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세계의 압력을 증언하는 물리학적 비유법

최진영 소설집 『팽이』

 

 

신샛별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절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의 두가지 행로」 「망루 위의 소설가, 상상력의 진자운동」 인간적인 그러나 예술적인이 있음. venus860510@naver.com

 

 

2682팽이의 회전운동은 서로를 견제하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평형을 이룰 때에만 지속된다. 삶이 유지되는 원리도 이와 같다. 우리를 짓누르는 세계의 압력에 꼭 같은 힘으로 저항할 때 삶은 곧추설 것이고, 두 힘의 균형이 깨지면 세계의 완력에 의해 삶은 일그러지거나 조각날 것이다. 최진영(崔眞英)의 첫 단편집 『팽이』(창비 2013)에는 기세등등한 세계의 압력을 실감하며, 삶을 지탱하는 두 힘의 균형점을 가늠해보는 인물들의 기록이 담겨 있다. 그들은 쓰러져가는 팽이에 채찍질을 하듯이, 흔들리는 자신의 삶을 꼿꼿이 세우기 위해 골몰한다. 그 노력은 대체로 실패하지만 결과와는 상관없이, 최진영의 소설은 우리가 분명히 느끼고는 있으나 계측하기 어려운 세계의 압력을 그녀만의 물리학적 비유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증언한다.

표제작 「팽이」는 주인공 소녀의 심정을 밀도로 비유한다. 엄마의 가출에도 오빠의 보살핌 아래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을 수 있었던 소녀는 토성처럼 밀도가 낮은 삶을 살았다. 그러나 글자를 깨치는 성장통을 겪은 후,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열악한 삶의 조건들과 직면하게 된다. 무섭고 외로웠던 소녀는 검은 방에 자신을 가두고, 거기에 모든 사물과 기억을 응축시킨다. 절망의 밀도가 높아져 지구처럼 단단한 돌덩이가 돼버린 방을 등지고 바다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소녀의 마지막 모습에서 죽음을 예감하기란 어렵지 않다. 삶을 이어가기 힘들 만큼 극심해진 고통을 밀도의 변화로 설명해내는 최진영의 독특한 비유법 덕분에 우리는 주인공 소녀와 통점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그런가 하면 「창」 「새끼, 자라다」 「엘리」 「월드빌 401호」에는 ‘질량비유법’이 있다. 흔히 ‘삶의 무게’로 표현되는 세계의 압력은 그 삶을 버티고 있는 인물의 무게와 대칭적으로 동일하다. 뚱뚱한 여자, 등껍데기를 짊어진 자라, 코끼리나 개와 동거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이 소설들은 그들이 견뎌내는 세계가 그들 자신의 무게만큼이나 버겁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기 삶을 보존하기 위해 그들은 몸집을 키우거나 무언가를 자기 몸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최진영의 소설에는 적자생존의 논리가 지배하는 완강한 세계에 대항해 고투하는 삶의 육중함이 배어 있다. 그 무게 덕분에 우리는 지금-여기에 단단히 붙들린 채로 우리 자신에게 중요한 질문을 연거푸 던져볼 수 있게 된다.

몸무게가 무거워진 주인공들은 협소한 공간을 집요하게 배회한다. 그러면서 자기 내부에 길을 내고, 그 길에서 우리의 삶을 뒤흔들 만한 질문을 길어 올린다. 「어디쯤」이 대표적인 경우인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미로처럼 폐쇄된 공간을 방황하며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가’ 같은 고민에 빠진다. 그 여정에서 주인공은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J의 뒷모습처럼(「첫사랑」) 희미한 답만 찾을 수 있을 뿐이지만, 자기 존재의 의미를 탐문하는 가없는 싸움에 가담하면서 블랙홀로 표현되는 세계의 실재에 다가선다. 가공할 인력(引力)을 발휘하는 세계의 핵이 사실상 해진 종이의 검은 구멍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문을 제기하며 끝나는 「어디쯤」은 세계의 명령에 순순히 순응해온 우리 자신을 반추하게 한다.

「돈가방」 「남편」 「주단」에는 세계의 압력에 의해 삶이 변형되기 직전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른 소설들에서는 밀도나 질량을 경유해 추상적으로 계측할 수 있었던 세계의 압력이 여기서는 인물들의 갈등 국면에서 좀더 실제적으로 체감된다. 오해와 의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각자의 삶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던 소설은 두 세계(인물)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을 짚어낸다. 우리는 소설이 끝나고 난 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가 되었을 그들의 삶을 상상하면서,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삶의 조건에 타자라는 심급을 추가하게 된다. 이 소설들을 거치면서 『팽이』에는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수 있는가’ 하는 공동체적 차원의 질문이 덧붙는다. 그리고 이 소설집은 세계에 반응하는 개인의 심연에 직핍하면서도, 타자와 더불어 세계에 대응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만드는 특색을 갖게 됐다.

최진영은 자기 존재의 의미를 추적해가는 서사를 쓰면서도, 암중모색의 방향을 자기 내부로 한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균형감각은 부조리하지만 위력적인 세계가 우리 삶의 불가피한 터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의 소산으로 보인다. 그녀만의 돋보이는 물리학적 비유법도 세계를 대상화해 보려는 냉철한 태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세계와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 애쓰는 한 『팽이』의 율동은 쉬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