함해 ‘긴 박정희체제’로 명명할 수 있는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체제 시기다. 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시기는 분단체제와 ‘긴 박정희체제’가 상호안정화 관계에 있던 분단체제 안정기라 할 수 있다.2) 이 시기에 분단체제는 박정희체제에 의해 지지되고, 박정희체제는 분단체제로부터 엄청난 지배 정당성과 통치자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민주화 이행부터 현재에 이르는 87년체제다. 87년체제는 박정희체제와 달리 분단체제를 침식하고 불안정화하는 동시에 그것의 발전방향 선택과 조정이 분단체제에 의해서 심각하게 제약되는 관계에 있다. 백낙청() 교수는 이런 상황을 ‘흔들리는 분단체제’라고 명명했는데,3) 우리의 관심은 앞서 지적했듯이 그런 동요의 귀결들을 좀더 깊이 살펴보는 것이다.

 

1) 적대적 상호의존성의 새로운 변형

분단체제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남북한 기득권집단 사이의 적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