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목소리

 

시민의 책임감으로 고민해야 할 생태담론

 

● 어느새 정치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쟁점이 너무 많고 복잡해 길을 잃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직 믿을 수 있는 중도가 남아 있다’는 믿음이 가을호 서문을 읽으며 살아났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시선을 확인할 수 있어 앞으로 『창비』가 다룰 여러 문제에 대해 기대하게 해주었다. 특히 이필렬 교수의 「에너지전환은 생태적 변혁의 첫걸음」을 통해 생태담론의 당위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에너지산업과 맞물린 자본주의를 조명하고, 거론되는 대안을 깊이있게 분석한 내용은 에너지문제를 쉽고 분명하게 이해하게 해주었다. ‘내 인생 충분히 팍팍하고 힘드니까 내게 더 책임을 지우지 마라’는 식의 작은 시민의 생각은 버릴 때가 됐다. 지난여름 우리는 전력공급의 위기감을 경험했다. 에너지라는 공공재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른 것은, 인류의 발전이 혁신적이었을지언정 지혜롭지는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 책임감으로,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다.

함근아 rain_aoi@naver.com

 

밀양의 일은 밀양만의 일이 아니다

 

● 요즘 무엇보다 ‘사회변혁’이라는 목소리에 목말랐던 중 가을호 특집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에너지가 권력이 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에너지권력’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생소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동안 경제와 발전의 논리에 밀려 생태담론의 자리가 협소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은 원자력에 종속되기 때문에 그 폐기를 외치더라도 힘이 없다’는 말에서 무력함을 체감하면서도 에너지체제의 전환이 자유로운 삶과 관련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에너지독점에서 독립하는 것은 모든 사회적 역량의 거대한 독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 특집으로 말미암아 밀양 송전탑 건설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밀양의 일은 밀양만의 일이 아니다. 에너지권력 앞에 힘없는 이방인이 되어야 했던 모든 지방인의 일이며, 동시에 지방의 희생으로 편리한 생활이 가능했던 모든 도시인이 스스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일이다. 이 담론이 널리 알려져 모든 개인이 에너지독점에 대항하는 사유를 갖추고 진정한 독립을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최새롬 daresa@nate.com

 

우리 시대 여성주의 운동의 과제는

 

● 대화 「누가 여성인가: 박근혜 시대와 여성주의 정치」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이라는 기호가 어떻게 활용되었는지는 곱씹어봐야 할 문제이다. 특히 ‘아버지의 딸’ 박근혜와 ‘맏형’ 문재인으로 설정된 대선구도의 분석은 적절한 비유였다. 그동안 운동성 자체에 매몰되거나 정당정치에 치중했던 페미니즘 운동을 반성함으로써 ‘이미 대세가 된 생활운동의 뿌리 위에서 정치운동을 통해 비가시화된 여성들의 목소리와 주체의 역량이 발휘될 것’을 전망하는 데까지 나아간 좋은 읽을거리였다.

김지욱 chaphets@hanmail.net

 

민주주의를 위해, 제발 대화합시다

 

● 우리가 선거하지 않는 이유는 삶 속에서 거세된 민주주의 자체에 있다. 20대의 한 사람으로서 같은 세대인 이영유가 「2013년 대한민국, 우리가 선거하지 않는 이유」에서 제시한 진단에 공감한다. ‘일베 현상’을 생각해보자. 일베는 ‘민주화’라는 말을 누군가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사용하며, ‘산업화’의 반대선상에 둔다. 이른바 민주세력과 일부 언론은 여기에 경악했다. 감히 민주주의를 공격했다, 무언가가 결여된 사람들이라 주장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성역화된 역사적 사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히려 삶 속에서 민주주의는 방해물로 보이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은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삶, 사회적 권리를 구성하는 뿌리지만 그걸 깨달으려면 꽤 노력이 필요한 심사숙고를 거쳐야만 한다. 이영유는 ‘소유권’이 되어버린 선거권으로부터 민주주의의 위기를 정확하게 진단했다. 민주주의를 삶 속으로 끌어오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386세대’가 보여준 배제와 엘리트주의의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 이영유가 제시했듯, 새로운 대화를 통해서야 가능할 것이다.

김정현 jhkim33770@gmail.com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시인에게

 

● 김사인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저를 모르시는데 무작정 이메일 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사는 사람입니다(여기서는 저 같은 사람을 이민 1.5세라고 부릅니다). 제가 아주 오래전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이민 와서 한국어를 잃어버렸습니다(‘잊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항상 한국책을 읽었습니다. 『창작과비평』은 제가 늘 찾아 읽어보는 출간물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에 아는 분께 한국에 다녀오시는 길에 최근호를 부탁드려서 받아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시 「김태정」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울었어요. 저도 그런 사람 하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 바라보는 마음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너무나 투명하게 그려주셔서 김태정이라는 분도 제가 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사라져 이 세상에 없는 존재, 살았을 때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약하고 순하고 선하고 여린 존재를, 선생님께서 영원한 어떤 존재로 승화시켜주신 것이 놀랍습니다. 어젯밤에 읽었는데 마음도 머리도 가슴도 선생님의 시에 송두리째 흔들렸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시를 처음 읽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도 전혀 몰랐습니다(죄송합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선생님의 시를 읽고 밤새 잠을 못 이룬 사람이 있다는 것 꼭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한국말로 글을 쓰는 것이 시원찮아서 마음을 잘 전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심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김효신 hk4translation@gmail.com

 

평화의 섬 오끼나와에서 작은 희망을 보다

 

「제5회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 참관기」는 여러모로 신선했다. 동아시아 각 나라를 아울러 국가나 거대자본 중심이 아닌 잡지들 간의 모임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 오끼나와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로워 글에 소개된 현지의 원로지식인 아라사끼 모리떼루의 저서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홍콩, 마카오, 대만, 한반도, 오끼나와가 동아시아의 핵심현장이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들 지역의 문제를 이해하게 되면 한반도 문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 접한 이름이 행사 참관기에도 나온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 배봉기씨는 얼마전 서울 마포구의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에서 본 인터뷰 영상의 주인공이었다. 이 참관기를 통해 배봉기씨가 성폭력과 함께 이념대립의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되니 더욱 안타까웠다.

김지훈 kidd1103@naver.com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바라보는 연습

 

● 북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이 땅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학자 헤이즐 스미스가 쓴 「북한은 반인도적 범죄국가인가」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스미스 교수의 글은 북한정부의 ‘반인도적 범죄’ 때문에 주민이 못 먹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통념과 이를 당연시하는 시선에 의문을 던진다. 북한에 대해 ‘안보중심적’으로 만들어진 UN의 정보와 지식이 실제로 오랫동안 북한 전역에서 수집된 분석자료의 내용과 크게 대비되는 것을 주목하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이 단지 북한정부의 ‘반인도적 범죄’를 의심케 하는 증거뿐이었을까? 이 땅 한반도에 있는 우리에게 단지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곁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함으로써 좀더 나은 한반도를 꿈꾸라고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최인호 cih030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