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오늘, 세계문학을 다시 읽다

 

세계문학 속의 중국문학

모옌이라는 난제

 

 

백지운 白池雲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중문학. 역서로 『제국의 눈』 『열렬한 책읽기』 『리저널리즘: 동아시아의 문화지정학』 『위미』 등이 있음. jiwoon-b@hanmail.net

 

 

1. 반/체제 인사?

 

2012년 모옌(莫言)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후, 중국문학 연구자인 내게 자주 오는 질문이 있다. 모옌이 반체제 인사냐 친정부 인사냐는 것이다. 이제까지 노벨상을 수상한 중국인(가오 싱젠高行健, 류 샤오보劉曉波)의 경우 ‘반체제’ 레떼르가 비교적 명확한 데 비해, 모옌에게는 그게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작가회의 부주석에 공산당원이라는 신분도 미심쩍은데다, 인권이나 검열 같은 민감한 이슈에 대해 ‘바깥’에서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좀처럼 속 시원히 하지 않은 것도 한몫을 했다.1) 여기서 우리는 레이 초우(Rey Chow)가 말한 “이미지로서의 토착민”(the native as image)의 전도된 형태를 본다. 공산주의 국가의 지식인은 자신의 공식적 정치이념에 충실해야 한다는 서구 좌파의 토착민 상2)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중국 작가는 사회주의체제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통념 또한 추상화된 토착민의 이미지이다. 물론 작가가 자신이 속한 체제에 비판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맞다. 문제는 ‘비판적’인 것의 함의다. 구 유고 연방의 티토(J. Tito)가 편을 바꾸어 자본주의 진영으로 갔다면 스딸린체제에 진정한 균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젝(Slavoj Žižek)의 말3)을 떠올린다면, 사실 체제를 떠나 바깥에서 체제를 비판하는 망명작가의 비판처럼 손쉬운 것도 없다. 모옌과 동시대 작가 한 샤오궁(韓少功)은 중국인의 ‘저항’을 재단하는 서양인의 정치감각이 각양각색의 좋은 맛을 오로지 ‘달다’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빈궁한 시골 사람들의 미각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꼬집었다.4) 친체제냐 반체제냐라는 이분법으로는 오늘날 복잡한 중국의 사상지형에서 ‘비판적’인 것의 심층으로 들어갈 수 없다. 문학작품의 경우는 더더구나.

지금 중국문학에서 ‘비판적’인 것처럼 모호한 말이 있을까. 우선, 무엇에 비판적이어야 하는가? 사회주의라는 국가이데올로기에 대해? 개혁개방 이후 30년간 정부의 주도 아래 파죽지세로 밀려들어온 전지구적 자본주의화 추세 속에 일상적 차원에서 개인이 받는 억압은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적인 것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체제에 대한 비판은 알게 모르게 그 배면에 숨은 신()을 섬기게 되는 아이러니와 맞닥뜨린다. 반대로 중국의 자본주의화에 대한 비판은 다시 체제옹호라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신좌파와 자유주의의 오랜 논쟁은 이처럼 좌와 우 어느 한쪽을 진보라고 판가름하기 힘든 복잡한 중국의 현실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면 집단주의에 대해? 2009년의 한 문학좌담은 90년대 중국문학, 더 나아가 개혁개방 이후 30년 중국문학의 특징을 “다수의 결석”으로 개괄했다. 80년대 ‘소수(개인)’ 담론을 밑에서 지탱해줄 ‘다수(인민대중)’가 특히 90년대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듦으로써 소수 담론까지 파편화공동화된 현실이 지금 중국문학이 직면한 난제라는 것이다.5) 이런 진단에 따르면, 사실 지난 30년간 중국문학의 주인은 다수가 아니라 소수였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문학에서의 인민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주류의 목소리가 아닌가.

모옌을 ‘비판적’ 작가로 보는 일련의 시각이 때로 그를 어용작가로 매도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이처럼 비판의 타깃이 모호하고 주류와 역류를 구분하기 어려운 중국문학판의 복잡성에 기인한다. 거기에 최근 10년간 인터넷을 문학의 새 영토로 개척하고 자본과 결합해 새로운 생산 및 소비구조를 창출한 ‘신자본주의 문학’이 기성 문학판에 가한 천지개벽할 충격을 참고한다면,6) 중국 작가를 정치에 억눌린 예술의 자율성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보는 냉전시대의 무지에서 벗어날 때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반/체제 인사’는 초우가 비판한 ‘토착민’의 다른 이름이다. 이제 중국문학을 게토에서 끌어낼 때다. 더구나 중국은 더이상 세계체제의 주변이 아니지 않은가. 포스트냉전 및 자본주의적 지구화라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순이 가장 첨예하게 집약된 곳이 바로 중국일지 모른다. 이러한 동시대성을 인지하면서, 싸움이 끝나지 않았지만 적이 보이지 않는 각자의 곤경을 참고하면서, 상호텍스트적으로 중국문학을 읽어야 한다. 그 점에서 모옌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논의는 일국의 시각을 넘어 세계문학이라는 지평에서, 더 정확하게는 세계문학을 새롭게 구상하는 시야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7)

 

 

2. 해체라는 무딘 날

 

당대 중국문학사를 잘 살펴보면 생각보다 애매한 모옌의 위치에 놀라게 된다. 굳이 노벨상이 아니더라도, 중국문학 하면 모옌을 떠올리는 것이 그간 외국 독자들의 현실이었다. 물론 모옌의 애매한 위치를 말하기 앞서 중국문학 지형 자체의 모호성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2009년, 정부수립 60주년을 기해 대대적으로 출간된 『중국신문학대계』(제5집: 1976~2000) 책임편집자 왕 멍(王蒙)은 ‘총서(總序)’에서 80년대에 이어 90년대 문학엔 주류도 없고 운동도 없고 대가도 없다며, 이 선집의 공과(功過)를 시간이라는 법관에 맡긴다고 썼다.8) 1930년대 이래 중국문학의 경전을 선정해온 최고 권위의 목소리가 이렇게 힘빠진 적이 있었던가. 모옌은 이처럼 안개 자욱한 문학사의 황야를 어슬렁거리는 한마리 야생이리다. 흔히 그는 1980~90년대 ‘심근문학(尋根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