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종옥 金鍾沃

1973년 서울 출생. 2012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pstay@live.com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

 

 

어느날 나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그녀를 만나러 가기 위해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길을 찾는 데 영 젬병이어서, 웬만하면 내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가기 전에는 충분히 길을 조사하고는 했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확인하고 구간마다 잘라서 A4용지로 여러장을 출력한다. 사실 네비게이션을 달면 그런 수고를 피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은 내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얼마나 자주 가겠느냐 싶은 생각이 매번 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결코 원하지 않는 일 중 하나다. 그러나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전화 목소리, 전화 설명만을 듣고는 “알았어, 지금 출발할게”라고 대답한다. 그녀가 다급하게 날 찾았기 때문일까? 경황이 없어서? 아니, 정반대다. 오히려 아무 급할 것이 없어서, 가다 길을 헤맨다 해도, 그저 조금 돌아가는 것일 뿐이어서, 나는 아무 준비 없이 차에 올랐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길을 헤맸다. 그곳은 서울의 남쪽에 있는 도시였다. 분당은 아니었고, 인천 가는 길과도 달랐다. 분명히 그녀는 지명을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기억이 희미하다. 그녀가 왜 그곳에 갔는지, 또 그게 그녀와 한번 헤어지고 나서인지, 그러니까 두번째 만나기 시작하면서 있었던 일인지 어떤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리 느긋하게 맘을 먹고 헤매기로 작정했다 해도, 막상 길 위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 건지,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어지면 그 모든 마음의 준비 같은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마음이 급해지고, 왜 미리 알아보지 않았는지 자책하고, 전화통화를 하면서 그녀의 설명이 불충분한 것 같아 목소리가 커진다. 그녀는 아까부터 어떤 터널에 대해서 얘기했다. 터널을 통과하면 돼. 나는 그게 몇 차선인지 묻는다. 터널 이름이나 표지판이나, 아니면 다른 구분할 만한 표식 같은 것이 있는지. 그러나 그녀는 그저 늦어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한다. 아, 그러고 보면 그녀는 어느 가정집에 있었던 것 같다.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집에. 전화기 너머로 티브이 소리나, 사람들의 목소리. 특히 어린아이 목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나도 나 자신에게 말한다. 괜찮아. 그렇게 멀리 돌아가는 건 아니야. 그러다, 거의 기적처럼, 도로 전방에 터널이 보인다. 진작부터 차들의 속도는 많이 줄어 있어서, 터널이 보이고 나서도 한참을 도로 위에 서 있었다. 나는 마음 깊이 안도한다. 창문을 열었더니, 생각보다 바깥 공기는 따뜻했다. 터널의 입구에서 나는 다시 창을 올렸고, 터널을 통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은 과천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근거는 전혀 없다. 과천이 아닐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닐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만일 과천이었다면, 나는 좀더 분명히 그 사실을 기억했을 테니까. 이를테면 그날 그녀를 만나서 나는 어떻게든 과천에 대해 언급했을 것이다. 과천에 얽힌 몇가지 에피소드. 그것은 내 중학생 시절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하지만 나는 그날 그녀에게, 그 도시, 어느 주말에 어렵게 찾아간 그 도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만나서, 그녀를 태우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뿐이다. 그날의 일로 또 기억나는 건, 내가 어느 연립주택 단지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차에서 내려 담배를 피우면서 사방을 찬찬히 둘러봤던 게 기억난다.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동네였다.

그곳이 과천이 아니라면 어디였을까? 평촌? 안양? 산본? 안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 오래전의 일이고, 서울의 남쪽에는 너무나 많은 도시가 있는 것이다. 정말 그렇다. 벌써 십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때 나는 서른살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스물아홉이었고, 헤어졌을 때 서른이었다. 그녀는 서른이었고, 서른여섯이었다. 내가 지금 잘못 말한 게 아니다. 그녀가 무슨 마법을 부린 것도 아니다. 그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나이를 속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가 서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보다 다섯살이 더 많았다. 사실 우린 고작 해야 약 6개월 정도를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진짜 마법은,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돌이켜봤을 때, 정말로 내가 그녀의 서른부터 서른여섯까지 그녀를 만나왔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그녀와 있었던 시간이 5년처럼 길게 느껴진다는 게 아니다. 5년이 6개월처럼 짧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5년이나 6개월이나, 지나고 나면 대체 그 시간들이 어디로 갔나, 그게 무엇이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기억해보면 그녀도 그 비슷한 말을 했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어. 요즘의 나도 그렇다. 요즘 나는 자주 그녀를 생각한다. 마치 내 인생의 마지막 여자인 것처럼. 하지만 물론 그녀는 마지막 여자가 아니다. 마지막 여자는 내가 서른넷이었을 때 만나서, 서른다섯에 헤어졌다. 그러니까 그게 5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 5년이 마치 6개월처럼 느껴진다. 5년 전에는 이런 5년 후의 나를, 정확히 말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내 마지막 여자가 될 줄은 몰랐다. 당시 나는 막 직장을 그만두고 나왔는데, 그후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런 번듯한 직장을 다시 구하지 못하리라는 사실도 몰랐다. 나이가 마흔인데, 직장도 없고, 여자도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요즘 나는 완전히 좆 됐다.

