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역사전쟁’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서중석 徐重錫

성균관대 명예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저서로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전2권) 『조봉암과 1950년대』(전2권)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대한민국 선거 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등이 있음.

 

박준형 朴俊炯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근대사. 주요 논문으로 「1890년대 후반 한국 언론의 ‘자주독립’과 한청관계의 재정립」 「청일전쟁 발발 이후 동아시아 각지에서의 청국인 규제규칙의 제정과 시행」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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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형 오늘 이 자리에서는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이 문제가 한국사회에 제기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진단하고, 더불어 한국 근현대사 연구 및 교육 현황을 돌아보면서 앞날을 전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서중석 선생님을 모시고 주로 제가 질문을 드리면서 대화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진솔하면서도 깊은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서중석 반갑습니다. 우리 학계가 안타깝게도 서양사, 동양사 전공자가 한국 근현대사를 잘 몰라요. 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자기 부분만 주로 아는 경우가 많고요. 다른 사람의 연구나 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한데, 이번 참에 많은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한국사 교과서 논란과 역사전쟁의 서막

 

박준형 최근 그간의 한국사 교과서의 관점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이른바 우익 교과서가 집필돼 큰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우선은 이 사안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 매체에서는 이번 일을 두고 “역사전쟁의 서막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지금의 논란과는 별개로 이후의 우익 교과서가 더 많은 준비를 거쳐 나올 것이라는 전망 때문입니다.

 徐重錫 성균관대 명예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저서로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전2권) 『조봉암과 1950년대』(전2권)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대한민국 선거 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등이 있음.

徐重錫
성균관대 명예교수,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저서로 『한국 현대 민족운동 연구』(전2권) 『조봉암과 1950년대』(전2권) 『이승만의 정치이데올로기』 『한국 현대사 60년』 『대한민국 선거 이야기』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 등이 있음.

서중석 2001년에 일본 후쇼샤(扶桑社) 판 역사교과서가 나왔을 때 위험한 역사교과서로 논란이 많았는데, 2005년의 개정판이나 그 이후 교과서의 경우 여전히 문제는 심각하지만 겉모습은 조금 달라졌다는 평을 받기는 했지요. 후쇼샤 교과서가 달라진 데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 국내외의 맹렬한 비판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불필요하게 주변국, 특히 한국과 크게 다툴 필요가 없지 않느냐는 점이 약간은 작용을 했어요. 둘째로, 책을 만드는 데 돈이 엄청 많이 드는데 팔리지 않으면 더이상 출판이 불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나온 교학사 교과서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요. 근현대사, 그중에서도 현대사는 틀린 것, 잘못 서술한 것, 부정확한 서술이 아주 많고, 중언부언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서술에다가 치졸한 반소반공(反蘇反共) 서술이 중복되어 과도하게 들어갔어요. 민주주의, 나라사랑, 인권, 평화와 시민의식 함양이라는 역사교육의 목적에 크게 배치되고 있어 대단히 위험한 교과서일 뿐 아니라, 수준이 너무 떨어져 교과서로 부적당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잖아요. 또 후쇼샤 교과서가 친일파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고 일본군 성노예를 부당하게 취급한 것처럼 교학사 교과서도 그러한 면이 있는데, 어떻게 한국 학생에게 가르칠 교과서가 일본 군국주의 침략자와 입장을 같이 할 수 있느냐는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박준형 그렇다면 해당 교과서의 부실함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교과서의 등장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전선’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현재의 역사전쟁은 국가가 개입하고 있는 부분이 크다는 게 특이점인 것 같습니다. 단순히 학계 내부의 논쟁이 아니라, 정권이 동북아역사재단이나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같은 한국사 관련 정부기관을 친정부, 친자본 세력으로 채워놓고 있고요. 광화문 앞에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세워 정부의 인식을 대변하는 듯한 전시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노조권한까지도 박탈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정부가 직접 개입하고 있는 거지요. 국사교육 문제에 국한하자면, 교육 자체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서중석 박교수 말씀대로 역사전쟁의 서막이라고 할 정도인데, 우리 미래가 아주 불길하고 암담합니다. 6월항쟁 직후부터 보수언론 중심으로 현대사 교육을 거꾸로 돌려놓으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해방 50주년, 정부수립 50주년 같은 것을 맞을 때마다 이승만(李承晩) 살리기, 박정희(朴正熙) 키우기 등을 통해서 수구냉전이데올로기 논리를 표출했죠. 그러다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권력이 전반적으로 개입하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특히 이번에는 여당 국회의원 수십명이 모여 한국식 극우사관을 옹호하는 주장을 폈어요. 일본에서 역사왜곡이 일부 교과서나 극우이념을 가진 학자들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자민당의 대다수를 포함해 야당 일부가 이에 가담하고, 또 일본 국민의 지지까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건데요. 이걸 우리나라 정치인이 흉내 내려고 하고, 더 나아가 ‘종북’ 논란 같은 선동적인 주장을 폄으로써 인기를 얻으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듭니다. 2008년에는 경제 관련 이익단체들이 경제문제 잘못 썼다, 군인들은 안보문제 잘못 썼다는 식으로 상당한 압력을 넣었고 극우세력이 재판도 거는 일도 잇따라 일어났어요. 극우 언론인이나 예전 특수기관 출신들이 권력의 지원을 받으며 각급 학교 학생이나 교육계, 사회 각계 사람들에게 소위 현대사 강연을 했는데, 그런 이들이 무슨 주장을 하고 나섰는지는 너무나 뻔하잖아요. 그리고는 그해 광복절 즈음해서 정치인까지 가세한 ‘건국절’ 소동이 벌어졌고, 가을이 되니까 공권력을 동원해 사용중인 교과서를 다시 고치라고 압박하고, 교과서를 바꾸라고 했잖아요. 어떤 역사교과서를 사용하느냐는 문제를 둘러싸고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받은 압박이 심각했다고 해요. 그러면서 무슨 박물관을 짓는다거나, 이승만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자는 등의 주장을 하다가 이번에는 아예 역사교과서를 직접 내버린 거예요. 그걸 일부 보수언론이 적극 지원하고 있고.

