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마샤두 지 아시스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창비 2013

주변부 작가로서의 마샤두 지 아시스

 

 

우석균 禹錫均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교수 wsk65@snu.ac.kr

 

 

162-촌평-우석균_fmt브라질 소설가 마샤두 지 아시스(Joaquim Maria Machado de Assis, 1839~1908)에 대해 쑤전 쏜택(Susan Sontag)은 “라틴아메리카가 낳은 최고의 작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은 “일종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들이 가장 예찬한 작품이 바로 최근 번역 출간된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Memórias Póstumas de Brás Cubas, 박원복 옮김)이다. 놀랍게도 이 소설은 1881년 출판되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미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소설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 이보다 반세기 후이고, 19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라틴아메리카 소설이 세계문학의 장에 자리매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히 선구적인 작품인 것이다.

사실 필자도 놀랐다. 마샤두 지 아시스는 베르길리우스, 단떼, 세르반떼스, 셰익스피어, 몰리에르, 스땅달, 로런스 스턴 등 서구문학 전통의 대가들의 작품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서구철학과 당대 유럽의 주요 사건에 대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소설은 서구에서 이식된 문학제도였고, 따라서 이른바 ‘영향의 불안’, 특히 중심부와 주변부 관계에서 가장 큰 딜레마인 정신적 예속의 불안이 오늘날의 브라질문학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이로부터 자유로운 작가가 그토록 이른 시기에 존재했다는 점은 정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늦게 태어난 덕분에 더 많은 문학자산을 향유할 수 있고 주변부에서 태어난 덕분에 오히려 중심부와 주변부를 아우르는 문학자산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1899~1986)의 선조이자, 비슷한 맥락에서 서구가 이미 살아버린 과거를 사는 것 같은 자격지심을 결국은 극복할 수 있었노라고 선언한 옥따비오 빠스(Octavio Paz, 1914~98)의 선조가 바로 마샤두 지 아시스인 것이다. 또 그는 평생 당시 브라질의 수도 히우지자네이루(Rio de Janeiro)를 사실상 벗어난 적이 없었다니, 평생 꾸바 섬에 살았으면서도 서구 문학전통을 꿰찼던 호세 레사마 리마(José Lezama Lima, 1910~76)의 선조이기도 하다.

마샤두 지 아시스의 주변부 작가로서의 자유는 이 책에서 죽은 자가 작품의 화자라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더욱 빛난다. 삶의 굴레를 벗어던졌으니 못할 말이 뭐 있겠느냐는 듯한 태도로 화자 브라스 꾸바스가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회고록은 회고록다운 품위가 전혀 없다. 우선 남편 있는 여인과의 간통 이야기가 주요 사건이다. 반쯤 미치광이인 친구 낑까스 보르바의 개똥철학 ‘후마니티즘’(Humanitismos)에 대한 회고가 양념처럼 등장하기도 하고, 머리를 선선하게 해야 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에 따라 군인모 크기를 줄여야 한다거나 군인모가 무거우면 시민이 국가권력에 짓눌린다는 요지의 의회연설을 했다는 일화도 등장한다. 뭔가 미련이 남았기에 죽은 후에도 이승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썼을 텐데 그 내용이 결코 모범적이지 않은 이야기, 궤변, 허무로 점철되어 있으니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브라질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의 에스빠냐어권 국가들과는 달리 독립과정도, 독립국가의 체제를 다지는 과정도 비교적 순탄했다. 뽀르뚜갈 왕실은 나뽈레옹(Napoléon Bonaparte)의 침입 때 지배계층 전체를 이끌고 1808년 히우지자네이루로 도피했다. 덕분에 브라질은 식민지가 아닌 뽀르뚜갈-브라질-알가르브(Algarve) 연합왕국의 일원으로 격상되었다. 그 덕분에 브라질인들은 오직 메트로폴리스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근대적 문물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나뽈레옹 패배 후인 1821년 당시 국왕 주앙 6세는 귀국했지만 그의 아들 뻬드루 1세는 브라질 통치를 위해 남았고, 브라질의 지위를 식민지로 되돌리려는 뽀르뚜갈에 반발한 식민지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1822년 독립을 선언한 뒤 별다른 저항 없이 황제로 즉위했다. 독립과 건국 과정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은 에스빠냐어권 라틴아메리카와는 분명 다른 역사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양날의 칼이었다. 에스빠냐어권 라틴아메리카처럼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행운을 얻었지만, 구체제가 지속되면서 혁신과 사회변혁에 장애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샤두 지 아시스가 그린 브라질에서 구체제 지속의 명백한 증거가 바로 브라스 꾸바스의 삶이다. 브라스 꾸바스의 집안은 귀족 칭호를 얻기 위해 족보까지 위조한다. 또 그것만으로는 성이 안 찬 그의 아버지가 “신부(新婦)와 의회는 같은 거야”(100면)라고 말하면서 아들과 비르질리아의 결혼을 추진한다. 하지만 비르질리아는 자신을 후작 부인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큰소리치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만다. 대신 브라스 꾸바스와는 연인으로 지낸다. 그때부터 브라스 꾸바스는 미래 없는 사랑에 부질없이 집착하며 삶을 낭비한다. 글을 통해 어느정도 이름을 얻지만 오랫동안 독신을 고수하고, 낑까스 보르바의 개똥철학에나 관심을 기울이고, 훗날 하원의원이 되어서도 예의 군인모 연설로 비웃음을 사고, 연설로 더이상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할 바에야 신문을 통해 설득하겠다고 작심하지만 신문사 운영도 생산적으로 하지 못한다. 브라스 꾸바스의 무의미한 삶이나 염세주의적 태도는 건국의 열정으로 가득한 진취적인 나라가 아니라 구체제의 연장선상에서 쇄신의 가능성이 봉쇄된 브라질의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는 두가지 침묵이 존재한다. 하나는 영국에 대한 침묵이다. 뽀르뚜갈 왕실의 브라질 이주와 브라질 독립은 모두 제국주의국가로 변모하던 영국의 강력한 지원으로 이루어져서, 당시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영국의 압력이 가장 강한 나라였는데도 말이다. 또 하나는 흑인에 대한 침묵이다. 친할아버지가 흑인 해방노예였고 자신은 물라또(mulato)였건만 마샤두 지 아시스는 이 소설에서 흑인문제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서구 문학과 사상을 자격지심 없이 넘나들었지만, 첨예한 사회문제에 눈을 감은 것은 이 소설에 대한 특별한 성찰을 요구한다.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책무를 유기한 것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문제투성이 물질적 토대 속에서도 지적인 수준만은 서구를 넘어선 것을 예찬할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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