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박근혜 1년,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
‘시대교체’와 군사주의의 덫
이태호 李泰鎬
참여연대 사무처장, 시민평화포럼 공동운영위원장. 주요 저서로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공저) 이 있음. gaemy@pspd.org
1. 안보논리에 포획된 ‘시대교체’
지난 2012년에 치러진 대선을 되돌아보는 것은 여러모로 어렵고도 곤혹스러운 일이다. 아직 그 진상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국정원 및 여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선거결과에 미친 영향까지 고려하면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리를 감수하고 지난 대선의 의미 혹은 주된 의제에 대해 요약하면, 경제민주화와 복지확대를 위한 대안, 그리고 한층 불안정해진 한반도 상황에 대한 해법을 둘러싼 정치세력 간의 비전 경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문제가 보수와 진보 모두를 아우르는 의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군부독재 시절 형성된 특권적 재벌체제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결합하여 초래한 극단적인 사회양극화를 더이상 방치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인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는 이명박정부는 물론,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부터 꾸준히 심화되어온 것이다. 한편, 한반도 상황 역시 길게는 정전 이후 60여년간, 짧게 보더라도 탈냉전 이후 20여년간 해결되지 않았으며 최근 수년간 급격히 악화되어 남북 간의 국지적 무장갈등까지 불러온 해묵은 숙제다. 국민 입장에서 본다면 민주정부가 표방했던 포용정책도, 보수정부가 내세웠던 봉쇄정책도 성공적으로 먹혀들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012년 대선 당시 주어진 이같은 큰 숙제에 대해 백낙청(白樂晴)은, 여야 혹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87년체제가 교착상태 내지 말기적 혼란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청산”할 “새로운 체제”1)를 기대하는 시대의 갈증에 답하는 것이라고 요약한 바 있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이 선거운동과정에서 자의든 타의든 ‘정권교체 수준을 넘는 정치교체와 시대교체로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주장한 것도 기실 대선에 주어진 시대의 화두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라고 해석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보수혁신을 시도했던 이상돈(李相敦)은 박근혜 대통령이 “(35퍼센트의) 기존 보수는 가져가고 거기다가 15퍼센트를 얹기 위해서는 시대가 요구하는 길을 가야” 한다고 제언하면서, 그럴 경우 “박근혜판 제3의 길”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피력하기도 했다.2)
사실 우리가 ‘87년체제’라 부르는 시기도 야권의 집권으로 열린 것이 아니라 군부출신인 노태우(盧泰愚)의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되었으므로,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이 부족하나마 새로운 시대교체의 출발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그 시작부터 자신이 교체하겠다고 공언한 낡은 정치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보수정권의 재창출을 위한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 사건이 드러난 이후 박근혜정부는 이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고 파장을 축소하기 위해 다시 낡은 안보 카드를 꺼내들었다. 대선‘공작’에도 사용했던 남북정상회담 비밀회의록을 무단으로 공개해 NLL(북방한계선) 포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국정원을 동원해 공안사건을 기획하는 등 시대를 역행하는 종북몰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이같은 임기응변책은 진보개혁적 목소리를 안보 프레임에 가두고 수구적인 ‘집토끼’들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데는 제법 쓸모있게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에 이어 박근혜정부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민주・복지・평화를 향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동원된 군사주의와 안보담론은 사회 전체를 소모적 이념대결과 적개심, 탐욕과 폭력으로 몰아감으로써 보수의 쇄신을 통한 시대교체라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점점 소멸시키고 있다.3)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비정상화의 정상화’에서 법과 원칙이란 국정원과 군의 헌정파괴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정치적 반대파와 서민의 눈과 입을 막는 데만 편파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그 결과 박근혜정부가 내세웠던 ‘신뢰’의 이미지는 물론 공권력의 공정성과 공공성에 대한 신뢰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민주화와 민생복지는 어느새 경제활성화와 규제완화 같은 익숙한 용어로 대체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른바 ‘87년체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교착되어왔는지, 그리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우리 안의 수구적 안보 프레임과 군사주의에 어떻게 가로막히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이 어떻게 시대역행의 장애물을 뚫고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앞당길 대담한 민주・복지・평화의 실천을 위해 몇가지 제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2. 87년체제의 교착과 행동하는 우익의 등장
1987년 민주화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부족하나마, 이념적으로 편향된 특권적 분단체제 내에서 제약되어왔던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정의를 향한 요구가 분출하고 일부 제도화되는 결실을 얻었다. 또한 해묵은 남북 간 대결구도 및 적대감을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을 얼마간 구체화할 기회, 그리고 분단으로 인해 왜곡됐던 역사인식과 묻혀 있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새로운 사회적 합의를 시도할 기회도 확보했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의 민주개혁이 시민의 입장에서 만족스러웠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 시기는 부분적인 복지제도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특권적 재벌경제체제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경제의 양극화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극적으로 심화된 때였다.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금융・시장의 개방화 및 외국과의 FTA 체결이 글로벌 스탠드라는 이름으로 위로부터 강요되고, 서민에게는 실업과 비정규직 증가, 치솟는 교육비와 부동산 가격, 가계부채와 파산의 위협이 일상화된 것이다. 한편, 김대중정부 이래 시도된 대북포용정책의 성과로 6・15남북공동선언(2000)을 거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이 가동되고 북미관계 개선 논의도 시작되었지만, 미국의 부시(G. Bush) 행정부 등장과 ‘테러와의 전쟁’ 분위기 속에서 제동이 걸린데다 북한은 북한대로 핵 카드를 이용한 벼랑끝 외교로 맞서면서 남북관계는 다시 긴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 문제는 이후 오랜 남남(南南)갈등의 소재가 되어왔는데, 6・15선언으로 형성된 남북협력구조가 북한의 변화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측과 더 강한 압박만이 북한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측 간의 논쟁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민주정부의 내정과 대외관계는 80년대 이래 한세대를 풍미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및 테러와의 전쟁 이후 전지구적 차원에서 군사주의를 강화한 미국과의 동맹관계, 그리고 분단체제의 상대편인 북한체제의 구조적 문제 등에 의해 제약된 면이 적지 않았다.4)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비판하면서 이명박정부가 집권한 2007년 대선과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
-
2023년 봄호 ‘적’을 만드는 정부와 시민사회 연대의 재건이태호
-
2022년 봄호 국방개혁과 한국사회 대전환이태호
-
2021년 가을호 천안함, 아직 인양되지 않은 진실이태호
-
2016년 여름호 민주적 통제 밖의 한국군대이태호
-
2014년 봄호 ‘시대교체’와 군사주의의 덫이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