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동아시아 담론, 온 길과 갈 길

백영서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의 안팎 살피기

 

 

이정훈 李政勳

서울대 중문과 교수. 중국의 사회문화 및 동아시아 담론과 관련한 최근 논문으로 「중국의 미래, 중국이라는 미래」 「한국발(發) 동아시아 담론의 현단계: 최원식의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에 대하여」 등이 있음. luxun@snu.ac.kr

 

 

1. 들어가며

 

백영서(白永瑞)의 새 책 『핵심현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창비 2013, 이하 핵심현장)를 접하는 반가움은 각별하다. 복고적 권위주의로의 퇴행으로 요약될 법한 최근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지식계 전반에 미만(彌滿)한 무기력에서 벗어나 지식공론장을 재활성화하는 데 ‘동아시아’만큼 적합한 의제도 달리 없다는 생각에서다. 이 책에는 저자가 2000년에 출간한 『동아시아의 귀환: 중국의 근대성을 묻는다』(창비, 이하 『귀환』)를 통해 한국 지식계에 동아시아를 하나의 화두로 제출한 이후 지금까지 온양(醞釀)해온 관련 논의의 성과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까지의 작업에 대한 저자 스스로의 중간결산인 동시에 한국지식계 내부에서의 후속토론을 위한 예비발제로서의 성격도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최원식(崔元植)과 더불어 이른바 ‘창비발()’ 동아시아 담론의 축을 맡아온 저자의 입론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글은 저자의 문제의식이 좀더 널리 확산되어 지식계의 동아시아 관련 논의가 재활성화되었으면 하는 기대에서 출발한다. 자료의 폭넓은 섭렵과 학적 엄밀함이 녹아 있는 문체는 『핵심현장』의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 문제의식이 대중적인 파급에 최적화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몇몇 일간지에서 서평의 형태로 출간의 의의를 짚어본 바도 있으나 평자로서는 좀더 본격적인 반향에 대한 아쉬움이 적지 않았다.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집약되고 체계화된 저자의 논지를 짧은 지면에 굳이 반복해서 소개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 글을 통해 저자가 그간 거쳐온 지적 모색의 역정을 되짚어보는 일은 향후 한국 지식계에서 동아시아론을 둘러싼 진전된 토론의 활성화를 위하여 긴요한 작업이라 판단된다. 하여 여기서는 동아시아론과 관련한 저자의 첫번째 책 『귀환』과 여타 다른 저작에 실리지 않은 그의 의미있는 작업1)을 포함하여 좀더 넓은 맥락에서 『핵심현장』의 의미를 살피는 것을 소임으로 삼고자 한다.

 

 

2. ‘주변’의 정당성: 동아시아 담론의 민족주의 DNA와 그 극복

 

90년대초 당시 동아시아론의 제기가 80년대말 이후 한국사회 안팎에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부분적 성취,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탈냉전 및 구 사회주의권과의 수교(북방정책) 등의 상황변화 속에서 70년대까지의 민족주의와 80년대 대두된 ‘급진’ 담론의 한계에 대한 자각과 대안의 모색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3년 최원식이 발표한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2)에 이어 백영서가 발표한 「한국에서의 중국현대사연구의 의미: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을 위한 성찰」3)과 「중국 인권문제를 보는 시각: 동아시아적 상황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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