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이창휘박민희 『중국을 인터뷰하다』, 창비 2013

부상하는 중국의 이면을 말하다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lee87@skhu.ac.kr

 

 

162-촌평-이남주_fmt재일학자 윤건차(尹健次)가 한국 지식인들의 사상을 정리한 책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당대 2000)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논쟁의 한가운데 있는 한국 학자들로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작업인데 현장과 일정한 거리가 있었던 재일조선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이것이 적절한 평가였는지, 한국 학자들의 지적 나태에 대한 자기위안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다만 일정한 거리를 확보한 외부자의 관찰이 내부자의 시각보다 사태에 대한 객관적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중국의 주요 사상가와 실천가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중국을 인터뷰하다』도 이러한 미덕이 잘 발휘된 책이다.

중국 내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계몽’의 기치 아래 과학과 민주라는 근대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던 1980년대와는 달리 1990년대 이후 여러 방향으로 분화되기 시작했다. 서구의 근대화가 중국에서도 복제되어야 하는가, 혹은 복제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러한 분화를 촉발했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양상은 한국의 1980년대 ‘운동권’ 논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하다. 중국공산당 일당지배체제가 강고하게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곧바로 중국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기 힘들지만 향후 중국이 직면할 문제를 앞서 제기하고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뿐 아니라 이 책에 등장하는 면면은 “중국의 또다른 미래를 위해 고투하는 ‘문제적’ 인물들”(5면)이라는 저자의 평가에 전혀 손색이 없다. 전체적으로 조화가 잘 이루어진 밥상일 뿐 아니라 하나하나 따로 음미해도 풍부한 맛을 느낄 메뉴들이 상에 올라 있는 것이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등장인물 각각의 사상적 출발점 혹은 강조점이 다르고 주요 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에도 큰 차이가 있어 이들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소화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럴 경우 인물의 개인사나 사상흐름이 아니라 이들의 생각이 분기하는 쟁점에 독서의 초점을 맞춘다면 혼란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다행히 저자는 이러한 비교를 가능하게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두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첫째, 문화대혁명을 포함한 마오 쩌둥(毛澤東)의 유산에 대한 평가이다. 거기에서 오늘의 중국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과 마오의 유산, 특히 문혁 같은 역사에서 어떤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보는 입장으로 갈린다. 추이 즈위안(崔之元)은 대중민주와 대민주 등 인민의 직접참여(200~204면)를, 쑨 거(孫歌)는 “우리 현실에서 출발해 우리에게 걸맞은 원리를 만들어”내는 방법론(253~57면)을 계승해야 할 마오의 유산으로 든다. 신자유주의의 침투와 엘리트 통치에 대한 불만이 마오가 다시 호출되는 배경이다. 반면 첸 리췬(錢理群)은 “현재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마오체제를 철저히 개혁해내는 것입니다. 마오체제를 철저히 비판해야만 그중 합리적인 부분을 떼어내는 일도 가능해지지요”(45면)라고, 친 후이(秦暉)는 문혁의 “핵심은 권력을 잡은 이가 백성들을 억압하고 박해한 것입니다”(136면)라고 마오의 유산에 대해 철저한 청산을 주장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개혁개방 이전 30년, 즉 마오의 통치시기에 대한 역사논쟁이 가열되고 있는데, 이는 주로 마오 사후 중국공산당이 추진한 개혁개방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그동안 부정적으로 평가해왔던 개혁개방 이전 역사에서 다시금 긍정적 유산을 건져내려는 좌파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문혁 등을 부정하는 역사평가를 내놓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통치정당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을 막으려고 이에 대한 적극적 논의를 금기로 만든 데 불만을 가진 우파도 적극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마오의 귀환을 둘러싼 논쟁의 추이도 앞으로 중국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둘째, ‘평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대화가 오간다. 자유주의적 지향이 뚜렷한 친 후이마저 “08헌장(2008년 중국의 반체제인사들이 중국의 서구식 다당제와 삼권분립 등을 요구하며 발표한 선언문인용자)이 주로 시민권과 정치권리를 강조하면서 경제・사회 권리를 요구하지 않은 점도 유감입니다”(164면)라고 지적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에서는 추상적 자유만을 앞세우는 흐름이 주류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불평등이 확산되는 원인과 이에 대한 처방책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신자유주의를 원인으로 보고 이에 대처하는 데 국가와 중국공산당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과, 정치권력의 독점을 문제삼으며 중국공산당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의 건설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입장 사이의 차이가 그것이다. 좌파는 노동계급 혹은 인민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중국공산당이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계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지만, 우파가 보기에 현재 중국에서는 시장과 독재의 잘못된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직면한 문제의 복합성을 고려하면 양자 사이에서의 선택은 쉽지 않다. 인터뷰 대상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주의 및 이념과 거리를 두고 실제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중국을 좌우, 주의, 이념의 틀로 이해하려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그는 거기에 붙잡히지 않고 저만큼 달려나갔”(110면)다는 장 률(律)의 “좌한테도 실컷 당하다가, 시장화에 밀려 사라진 거죠. 저도 사유화를 싫어하기 때문에 좌가 사유화를 반대하는 점은 좋아합니다. 자본주의 싫어요. 그렇다고 사회주의가 좋다? 어떤 사회주의를 얘기하는 겁니까?”(109~10면)라는 말은 많은 이들의 심정을 대변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자신의 생각을 매우 솔직하고 진지하게 밝히고 있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어떤 사회를 지향하든 중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을 터인데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다들 중국 내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쑨 거와 함께 그 예외에 속하는 원 톄쥔(溫鐵軍)은 도농격차 등 중국현대사의 많은 문제들을 중국이 “소련의 지원도 단절된 상태에서 외부에 손을 벌리지 않고 순전히 홀로, 자국 농민과 노동자를 착취하면서 원시적 축적을 진행했”(64면)던 사정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제 중국이 본격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이고 이것이 다시금 중국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질 때, 중국의 평등과 민주 등에 대한 논의가 상투적인 좌우논쟁에 빠지지 않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