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이석기사건과 ‘진보의 재구성’ 논의에 부쳐

 

이승환 李承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 주요 글로 「문익환, 김주석을 설득하다」 「이명박정부 이후의 대북정책 구상」 등이 있음. sknkok@paran.com

 

 

보수지배연합 구축과 ‘종북’ 프레임

박근혜정부 들어와 신안보공세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보수지배연합의 구축을 위한 국가적 기획이 작동하는 속에서 정치와 경제, 언론, 학문과 교육 등 사회 모든 영역에서 유신시대를 방불케 하는 퇴행적 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민주주의의 위기는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퇴행의 정당화에 동원되는 전가의 보도가 바로 ‘종북(從北)’ 프레임이다. 종북이거나, 종북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거나, 혹은 종북을 묵인하는 모든 것이 종북이며, 이런 종북친화적인 ‘비정상’의 사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민주주의 퇴행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동원되고 있다. 그리고 이른바 ‘이석기(李石基)사건’은 이러한 종북척결 프레임을 위해 오래 준비된 ‘제물’이었다.

이석기사건에 대해 통합진보당 출신의 심상정(沈相奵) 정의당 의원은 “내란음모에 대한 사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그동안 드러난 이석기 의원의 여러 언행이 국회의원으로서는 용인되기 어려운 시대착오적인 위험한 언행들이었다”1)고 비판하는 반면, 통합진보당의 이상규(李相奎) 의원은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조차도 사실 매카시즘 속에 갇혀 있다”며 “종북 프레임이라고 하는 것이 그 점에서 아주 위험하다”2)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듯 이석기사건과 관련한 논의는 매우 조심스럽다. 사실 이들의 행위가 ‘내란음모’에 해당하는가 하는 법적 문제도 문제이거니와, 이들에 대한 비판이 자칫 종북 척결을 명분으로 한 보수지배연합 구축에 협조하는 편승행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라는 영역이 여론의 비판과 집단지성적 평가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들이 정당정치의 한 행위자가 되는 순간부터 진보진영 내부의 ‘공개비판’이라는 금기는 이미 풀렸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이석기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상징하는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더이상 금기의 영역에 이 문제를 두기는 어려운 상황이 되었고, 또 이를 계기로 한국 진보의 성찰과 재구성으로 나아가는 논의 역시 회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주파와 ‘종북’은 동일시될 수 없다

‘이석기그룹’3)이 속해 있는 이른바 ‘자주파(NL)’는 대체로 분단체제의 해소와 통일실현의 문제를 민주주의 발전 문제와 결합하여 사고하는 모든 운동세력을 호명하는 명칭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평등파(PD)’는 분단체제의 해소와 통일실현의 문제보다 남한사회에서의 민주주의 실현 문제에 더 집중하려는 세력의 통칭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자주파는 평등파에 비해 분단체제에 훨씬 더 민감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평등파 일각의 ‘분단둔감증’이 북한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 인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듯이, 자주파 일각에는 북한을 자주가 실현되고 있는 모델로 보거나 북한의 이론과 사상을 수용하려는 입장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민주노동당 내부논쟁 과정에서 ‘종북’이라는 낙인을 받았던 이석기그룹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종북’은 말 그대로 북한을 추종한다는 의미인데, 이는 북한의 분단기득권세력, 정확히는 분단체제를 보존강화하는 당사자로서의 북한정권을 옹호하거나 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의미로 엄밀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단순히 북한의 사상과 이론을 우리 사회에 변용하려고 노력하거나, 또는 특정 문제에 대해 북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만으로 종북의 혐의를 씌울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종북’은 분단체제의 어느 한 기득권 편에 서 있다는 의미이지, 어떤 운동세력이나 정치세력이 가진 사상과 노선을 지칭하는 용어가 될 수는 없다.

종북의 개념을 이렇게 규정할 때, 이석기그룹조차도 약간의 논란이 있을 수 있는데, 하물며 자주파 일반을 모두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전혀 온당치 않다. 자주파가 경전으로 삼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615남북공동선언의 제1항은 종북과는 전혀 무관하다. 자주파가 이 조항을 제대로 해석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남과 북이 통일을 위해 협력하자는 이 조항은, 바꾸어 말하면 남에 있건 북에 있건 분단체제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모든 세력은 비판받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석기사건을 자주파 전반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것이 보수정권의 종북 프레임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비판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종북 프레임은 분단체제하에서의 ‘정치적 낙인찍기’이고 그 본질은 ‘87년체제’ 성립 이전에 우리 사회를 꽁꽁 옭아맸던 바로 그 ‘반공주의’의 변형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지적이 자주파 전반에 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경선 부정선거 사태와 관련한 어느 방송토론 자리에서 통합진보당의 한 의원이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시민의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말한 일이 있다. 후에 그 의원은 “그때 일부 지식인들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유권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그걸 왜 강요하고 강제하려 하는가”라고 반박했다.4)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은 것도 사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