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김태우 『폭격』, 창비 2013

미군 공중폭격을 통해 본 한국전쟁

 

 

한성훈 韓成勳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hany@yonsei.ac.kr

 

 

162-촌평-한성훈_fmt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공격은 공중폭격이다.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예외가 아니었다. 젊은 역사학자 김태우(金泰佑)의 『폭격』이 집요하게 다루는 대상인 이 폭격은 1950626일 한국전쟁 발발 다음날부터 정전협정에 이르는 1953727일 밤까지 한반도에서 행해진 군사작전이었다. 이 책의 학문적 의미는 단순한 사실의 재구성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미군문서를 토대로 공중폭격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친다는 데 있다. 흔히 알려진 바와 다르게 공중폭격은 하늘에 있는 폭격기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폭격지점을 조정하고 목표물로 정확히 유도하는 것은 전술항공통제센터 통제반원의 역할이었다.

군사작전으로서 폭격이 정책적으로 채택되는 과정은 12차대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폭격기술의 발달은 일제시기의 공중폭격으로부터 냉전시기 독도 폭격과 한국전쟁 당시 남북한지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로 이어졌다. 저자는 미 의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략폭격이 군사적 가치를 얻게 된 체계적인 과정을 자료와 지휘관의 증언을 통해서 밝히고 있다. 전술항공작전의 구조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이 서술은 폭격성과를 작성한 도면과 폭격 전후의 현장모습, 각종 사진 등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전장의 현장감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성과는 2차대전 때의 공중폭격에서부터 민간인 대량학살의 전사(前史)를 추적하면서, ‘흰옷 입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한국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과 소규모 마을 불태우기, 네이팜탄의 등장과 실험 등을 고발하는 데 있다. 전쟁 초기에 등장한 소이탄 실험은 북한지역에서 감행된 도시 파괴작전, 공군력을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전략개념인 항공압력전략과 더불어 많은 민간인 희생을 가져왔다. 폭격에 참가한 조종사들의 회고는 이를 뒷받침할 뿐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전쟁기계’가 되어 민간인을 공격했는지, 이 과정에서 인종주의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또 학살에 대해 어떻게 자기합리화가 이루어졌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한반도에서 미 공군이 임의로 행한 ‘육감에 의존한 시험폭격’이나 ‘좋아 보이거나 큰 것을 공격’하는 공중폭격 행태는 마을과 거주지 파괴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북지역에 집중된 ‘초토화작전’은 전투의 양상을 바꾸어놓았다. 저자는 김일성(金日成)과 북한 지도부가 미 공군의 폭격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작전을 야간 이동과 공격으로 전환하고, 후방에서는 피해복구대책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노획문서를 통해 상세하게 조합하고 있다. 이북지역에 대한 폭격이 북한 인민에게 끼친 공포와 심리적 영향, 피난민의 남하와 폭격의 상관관계 등은 소략하지만 충분히 의미있는 서술이라고 보인다.

폭격과 피해, 이 과정과 결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는 것은 폭격의 전술적 정책이라는 군사적 범주를 벗어난 시야를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방대한 자료로 폭격과정을 추적하고 나아가 그것의 정치적 의미까지 잘 보여준다.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폭격은 어느 전쟁에서보다 강한 정치적 의도를 띠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미 극동공군의 항공압력전략은 정전협정 체결시점까지 지속되었다. 나중에는 이북지역에 폭격할 만한 곳이 더 있을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도시와 촌락만이 남았다. 무엇보다 저수지 폭격은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 사용한 전략 그대로였다. 비인도적 군사작전의 일종인 저수지 폭격은 주 보급로를 차단하는 군사적 측면보다, 오히려 벼농사를 망쳐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정치적・심리적 효과의 측면에서 중요한 파괴작전이었다. 군인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북한 인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관개수로였다.

저자가 제시하고 있듯이 폭격은 물질적 피해와 인명손실뿐 아니라 북한 인민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공포를 남겼다. 심리적 불안과 공황을 초래한 이 폭격은 전쟁 이후 북한 사람들이 반미의식을 갖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단순한 주의주장이 아닌 전쟁체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반미주의는 북한 지도부와 인민에게 실재하는 위협의 산물이자 정치적 결과였다.

눈여겨봐야 할 논지는 또 있다. 핵무기, 원자폭탄에 대한 미국의 전술적 정책과 관련한 것이다. 역사의 사실로 알려져 있듯이 미군은 한국전쟁에서 원자폭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기 위한 전술적 훈련으로 핵탄두를 제거한 모조 원자폭탄(dummy bombs)을 한반도에 투하했다. 중국인민지원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나빠진 19501130일 트루먼(H. S. Truman)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후 미국은 핵폭격을 여러차례 논의했고 이것은 언제든지 사용 가능한 선택지였다. 첨언하자면, 미 공군은 195145일 원자폭탄 사용허가가 난 이후 원자력위원회에서 공군 제9폭격대대로 마크-4 원자캡슐 9개를 이전했다. 미국은 이 무기를 결국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해 9월 핵탄두가 없는 폭탄을 이북지역에 떨어뜨렸다. 허드슨만 작전(Operation Husdon Harber)으로 알려진 이 훈련에서 미국은 원자폭탄 사용능력을 확립하기 위해 한반도 전장을 핵실험실로 이용한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의 또다른 중요한 성과로 폭격에 가담한 미국 군인들이 증언하고 있는 민간인 살해행위에 대한 심리적 서술을 들 수 있다. 증언자료에서 적절하게 인용하고 있듯이, 책은 이런 의미에서 개인에게 각인된 전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전투현장과의 물리적 거리에 따라 병사들이 갖는 민간인 살상행위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에는 차이가 발생한다. 살해와 물리적 거리에 관한 최근의 연구는 대체로 멀리 있는 적은 친구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저자는 전투에서 살인을 가장 용이하게 하는 것은 소총수의 사격이 아니라 원(근)거리 폭격이나 폭탄투하라는 점을 입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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