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선택하지 않은 질문들

정미경 소설집 『프랑스식 세탁소』

 

 

류수연 柳受延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통각의 회복, ‘이름’의 기원을 재구성하다」가 있음. iamcat@inha.ac.kr

 

 

2682여기 ‘어제와 같은 오늘’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기를 원치는 않는다.”(「소년처럼」, 191면) 그들의 고민은 처절하지도 절박하지도 않다. 단지 어제와 같은 오늘을, 견고한 일상의 복원을 꿈꿀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결코 회복되지 않는 일상의 갈라짐이다. 정미경(鄭美景)의 『프랑스식 세탁소』(창비 2013)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서사적 결절이 독자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 때문이다. 그의 서사에서 갈라진 틈은 그대로 드러날 뿐, 사색되지 않는다. 그 서사적 빈칸이 독자의 응답을 통해 채워지는, 조금은 특별한 ‘독서’가 요구될 뿐이다.

변화는 두려움에서 시작된다. 변화를 두려워할 때, 선택의 순간은 더욱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우리 삶 전체가 거대한 선택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정미경 소설의 인물들이 맞닥뜨린 선택의 순간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기존의 일상을 완전히 다른 삶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국경을 넘는 것(「울게 놔두세요」)이고, 유죄와 무죄의 갈림길(「파견근무」)이며, 출가하겠다는 오랜 연인을 앞에 둔 먹먹함(「타인의 삶」)이다. 하지만 때로는 전시회장 앞에서 되돌아 나오거나(「남쪽 절」), 곧 헤어질지 모를 애인과 번지점프를 하거나(「번지점프를 하다」), 싸구려 초콜릿의 달콤함에 취하는(「소년처럼」) 순간이기도 하다. 그 표면적 무게의 격차에도 이 모든 선택은 아무것도 아닌 일상 속에서 생과 사를 가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차이를 만드는 ‘그 무엇’(「프랑스식 세탁소」)이 된다.

언제나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다. 그 어떤 인물도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 수 없다. ‘어제와 조금 다른 오늘’이라는 선택의 결과는 늘 ‘오늘과 완전히 다른 내일’을 맞이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그 매일의 빗나간 선택은 그들의 어제를 회복될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선택의 순간은, 번호가 바뀌어버린 현관문 같은 일상의 작은 균열 속에서 “아저씨, 나 밥 사줄래요?”(「소년처럼」, 196면) 하는 소녀의 목소리처럼 심드렁하게 비집고 나온다. 그럼에도 그들이 일상으로부터 이탈하게 되는 까닭은, 너무나 간절히 그 일상을 지켜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삐끗하는 사이에 그들은 “제 삶의 뿌리를 뽑아들고 달아난 까닭을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울게 놔두세요」, 109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어느덧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들기 위해, 만들고 싶지 않은 책도 만”(「남쪽 절」, 18면)드는 일상의 당위 속에 함몰되어버리는 것이다. 그 속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하다. 화려한 마천루 뒤편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이들이 “왜 미쳐서 자신을 부숴버리는지 헤아려줄”(「남쪽 절」, 28면) 수 없는 불통(不通)이야말로, 이 누추해져버린 일상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미경은 이로부터 도출되는 그 어떤 ‘왜’에 대해서도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독자의 질문에 또다른 질문을 더함으로써 더 많은 질문을, 그리고 그로 인해 더 깊은 서사적 결절을 생성해낸다. 이 지점에서 표제작 「프랑스식 세탁소」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 작품은 소설집 전체의 질문을 꿰뚫는 해답이자, 또다른 거대한 질문의 출발점이 된다. 복지재단의 이사장인 ‘나’는 요리사 ‘르와조’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신과 그 사이에서 “안과 바깥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246면)던 열정이라는 공통분모를 뽑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나’의 의도와 달리, 교차되는 서사 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기부금을 사적으로 횡령하고도 합리화하기에 여념이 없는 ‘나’의 이면이다. 따라서 ‘나’에게 르와조의 죽음은 이해될 수 없다. ‘나’는 한 인간의 모든 열정을 누추하게 만들어버리는 틈새를 자각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르와조는 단지 레스토랑 평점에서 별 하나가 사라진 것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거기서 열정이 식어버린 현재, 어제와 다른 오늘을 발견했다. 그 부끄러움이 그에게 죽음이라는, 내일을 삭제하는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나’의 비서이자 숨겨진 애인이었던 미란을 죽인 것은 부끄러움을 삭제하고자 했던 ‘나’의 욕망이었다. 르와조가 부끄러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나’는 부끄러움을 죽임으로써 살아남은 것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 앞에서 정반대의 선택을 한 두 남자를 그리면서, 정미경은 다시 독자에게 질문한다. 일상 속에서 얼마나 더 누추해질 것인가? 그 위에 우리의 해답이 얹어질 때, 정미경의 서사는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