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오늘의 천변풍경

박형권 시집 『전당포는 항구다』

 

 

윤경희 尹慶熙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에코랄리아 에로티케」 등이 있음.

 

 

연안. 가깝거나 먼. 다가오고 떠나가는 이중의 움직임이 일어나는 장소를 이 하나의 낱말에 포합한다면. 이중의 움직임은 대개 동일한 발걸음에 따라. 발걸음은 특이하게 교차하며 젊었다가 조금씩 더 늙어가고, 따라서 계속 달라지며 사건의 가장자리를 향한다. 무한히 멀어지며 다가오는 다른 쪽 물가에 닿고 또 닿지 않는다.

Jacques Derrida, Parages, Paris: Galilée 1986, 15면(번역은 필자).

 

바닷가 마을에는 꼭 하나씩 있는 것이 있어. 선착장이지. 거기에 앉아 낚시하면 마을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그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가만히 있어도 그 마을 사정 반은 들어. 시 아닌 것이 없어.

—하상만 「박형권 인터뷰: 산책길에 듣다」, 『실천문학』 2010년 여름호, 252면.

 

2682박형권(朴炯權)의 첫 시집 『우두커니』(실천문학사 2009)는 시인이 살고 일하는 장소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농경지, 어장, 서울 변두리. 박형권의 시에서 장소들은 시의 장식적 배경에 그치지 않고 시가 생성해 나오는 기원이자 그것을 틀 짓고 감싸는 얼굴과 골격이 된다. 시인은 연안과 섬마을을 터전 삼아 자신의 탄생, 가족의 내력, 이웃의 생활과 노동을 채록하다가, 어느 시기부터 서울 면목동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시를 캐내기 시작한다. 도시로 떠나오기 전 그가 조개잡이를 겸직했다는 사실을 참조한다면, 바닷가에서 조개를 캐듯 변두리 골목과 천변에서 시를 캐낸다는 말이 과히 겉멋 부린 표현으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전당포는 항구다』(창비 2013)에서 박형권은 이전 시집의 말미에 살짝 소개한 면목동 생활을 본격적으로 세밀히 서술하고 묘사한다. 이전 시집의 주요 공간인 산야와 항구의 마을, 즉 뭍과 물이 이름 없이 어우러진 곳은 경계를 구획하기 모호할뿐더러 그럴 필요도 거의 없는 영세 농어민 공동의 생활터전이었다. 반면 『전당포는 항구다』의 면목동 풍경은 우선 동부시장과 중랑천변으로 양분된다. 시장 골목은 다시 전파상, 건강원, 정육점, 미장원, 꽃집, 지물포, 떡집, 식당, 쌀집, 전당포 등으로 세분된다. 소규모 점포가 거리에 도열하여 행정구역을 분할하고, 동네 주민은 일정한 토지면적과 상업시설의 소유권자나 피고용자로서 고만고만한 생계를 영위한다. 중랑천은 우선 노숙자, 실직자, 생활보호대상자를 포함한 주민 모두의 삶을 보듬는 산책과 휴식의 공간이다. 그러나 장마철이면 범람한다는 점에서, 시인 가족이 거주하는 지하 월세집의 곰팡이와 심지어 후꾸시마발() 방사능 빗물에까지 의혹과 불안을 전이하는 불쾌하고 위압적인 습기의 상상이 피어오르는 근원이기도 하다.

시골 고향에서 수도 소시민 주거지구로의 이주. 박형권의 시집 두권은 백석(白石)에서 박태원(朴泰遠)으로의 문학적 이주의 기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박태원이 1930년대 청계천 주변 골목 드난살이꾼의 내력과 속삶을 묘파하면서 특정 시공간의 인구사회학적 모자이크를 구성해나가듯, 박형권은 강북 외곽 하천 가장자리와 재래시장 골목 주민들의 무던한 일상에 관한, 즉 생활양식의 급속한 진화와 적응을 강제하는 현시대의 풍토 속에서도 엄연히 생존하는 “낮은 생태계”(「예천 사과장수」)에 관한 시적 르뽀르따주를 작성한다. 문학적 이주는 청계천에서 중랑천으로도, 물가에서 물가로. 21세기 들어서 청계천이라는 이름 바깥으로 난파한 소규모의 삶들이 『전당포는 항구다』에 표류해 와 있다.

면목동과 중랑천은 역시나 뭍과 물이라는 점에서 박형권의 고향 마을과 닮았다. 혹은 고향을 그리는 자는 외지에서도 기어코 고향과 닮은 것을 찾아낸다. 정 붙이는 법이자, 천변과 연안이 맞닿아 은유가 맺히는 순간이다. “중랑천 옆 동부시장 난전”(「조개할멈」)은 넘나드는 밀썰물에 조개가 떼로 숨는 해변처럼, “중랑천 여울물”(「중랑천 달빛」)은 옛날 젊었던 엄마가 어린 시인을 보러 오는 뱃길처럼. 그러니 도시의 천변도 선착장이다. 시인이 산책하며 시를 낚는. 가족의 추억을 맡기고 국수 한그릇 사 먹는 전당포와 시 적을 종이 한묶음 들고 나오는 지물포는 항구다.

항구. 정말 항구인가. 떠나지 않고 돌아가지 않는데. “아직 거기 계셨던가?”(「지물포 씨의 항구에서」) 은유가 극에 달하자 드러나는 것은 오히려 고향과 외지,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 두 기슭 사이의 거리다. 종이 절단면 같은 두 물가의 간극이다. 무한히 다가오며 멀어지는 장소를 헤집는 자의 문득 늙음도.

그러나 오늘의 천변풍경은. 내일보다 아직은 조금 더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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