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7회를 맞은 창비장편소설상에는 총 260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오랜 시간의 흐름을 견디며 한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긴 이야기는 현실에 대한 그만큼 축적되고 심화된 문제의식을 필요로 한다. 현재 한국의 장편소설이 당면한 고민과 곤경은 이번 응모작들의 내용이나 형식적인 특징에서도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상당수의 작품이 일상적인 세태담에 치우친 경향이 강했으며, 묵시록적 상상력이나 장르적 다양성을 보여준 경우도 많았지만 기존의 작품들과 큰 차별점을 보여주지 못했다. 소재나 형식의 파격이 가라앉은 소소한 이야기의 풍경은 어떤 이야기로 소통해야 할 것인가라는 작가들의 근본적인 고민을 보여주는 듯하다.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된 네편의 소설 역시 그런 점에서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성’에 대한 모색을 드러낸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을 조건』은 미래사회를 소재로 장르적 상상력을 내세운 작품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수집하여 세부적 에피소드로 차근차근 풀어가는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문명세계의 비관적인 미래를 성찰하되 이것을 익숙한 결론으로 끌고 가지 않고 일정한 거리감각을 유지하며 경쾌하게 서술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연결하고 견인하는 집중적인 문제의식이 허약했다. 발랄한 아이디어가 미래사회의 풍경에 대한 짧은 단상들로 머물고 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더블유』는 도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재난서사라는 점에서 최근 몇년간 나타난 한국소설의 주된 흐름에 부합한다. 도시의 현대인이 체감하는 공포와 불안이라는 감정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펼쳐나간다는 점에서 익숙하게 잘 읽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서사의 핵심인 질병 모띠프에 대한 해석이 유사한 소재의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내용과 겹치고 주제의 도식성을 뛰어넘지 못한 점이 한계로 다가왔다. 소설의 앞뒤에서 작품의 메시지를 직접 서술하고 설명하는 방식 역시 참신성과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대목이었다.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중앙역』과 『하주』였다. 『중앙역』은 노숙자의 삶에 대한 세심하면서도 밀착된 묘사와 인물의 행보를 추적하는 진지한 시선의 힘을 지닌 좋은 작품이다. 인물들의 개별적인 사연을 생략하고 과감하게 현재형 서술을 밀고 나가는 데서 드러나는 장악력도 상당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거리의 공간에서 황폐해진 여성의 육체와 성에 대한 주인공의 끈질긴 집착이 갖는 궁극적인 의미에 대해 공감하고 동의하기 힘들었다. 버려진 타자들이라는 소재와 노숙자의 황량한 삶에 대한 묘사가 관습적이고 감상적인 시선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아쉽게 수상작으로 결정하지는 못했지만 이 작가가 보여준 서사적 역량은 이후 더 좋은 결과로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게 한다.

긴 토론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한 『하주』는 파주와 일산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삼십대에 이른 남녀 동창 여섯명의 성장담을 다룬 작품이다. 인물들이 겪는 성장의 진통을 담담하면서도 경쾌하게 담아내는 서술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중심무대로 등장하는 파주는 신도시 주변의 황량한 벌판의 느낌이 물씬 풍기면서도 특정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시간이 스며든 의미심장한 공간으로 제시된다. 시공간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지명으로서의 파주와 더불어 십대를 보낸 주인공들이 경험한 상실이나 결핍의 정서 역시 과장 없이 산뜻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작가가 흔하지 않은 재능과 감수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과 부재, 결핍을 견뎌내려는 주인공의 절실한 몸짓은 독특하고 섬세한 기억의 모자이크를 통해 한 세대의 풍속을 자연스럽게 살려낸다. 그럼으로써 지난 시절에 대한 애도의 서사는 “다시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떠났다가 돌아왔다가” 하는 기억과 더불어 현재를 모색하는 주인공의 간절한 성찰로서 자리매김하게 된다. 더불어 청춘의 트라우마를 들여다보는 담담하면서도 애정어린 시선은 이후에 이 작가가 쓰게 될 단단하고도 풍요로운 이야기의 세계에 기대를 갖게 했다. 당선자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본상에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의 관심과 정성에 깊이 감사드린다.

| 백지연 손홍규 전성태 정이현 편혜영 |

 

 

 

수상소감

 

162-장편소설상-정세랑_fmt

정세랑 李章旭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지구에서 한아뿐』이 있다.

 

 

 

좋아하는 작가들을 만나면 악수를 수집했습니다. 선생님 같은 작가가 되고 싶어요, 악수를 해주시면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아요 하고 고백하곤 했습니다. 소심해져서 못한 적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성공했습니다. 간절한 미신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한여름 가로수도 없는 길에 멈춰 서서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꽉, 오래 악수를 해준 분이 기억납니다. 여럿 있는 자리에서 잠시 다른 사람들이 흩어진 사이에 기분 좋게 깔깔깔 웃으면서 악수를 해준 분도 있습니다. 그 악수들의 효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뛰어넘지 못하는 넓은 틈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건너편에 다다르진 못했지만, 한참 남았지만, 그래도 조금 겁이 덜 납니다. 감사합니다.

투고를 하고 외할아버지 꿈을 오랜만에 꾸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탁자 위의 동전들을 좀 가지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동전을 손안 가득 쥐고 돌아서는데 잠이 깼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이 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동전이라서가 아니라 쌓여서 빛나던 모양과 묵직했던 감각이 기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할아버지께 받은 언어야말로 가장 큰 혜택임을 알고 있습니다.

경계에서, 문학 바깥에서 문학을 해왔다는 것이 그동안 저의 한계이자 긍지였습니다. 긍지에 가까울 때가 더 많았습니다. 공구르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공구르기는 아주 간단하고 자주 쓰이는 바느질법입니다. 경계면을 기준으로 이쪽 한번 저쪽 한번 나아갑니다. 주로 실이 보이지 않도록 접합면을 말끔하게 이어붙일 때 쓰는데 반복하다보면 웬만한 무게는 이겨낼 만큼 단단해집니다. 농담과 비명을, 견고하지만 추악한 것과 한시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모두의 상처와 한사람의 회복을, 도발과 포옹을, 찬란한 단어와 그 그림자를, 차가운 세계와 차갑지 않은 우정을, 티없이 순정한 것과 건강하게 잡스러운 것을— 온갖 것들을 이어보고 싶습니다. 이어진 솔기가 잔디처럼 부드러운 곳을 걷고 싶습니다. 그렇게 번져나가고 확산하는 지점에 서 있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는 석조 기념관 뒤에 붙어 선 작고 빨간 음료 자판기를 보았습니다. 어째서인지 그 풍경이 잊히지 않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하는 작업이 결국 그렇게 거대한 것과 등을 맞대고 서서 이질적으로 눈길을 사로잡고, 갈증을 해소해주고, 밤에는 작고 하얀 창으로 빛나며, 기포와 향미를 더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안쪽 어두운 선반에 누운 서늘한 캔처럼 차례를 기다려왔던 것 같습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미끄러질 저를 받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