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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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미 崔銀美

1978년 강원 인제 출생. 200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이 있음. alfmrlal@naver.com

 

 

 

근린(近隣)

 

 

공원에서 사고가 일어난 것은 1031일 오전이었다. 날개폭이 육 미터 남짓인 소형 비행체 한대가 근린공원 체력단련장에서 등산로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에 추락했다. 연합뉴스는 이 비행체가 RQ105 기종의 육군 소속 무인정찰기로, 사고 당시 원격조종을 통한 무인정찰훈련 비행 중이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를 목격한 주민들은 “하늘에서 오토바이가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나 쳐다보니 아파트 이십층 높이에서 비행체가 날아가고 있었”으며 “어느 순간 보니 이 비행체가 날개를 뒤집은 채 추락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은 근린공원에서 ‘어르신문화축제’가 열리던 날로 사고시각인 오전 열한시경, 공원 야외공연장과 체력단련장 인근에는 이미 백여명의 인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 사망자는 단 한명이었다. 튀어 날아온 기체 파편에 목이 찔린 사망자는 ‘대동맥 파열로 인한 대량출혈’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평소 근린공원에서 사망자를 자주 봐왔다는 한 주민은 ‘그 여자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1

 

시월 첫날 아침 근린공원사거리의 도로상황은 무난했다. 신호대기 중이던 아반떼 승용차를 마을버스가 들이받는 일이 있었지만 출근길 교통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근린산 위로 떠오른 아침해는 가을이 시작된 산을 타고 내려와 부채꼴로 펼쳐진 근린공원 진입광장과 그 앞의 횡단보도까지 고루 비추었다. 하늘은 파랗고 바람은 잔잔했다. 야외활동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출근 차량이 빠지고 도로가 한적해질 무렵, 젊은 여자 한명이 근린공원 입구에 나타났다. 회색 치마레깅스에 짧은 후드점퍼를 걸친 여자는 잠에서 덜 깬 듯 흐느적거리며 벤치 쪽으로 걸어갔다. 여자는 부채꼴 이쪽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더니 고개를 파묻고 움직이지 않았다.

곧이어 늙은 여자 두명이 걸어와 부채꼴 저쪽 벤치에 앉았다. 잠시 뒤 같은 또래로 보이는 여자가 둘을 부르며 건너왔다. 건너온 여자는 숨을 헐떡이더니 자신이 간밤에 똥 싸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앉아 있던 여자 중 한명이 만원짜리 세장을 꺼내 그 꿈을 샀다.

서쪽 방면에서 오던 차가 사거리 북서 방향의 주유소로 들어갔다. 북동쪽에서 내려온 바람이 여자들의 등을 훑고 사거리 교차점을 지났다. 벤치에 나란히 앉은 늙은 여자 셋은 그들의 대각선 맞은편, 사거리 남서 방향에서 무언가가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 저기나 한번 가볼까?”

꿈을 산 여자가 말했다.

“원장이 꽤 용하다던데.”

가운데에 앉은 여자가 말했다. 꿈을 판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거리 남서쪽 건물 안에 있는 것은 휴대폰 대리점과 편의점, 독서실과 피씨방, 학원들과 노인요양원이었다. 그 옆으로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 있었다. 건물 외벽을 덮은 현수막에 ‘관절’ ‘척추’ ‘통증’ 같은 글자가 보였다. 건물 앞에서 움직이며 그들의 시선을 끈 것은 키다리 허수아비 풍선이었다. ‘만성통증 조기치료’라는 여덟 글자를 몸에 새긴 허수아비가 양팔을 펼친 채 바람을 타고 있었다.

“옆에 있는 건물이 죽네……”

어쩐지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꿈을 판 여자가 한마디 했다. 나머지 두 여자가 웃긴다는 표정으로 꿈을 판 여자를 보더니 대꾸를 하지 않았다. 일교차가 점점 벌어져 그들 중 한명이 머플러를 풀었을 무렵 중년 여자 한명이 애완견과 자루를 안고 산에서 내려왔다.