박준형 보수정권으로 바뀌고 나서의 문제점을 지적하셨는데, 그 이전까지는 국정교과서였지 않습니까. 당시의 교육보다 지금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중석 무엇이 더 심각하다고 하긴 어렵고 국정교과서는 그것대로 문제가 있었습니다. 정부수립 이후 6월항쟁 때까지는 정부가 교육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안된다 싶은 것은 교육을 시키지 않았어요. 일방적인 이데올로기 선전, 홍보의 측면이 상당히 강했죠. 사실은 현대사를 축소시키고 가르치지 않으려고 했고 연구도 못하게 했어요.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놨던 것이죠. 해방 후에 친일파 문제가 굉장히 논란이 컸는데 반민특위가 해체된 이후로는 거론조차 되지 못했어요. 4월혁명이 나고 모든 문제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지만 친일파 문제는 예외였습니다. 6월항쟁 이후부터 가능해진 거예요. 그래서 박정희의 일본군 시절 이름이 뭐였는지도 한국인이 거의 모르다시피 했습니다. 김일성(金日成) 가짜설은 백퍼센트 믿었고요. 이런 식의 사회였어요. 또 민간인학살 문제는, 정부수립 직후부터 한국전쟁 전까지 벌어졌던 규모의 학살은 세계에서도 흔치 않아요. 우리 역사에서도 근대사까지 통틀어 봐도 이렇게 큰 학살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나이 먹은 세대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내 나이 이하 사람들은 몰랐어요. 교육에서 이런 문제가 전혀 다뤄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6월항쟁 이후부터 자료도 많이 생기게 되고 현대사 연구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과거에 배웠던 것들이 너무 잘못된 것이었다는 방향으로 흘러가니 기득권세력이 당황한 거예요. 예전과는 달라서 이제는 권력이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가 없으니까 보수언론이 우선 앞장을 선 셈이죠. 김영삼정부부터 노무현정부까지는 권력이 거기에 야합하는 일은 할 수가 없었던 건데, 그 뒤로는 아까 얘기한 것처럼 권력이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아무튼 지금은 현대사에 대한 진실과 사실이 여러 책이나 일부 교과서에도 상당히 담겨져 있는 거예요. 저쪽에선 그걸 두려워하지만.

 

진보적 역사학계 내부의 사정은

 

朴俊炯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근대사. 주요 논문으로 「1890년대 후반 한국 언론의 ‘자주독립’과 한청관계의 재정립」 「청일전쟁 발발 이후 동아시아 각지에서의 청국인 규제규칙의 제정과 시행」 등이 있음.

朴俊炯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근대사. 주요 논문으로 「1890년대 후반 한국 언론의 ‘자주독립’과 한청관계의 재정립」 「청일전쟁 발발 이후 동아시아 각지에서의 청국인 규제규칙의 제정과 시행」 등이 있음.

박준형 전선의 한편에서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에 반대하는 세력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영익(柳永益) 교수가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내정됐을 때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내정철회를 요구하기도 했고, 교학사 교과서가 나온 이후에도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가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한국사 관련 학회들 내에서도 조금씩 입장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맞이해서, 말하자면 전선이 이렇게 형성됐기 때문에 한쪽에 모여서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서중석 지금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는 진보적인 한국사 단체들은 대개 6월항쟁 전후 시기에 있었던 학술운동이 조직화되는 과정에서 연구소나 학회가 된 것이죠. 멀리 올라간다면 독립운동 세력이라고 할까, 반일세력이 가졌던 생각과 비슷한 점이 있고, 해방 후 진보세력이 걸어온 길과 겹치는 측면이 있는데, 지금 세대는 또 많이 달라졌다고 해요. 제가 몸담고 있는 역사문제연구소만 해도 50, 60대가 창립멤버예요. 그런데 우리와 그 바로 아래 세대는 많이 다른 것 같고, 지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또 달라요. 어쨌든 요즘 와서는 역사를 보는 관점에 상당한 다양성이 있다, 1980년대나 90년대에 비해서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념문제를 떠나서 사실 위주로 보려는 면이 있는데, 반면에 비판적으로 연구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면도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럼에도 일치하는 것이 있다고 봐요. 예컨대 인류가 지향하는 길, 자유나 민주주의, 인권, 평화 같은 것을 확대하는 것, 또 압제를 반대하고 민중의 생활이나 의식에 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상당히 전향적이에요. 남북문제와 동아시아문제를 일치시켜가면서 화해협력, 나아가서는 통일이라든가 동북아협력기구를 만드는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지금 뉴라이트나 극우 쪽과는 대립전선이 확연하지요.

박준형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진 학회들이기 때문에 각 단체들 간의 입장차, 또 그 내부에서의 세대차 등에도 불구하고 서로 합일되는 지점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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