요즘 나는 잠을 잘 잘 수가 없다. 원래부터 불규칙한 생활 패턴 때문에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해가 떠오르기 전에는 잠을 이루고는 했다. 적어도 새벽 네시를 확인한 후로 새벽 다섯시를 보는 경우는 드물었다. 새벽 네시를 확인할 때마다 나는 무척 절망스런 심경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네시가 문제가 아니다. 그때라도 졸음이 오면 다행이었다. 희뿌옇게 밝아지는 창을 보는 기분은 참담하다. 아주 돌아버릴 지경이다. 더 웃긴 건, 내 방 창이 완벽히 동향이라는 점이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 내 방 전체는 샛노란 색으로 물들어버린다. 너무 노래서 처음에는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창 바깥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 빛 속에 있으면, 그 한점 그림자도 없는 압도적인 노란빛에 휩싸여 있으면, 때로 장엄한 기분에 빠지기도 한다. 눈물이 날 것 같은 심정이 된다. 나는 이 사실을 이 집에 살기 시작하고 나서 1년 동안은 몰랐다. 그 시간에 깨어 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잠을 잘 이루지 못할 이유는 수없이 많지만, 최근 들어 심해진 건, 아무래도 한달 전쯤에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나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침부터 아버지가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다. 휴대폰 액정에 아버지 전화번호가 떴을 때부터 나는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고 느꼈다. 전화를 받자마자 아버지는 김이사와 통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버지, 김이사님은 작년에 돌아가셨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뭐라고 대답했던가?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방 안이 노란빛에 휩싸여 있다는 걸 발견했고, 깨어 있다는 걸 분명히 알았지만, 마치 꿈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일차적 걱정은 물론 아버지가 치매가 아닐까 하는 거였다. 그러나 곧이어 더 큰 걱정, 정말 우스운 걱정은 만일 아버지가 치매라면 나는 이제 어떡하나,라는 것이었다. 몇년간 줄곧 아버지가 내 생활비를 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내 몫의 유산이 얼마쯤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치매라고 해서 금방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대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얼마 전 밤이었는데, 동네에서 어떤 여자가 내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길 건너편에 있었고, 나는 멈춰 서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녀가 내게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누군지 몰랐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녀가 인사를 한 건지, 또 그게 정확히 나를 향한 건지도 분명치 않았다. 나도 엉겁결에 고개를 약간 숙였는데, 어쨌든 그녀는 계속 가던 길을 걸어갔다. 나도 계속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었을 때 이미 그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제야 내 머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아주 젊은 여자는 아니었다. 삼십대 초중반쯤? 자주 가던 가게에서 봤나? 빵집이나 분식집, 슈퍼마켓. 아니면 헬스장에서 봤을 수도 있다. 몸이 대책 없이 불어서 동네 헬스장을 끊었다. 그곳 트레이너 중 한명일 수 있다. 나는 괜히 가슴이 뛰었다. 여자 트레이너는 한명뿐이었는데, 얼굴은 별로였지만 몸이 정말 끝내줬다. 항상 그런 몸이 아주 잘 드러나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하체, 골반과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와 다리의 굴곡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었다. 나는 운동 중에 자주 그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고는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보이지 않았고, 나도 허리가 안 좋아져서 더이상 헬스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살이 더 쪄버렸다. 그것도 내 잠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거울 앞에 서면,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이 처참히 무너져내린 내 몸에 저절로 욕이 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훨씬 젊었고, 키도 더 컸다. 그리고 정말이지 몸이 끝내줬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내가 다시 고등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기분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다. 다만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 옛일을 떠올리는 것 말이다. 그녀도 그랬다.

그녀와 헤어졌을 때, 그러니까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녀는 서른여섯살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마흔이다. 그렇게 치면 네살 어리다는 점에서 그 시절 그녀가 조금 더 나은 편일까? 내가 서른여섯이었을 때, 나는 그다지 옛날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조금 위축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낙천적인 인간이었다. 일단 계속 살아야 한다. 계속 숨을 쉬어야 한다. 그러면 어느날, 파도가 무엇을 가져다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자주 말하고 다니는 영화 「캐스트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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