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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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 孫洪奎

1975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이슬람 정육점』 등이 있음.

 

 

 

아내를 위한 발라드

 

 

그는 매립구역을 빠져나왔다. 흙이 튀어 더러워진 방균복을 벗고 마스크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격리구역 출입문을 나서자 동료인 김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김의 까맣고 볼품없이 주름진 얼굴이 창백했다.

한잔하지.

생각 없네.

알았네.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매립구역 위로 희석된 핏물 같은 노을이 번졌다. 그는 김에게 돌아갔다. 쭈그려 앉은 김은 헛구역질을 하다 그를 올려다보았다. 김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다 늙은 사내자식이 울기는.

한잔하는 거야?

알았네.

그들은 관용 미니버스에 올랐다. 운전기사인 정은 핸들에 이마를 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제 갑시다. 누군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버스는 조용히 달렸다. 그들은 퇴근하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분주했다. 보건소에 도착해 일과를 보고한 뒤 퇴근했다. 주차장 앞에서 김이 그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미니버스 뒤편에서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다시피 고개를 깊이 숙인 정이 나왔다. 그와 김이 정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으나 정은 고개를 저었다. 정은 헐벗은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 쪽문을 통해 사라졌다. 그와 김은 오래전부터 단골이었으나 최근에는 한번도 간 적이 없던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 말고 다른 손님은 없었다. 주인 여자가 사라진 자리는 그 여자와 남매라 해도 좋을 늙수그레한 사내가 지켰다. 그들은 사내가 내온 김치찌개에서 돼지고기를 피해 숟가락질을 했다.

휴가를 냈더군.

고향에 다녀오려네.

정기사도 휴가를 냈던가.

그건 모르겠네.

그들은 소주 세병을 나눠 마셨다. 술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술기운이 실려 있었다. 김은 어눌한 목소리로 정이 부럽다고 말했다. 그가 부러워할 것 없다고 말하자 김이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아내가 살아 있잖는가. 사내는 무섭도록 조용했다. 두시간이 흘렀으나 그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버너의 불이 꺼지자 소리 없이 다가와 부탄가스를 새것으로 교체했을 뿐이다. 취한 김이 자울자울 윗몸을 건들거렸다. 그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한잔하시죠.

생각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김의 눈은 어느 한곳을 오래도록 노려본 사람처럼 달아올라 붉었다.

전 아닙니다.

………

전 아니에요.

이 사람 취했습니다.

………

죄송합니다.

그는 김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고 부축해 일으켰다. 버스정류장에서 김은 술을 더 마시겠다며 버텼다. 벤치에 앉아 허리를 꺾은 채 김은 몇대의 버스를 그냥 보냈다.

감쪽같이 속여 넘겼네.

자네는 그런 재주가 없어.

그 작자가 내 말을 믿는 눈치였어.

거짓말은 아니잖은가.

거짓말이라네.

김이 웃었다. 치석으로 뒤덮인 아랫니가 보였다. 김이 팔뚝을 걷어올렸다. 그는 김의 그런 모습을 몇번 보았다. 김의 팔뚝 안쪽에는 생긴 지 얼마 안된 흉터가 있었다. 김은 이제 그것으로밖에는 아내를 추억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더 쓸쓸해질 터였다. 이미 그렇게 되었다. 상처는 더럽혀져서도 안되었고 사라져서도 안되었다. 김은 작은 생채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결코 새로운 상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몸을 사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수록 그 흉터는 견고해질 것이며 스스로 증식하여 김을 점령하게 될 터였다. 김은 기꺼이 흉터에 자신을 내줄 것이므로 머지않아 김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버스에 오른 김이 창가 쪽에 앉았다. 김이 손을 흔들었다. 그는 어색하게 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그가 보건소에서 근무한 뒤 처음으로 맞는 기나긴 휴가의 첫날이었다. 그는 현관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 마당에 뿌려지는 차가운 햇살을 바라보았다. 휴일이 아니어서 오래된 주택가의 대낮은 평온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멀리서 들려오는 싸이렌 소리마저 답답할 만큼 느슨했다. 그는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번째로 걸었을 때에야 제 어미를 닮은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빠…… 아무 일 없지? 응. 그래, 알았다. 지루했던 낮의 등을 떠밀며 어둠이 닥쳐왔다. 통행금지는 해제되었으나 밤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낡은 대문이 삐걱댔다. 아버지였다. 그는 아버지의 모자를 건네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가 빈손으로 거두었다. 꾹 다문 노인의 입술은 단호한 성격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곧았다. 소파에 앉은 노인은 밭은기침을 한 뒤 며느리가 있는 곳을 물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지하실로 내려갔다. 손전등으로 접이식 철제침대에 쇠사슬로 묶인 아내를 비추었다. 며느리에게 다가간 노인은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재갈이 물린 그의 아내는 증오에 찬 눈으로 시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몸을 비틀며 버둥거렸다. 그는 아내의 눈에 안대를 씌운 뒤 재갈을 물린 입 위로 마스크를 덧씌웠다. 십오년 전 부서 가운데 하나였던 보건진료소를 폐쇄할 무렵 회계 담당이었던 김에게 부탁해 가져온 철제침대는 낡았지만 여전히 튼튼했다. 삐걱대는 소리마저 내력이 깊게 들렸다. 그는 아내의 머리맡에 섰다. 노인은 반대편에 섰다. 그가 앞장을 섰고 노인이 뒤를 받쳤다.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선 그들은 침대를 내려놓았다. 비에 젖은 개가 몸을 흔들어 물기를 떨어내듯 침대가 부르르 몸을 털었다. 그는 침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팔에 전해진 떨림은 어깨 아래서 더는 올라오지 못했다.

그는 승합차의 뒷문을 열었다. 침대 다리를 접어 짐칸에 실었다. 미리 준비해둔 스티로폼 박스를 아내 주변에 쌓았다. 그는 시동을 걸고 전조등을 켜지 않은 채 골목 끝까지 차를 몰았다. 히터에서 찬바람이 나왔다. 조금 뒤 문단속을 마치고 온 그의 아버지가 조수석에 올랐다. 그는 전조등을 켰다. 불빛이 늙은 아버지와 늙어가는 아들의 앞을 가로막은 혼야(昏夜)의 옆구리를 갉아먹었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며느리 쪽을 보았다.

아가…… 집으로 가자.

그는 불현듯이 아버지를 향한 적개심이 솟았다.

어머니는요?

좋아졌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여전히 내 말은 믿지 않는구나.

그의 아버지는 안전띠를 매고 눈을 감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면 신중하게 속도를 줄였고 오른쪽으로 혹은 왼쪽으로 회전을 할 때마다 클러치를 밟아 적절하게 기어를 조절했다. 히터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왔다. 잔뜩 긴장했던 그의 어깨가 나른해졌다. 주택단지를 벗어나 한산한 지방도를 달리다 첫번째 검문을 받았다. 귀마개와 철모 탓에 얼굴의 반쯤만 드러난 군인들이 무심한 눈으로 승합차를 바라보았다. 일병 계급장을 단 앳된 얼굴의 군인은 그가 내민 보건소 직원증을 힐끔 보고는 통과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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