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박근혜 1년,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
연합정치의 진전을 위하여
변혁적 중도주의의 시각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등과 편서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왜 변혁적 중도주의인가?
연합정치를 변혁적 중도주의의 시각에서 검토한다는 취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주지하다시피 연합정치는 최근까지 야권의 주요한 정치전술이었지만 변혁적 중도주의 자체는 아직 생소하고 어려운 개념이며 구체적인 정치전술과 어떤 ‘주의(主義)’로서의 추상 수준 사이에서 큰 차이가 있어 양자의 결합이 그리 어울려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12년에는 선거 승리라는 단기적 정치목표를 넘어서 남한사회의 개혁이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으로 이어지는 큰 변화에 대한 원(願)과 변혁적 중도의 지향을 담는 용어로 ‘2013년체제’가 제시된 바 있다.1) 이러한 의미에서 2013년체제론은 일종의 ‘변혁적 중도주의의 보급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2012년 선거국면에서 2013년체제론을 매개로 연결된 연합정치와 변혁적 중도주의의 관계는 사실 꽤 오래된 것이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온건개혁세력, 각종 진보세력, 합리적 보수세력’이 ‘분단체제 변혁’을 목표로 광범위한 중도세력의 형성을 추구하는데,2) 이러한 인식에 기초해 2008년부터 연합정치 논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다. 2012년 선거국면에서는 연합정치가 필연적 흐름으로 보였지만, 2008년으로 되돌아가보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3)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양대선거에서 민주파가 참담한 패배를 겪은 이후 연합보다 ‘창조적 분화’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들은 이명박정부가 과거 수구적 정권과 차별적인 보수정권이 되리라는 예단을 근거로 민주와 반민주(혹은 독재)라는 구도를 계속 한국정치에 적용하는 것은 낡은 사고이며 민주파 내의 진보세력과 보수적 개혁세력의 분리를 촉진하는 것으로 정세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세인식이 분단체제라는 한반도적 상황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후 사태의 전개가 잘 보여준다. 분단체제하에서 수구적 기득권 세력이 여전히 한국사회 전반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변혁적 중도주의는 ‘창조적 분화’가 중도적 지혜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이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를 부를 것이고, 따라서 분단체제하에서 받는 억압의 극복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세력의 연합으로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의 정세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4) 이러한 주장에 대해 중도가 어떻게 변혁적일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변혁적 중도라는 변증법적 결합은 우리 상황에서 변혁적 과제가 그 시기 ‘급진적’ ‘혁명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노선보다 중간에 가까운 노선을 요구하기 때문에 가능해진다.5) 즉 분단체제 극복에 대한 인식이 없거나 이에 기여할 수 없다면 아무리 급진적인 주장이라도 ‘변혁적’으로 되기 어려우며, 반대로 중도적 길이 분단체체 극복의 현실적 대안이 될 때는 ‘변혁적’으로 된다.6)
물론 연합론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한 데는 2008년 촛불항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명박정부의 역주행이 본격화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폭발하자 이를 담아낼 수 있는 정치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이에 반이명박 투쟁의 정치적 성과를 민주파 내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정치연합, 즉 선거연합이 그 구체적인 전술로 제기되었다.7) 이에 따라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선거연합이 성사되고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연합정치는 2012년까지 야권의 중요한 정치전술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11년 처음 제창된 2013년체제론은 이 시기 연합정치의 주요 목표로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변혁적 중도주의 보급판으로서의 효과를 어느정도 발휘했다. 그러나 연합정치가 2012년의 선거 승리만이 아니라 새로운 체제의 출범에 값하는 비전의 공유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점, 이러한 비전은 변혁적 중도주의를 토대로 해야 한다는 점 등 2013년체제론의 근본 취지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연합정치가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고 2013년체제론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직후 백낙청은 연합정치가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고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천착이 필요하다는 점을 환기하는 한편 이러한 관점에서 연합정치의 질적 제고를 위한 여러 제안을 한 바 있다.8) 그러나 대선이 목전에 다가오고 후보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되던 시점에서 이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것이 이 글에서 다시 연합정치와 변혁적 중도주의의 관계를 논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변혁적 중도주의를 따르지 않은 것이 2012년 연합정치가 실패한 원인이라고 강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태에서 기로에 처해 있는 연합정치가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는 데 변혁적 중도주의가 여전히 유의미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는지, 그렇게 되기 위해서 변혁적 중도주의 자체에는 어떤 성찰이 필요한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2. 연합정치가 직면한 난제
승리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2012년 대선 패배가 민주파에 준 충격은 2007년 대선에서 패했을 때보다 더 컸다. 2007년의 패배 이후에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논의라도 활발하게 진행되었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하다. 새로 출범한 박근혜정부와 국민 사이의 허니문도 끝나가고 카드 신용정보 유출대란, 조류독감 확산 같은 국가적 재난사태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다가오는 지방선거가 박근혜정부에 대한 달라진 민심을 보여줄 수 있는 호기임에도 이러한 노력을 주도해야 할 민주파의 진로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연합정치에 대한 논의가 이러한 문제점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촛불항쟁을 거쳐 2010년 6월 지방선거로 나아가던 2010년초에 야권과 시민사회는 정책연합 및 공동정부를 매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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