“밤 많이 떨어졌어요?”

가운데 여자가 물었다.

“할머니들이 새벽같이 올라가서 얼마나 주워가는지 벌써 빈 껍질이 수두룩해요. 좋은 델 잘 찾아야 돼요.”

“어디가 좋아요?”

중년 여자의 팔에서 내려온 시추가 벤치를 맴돌며 짖었다.

“명당자리가 하나 있어요. 밤나무하고 참나무가 얼마나 큰지……”

“알알 알알.”

시추가 말을 끊으며 뛰어갔다. 동쪽에서 온 차들이 남쪽으로 좌회전을 시작하자 사거리 남동 방향의 아파트단지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왔다.

“알알 알알.”

보행신호와 함께 부채꼴 광장으로 쏟아져들어온 건 연두색 단체복을 입은 유치원생들이었다. 아이들은 시추에게 달려들기도 하고 공원 조형물에 올라타기도 하면서 흩어졌다 모였다 했다. 사각정자가 있는 부채꼴 꼭짓점에서 다시 줄을 선 아이들은 잠자리채를 높이 쳐들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손짓에 맞춰 합창을 시작했다. 잠자리 꽁꽁, 꼼자리 꽁꽁. 이리 와라 꽁꽁, 저리 가라 꽁꽁. 이리 오면 살고, 저리 가면 죽는다.

유치원 아이들이 휩쓸고 간 부채꼴 광장의 사각정자 위에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여자아이 한명이 앉아 있었다. 아이는 숲 체험을 떠난 유치원생들과 같은 또래로 보였다. 아이 앞에는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는 빨간색 크레파스를 꺼내더니 흰 종이 위에 제일 먼저 해를 그렸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여자가 정자에 걸터앉아 아이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다음엔 누가 커피 좀 타와.”

꿈을 산 여자가 말했다. 점심때가 되자 여자아이와 엄마는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단지 후문으로 사라졌다. 사거리 남쪽 방향에서 온 맥도날드 오토바이가 그들을 따라 아파트단지로 들어갔다. 레깅스 여자가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을 때에는 허수아비 풍선의 팔 한쪽이 직각으로 꺾여 있었다.

 

2

 

꿈을 판 여자는 애초에 꿈을 팔 생각이 없었다. 깨고 나서도 흥분이 가시지 않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삼만원을 얼떨결에 받아드는 게 아니었다고 여자는 후회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여자가 볼일을 본 곳은 모래알과 조약돌이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웅덩이였다. 분홍빛 대변이 여자의 몸에서 끝도 없이 빠져나왔다. 변은 물속에서부터 똬리를 틀며 올라왔다. 물에서도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실한 변이었다. 여자가 꿈에서 깬 것은 그 변이 몸속으로 다시 들어왔을 때였다. 기다랗고 굵고 단단한 것이 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 여자는 눈을 떴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허전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여자는 꿈 생각에 아침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그런 실수를 한 것이었다. 그날 아침의 모든 행동과 언행이 평소의 자신답지 않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성급하고 수다스러운 편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온화하게 늙었다는 말을 듣고 사는 쪽이었다. 육십대 중반이었지만 아직 환갑 전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만큼 피부도 괜찮았다.

여자는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았다. 꿈을 팔고 난 뒤 지난 며칠은 무얼 해도 예전 같지가 않았다. 밥맛도 없었고 무릎도 더 시렸다. 누가 말을 하면 서운한 생각부터 들었고 까닭도 없이 눈물이 돌았다. 여자가 한숨을 내쉬며 거울에서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 며칠간 구부정했던 여자의 등이 전화를 받는 동안 점점 펴졌다. 여자는 두번 연속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꿈을 판 여자는 꿈 따위는 잊어버린 듯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물을 끓여 보온병에 넣고는 커피 몇봉지를 챙겨 현관문을 나섰다.

같은 시간에 꿈을 산 여자도 전화를 받았다. 근린공원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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