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 세계문학을 다시 읽다

 

발자끄와 리얼리즘

‘리얼리즘의 승리’를 다시 생각한다

 

 

김동수 金仝洙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길은 끝났는데 여행은 시작되었다: 가라따니 코오진의 『세계공화국』」 「아름다운 것들의 사라짐 혹은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미셸 우엘벡의 『지도와 영토』」, 역서로 『아미엥에서의 주장』 등이 있음. donnard@hanmail.net

 

 

1. 엥겔스의 발자끄 비평과 ‘리얼리즘의 승리’

 

발자끄(Honoré de Balzac, 1799~1850)에게 리얼리즘은 사후적인 개념이다. 그의 생전에는 오늘날의 의미에서 리얼리즘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 용어는 발자끄가 죽은 후인 1855년에야 화가 귀스따브 꾸르베(Gustave Courbet)가 연 ‘레알리슴(Réalisme)’ 전시회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미술에서 시작된 이 조류는 문학으로 전파되었고 후대의 자칭 리얼리즘 작가들은 발자끄를 자신의 전범으로 삼았으며, 문학사가들은 발자끄를 리얼리즘이라는 사조 아래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리얼리즘은 특정한 시대의 예술사조나 양식을 가리키는 데 국한되지 않고 예술방법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확장된다. 이처럼 리얼리즘이 일반성을 획득하게 된 데는 엥겔스(Friedrich Engels)의 ‘리얼리즘의 승리’라는 명제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엥겔스가 이 명제를 내세우게 된 계기는 잘 알려져 있다. 1884년에 마거릿 하크니스(Margaret Harkness)라는 영국 여성 소설가의 작품 『도시의 처녀』(A City Girl)를 읽은 엥겔스가 그녀에게 작품에 나타난 리얼리즘적 취약성을 지적하면서 리얼리즘의 모범적인 예로 발자끄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는 리얼리즘을 ‘전형적 상황에서 전형적인 인물들을 진실하게 묘사’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발자끄의 작품이 지닌 리얼리즘적인 장점을 열거한다.

 

이처럼 발자끄가 자신의 계급적 공감과 정치적 편견에 역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자신이 애착을 가진 귀족들의 몰락의 필연성을 그가 실제로 보았고, 그들을 몰락해 마땅한 족속으로 그렸다는 점, 그리고 진정한 미래의 인간들을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그들이 존재했던 그러한 곳에서 그가 실제로 보았다는 점—이것이야말로 나는 리얼리즘의 가장 위대한 승리 가운데 하나이며 우리 발자끄 선생의 가장 멋들어진 특징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1)

 

엥겔스의 테제는 여러가지 면에서 재고를 요한다. 우선 작가와 작품이 서로 상반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하는 소박한 질문을 떨치기 힘들다. 작품에는 작가의 의식적인 통제를 벗어나는 무수히 많은 요소가 담겨 있다는 점을 아무리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작품이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배반하는 일이 가능한가? 단지 그렇게 읽힐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정도가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읽히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여기에는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발자끄의 정치적 편견이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흔히 발자끄는 정통왕조파라는 이유로 반동적인 정치적 세계관을 가졌다고 평가되곤 한다. 알다시피 발자끄는 그의 유명한 『인간극』(La Comédie Humaine) 「서문」(“Avantpropos,” 1842)에서 자신은 “왕정과 종교라는 두가지 영원한 ‘진리’의 빛 아래에서 글을 쓴다”2)고 주장했으며, 여러 작품에서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공공연하게 표명했다. 심지어 발자끄는 1830년대초에 정통왕조파의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고 시도하기까지 한다. 이로써 발자끄가 반동적인 정치사상을 가졌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입증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겉보기처럼 단순하지 않다. 발자끄는 젊은 시절에 공화주의자였을 뿐 아니라, 정통왕조파로 ‘전향’한 이후에도 그의 정치적인 신념은 정통왕조파의 일반적인 생각과 그리 부합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의 보수주의자들은 발자끄가 겉으로 내세우는 정치적 입장과 달리 자유주의자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던 것이다. 발자끄 스스로도 그의 오랜 친우이자 공화주의자인 쥘마 까로(Zulma Carraud)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만일 “우리 당파에서 내 정치적 견해를 알게 된다면 분개할 것”3)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여기에서 발자끄의 정치사상에 대해 본격적인 해명을 할 수는 없다. 다만 발자끄의 정치적 견해를 단순하게 반동이라고 취급하는 것은 성급한 일임을 지적하는 데 만족하기로 하자.

이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이 그의 정치적 견해에 반하는 것인지도 따져볼 여지가 있다. 엥겔스가 ‘리얼리즘의 승리’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발자끄가 자신의 왕당파적인 신념과 달리 귀족계급 몰락의 필연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를 담당할 인물을 왕당파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공화주의자 중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그런데 귀족계급 몰락의 필연성을 그려냈다고 해서 왕당파적인 신념에 반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농민들』(Les Paysans, 1844)에는 인상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대영지()로 은퇴한 백작에게 농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