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작은 것들의 정치성
2010년대 시가 ‘안녕’을 묻는 방식
양경언 梁景彦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참된 치욕의 서사 혹은 거짓된 영광의 시: 김민정론」 등이 있음. purplesea32@hanmail.net
1. 2010년대 시를 위해 더 말해야 하는 것
2010년대 한국시는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얼마간의 비평은 지금 우리에게 도착한 시편들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1) 언제나 “영향에의 불안”(헤럴드 블룸) 속에서 이어지는 것이 문학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기원’의 탐색이 의미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쓰기를 추동하는 현실이 시시각각 변하기도 하거니와 여기에 비평이 얼마나 기민하게 개입하느냐에 따라 시에서 형성된 현실 역시 다른 의미화가 가능하다. 이는 2010년 이후에 등장한 시를 읽는 방법으로 2000년대 시를 거꾸로 경유하는 비평적 회로의 설계에 필자가 일면 동의하면서도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둘 수 없는 이유이다.
2010년대 시에 대한 담론이 유독 2000년대 시와의 영향관계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른바 ‘미래파’로 불리는 2000년대 시를 읽는 과정에서 제기됐던 여러 질문—시에서 누가(주체), 어떻게(화법) 말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들—을 집요히 추궁해간 덕분에, 비평은 시의 틀을 한정하기보다는 넓히는 방향으로 작품에 접근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었다. 어떤 난감한 작품이 출현할지라도 그에 담대하게 반응할 채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 질문과 추궁의 과정은 2010년대 시를 향해서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미처 논의를 다 통과하지 못한 지금의 비평은 그러한 가르침을 전수한 담론의 자장에서 당연히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비평이 2000년대 시를 지속적으로 호출하는 것은, 이제는 ‘명명’의 불완전함을 실감하게 된 비평이 전위를 선언하지 않고도 새로 씌어진 작품의 의미를 선취하기 위해 고안한 방식일 수도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작품의 새로움을 소비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상황을 지연시키려는 시도에 가깝다. 그러나 만약 그와 같은 독법만을 계속해서 따르게 된다면 2010년대 시의 단독성이 제대로 존중받을 길은 묘연해진다. 동시대의 작품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비평의 가능성조차도 지연되는 것이다.
시인에게 육박해오는 현실이 언어로 수행되는 것이 시라면, 문학사적인 지형을 그리는 작업에 있어서도 시가 쓰인 해당 시기에 대한 고려가 동반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태껏 비평은 지금의 시편들이 쓰이고 있는 현실의 양태를 제한적으로만 살피느라, 그에 대한 충실한 사유를 전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에게 도착해버린 시편은 저 자신을 면밀하게 내보이기 위해서 오늘날의 현실에 좀더 발랄하고 적극적으로 조응하고 있지는 않는가. 다시 묻는다. 2010년대 시는 다른가? 2010년대 시에서 말하는 자는 어디에, 어떻게 있나.
2. 현시—‘작은 것’들의 정치성
신형철(申亨澈)은 2000년대 시가 “대의불충분성과 대의불가능성”이라는 정치적 조건하에서 ‘극적 독백’의 화법을 발굴했고, 그후 정치적인 변화가 딱히 없다고 할 만한 2010년대에는 앞선 시들로부터 받은 영향에 따라 시들이 ‘감응적 인물’을 창조한다고 했다.2) 그러나 2010년대 시에서 “현실의 배치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다른 감각-미학적 체제의 정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