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삶의 암면을 노래하는 카나리아의 진혼곡

 

조재룡趙在龍

문학평론가. 번역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평론집 『번역의 유령들』 『시는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 등이, 번역서 『사랑예찬』 『잠자는 남자』 등이 있음.

 

나희덕羅喜德

시인.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야생사과』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 『반통의 물』 『저 불빛들을 기억해』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본문에 별색 처리된 나희덕 시인의 발언은 2014년 4월 18일 필자와 시인이 만나 나눈 대화의 기록을 바탕으로 그후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상호 확인을 거친 것이다. 인용 작품은 별도의 출전표시가 없는 한 모두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문학과지성사 2014) 수록작이다.

 

 

1. 시 쓰는 자의 책무

 

등단작 「뿌리에게」(1989)는 그간 나희덕의 시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문단의 꾸준한 지지, 독자들의 긍정적인 평가와 대중적 확산, 시세계 전반에 대한 폭넓은 공감을 바탕으로, 나희덕의 시는 다소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자들에 의해 생명력의 시, 모성적 힘의 시, 삶을 성찰하는 따뜻하고 다감한 시로 이해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시절 읽었던 시들 가운데 「필경사」나 그 이후 접했던 「누에의 방」 같은 작품들은 글 쓰는 자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작품, 그러니까 오로지 글로 세계를 잣는 인간을 그린 빼어난 시였고, 기이하게도 기억 속에서 맴돌고 있는 나희덕의 시들은 거개가 쓰는 자의 삶과 그 운명을 다룬 것들이다.

 

어느 날인가 그의 손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활자가 휘청거리고,

십오 촉 백열등처럼 조금씩 흔들리면서

더 쓸 수도 읽을 수도 없을 때까지

그는 무엇이든 다 쓴다

그는 언제까지나 쓴다

더는 두 팔꿈치가 굽혀지지 않을 때까지

—「필경사」(『뿌리에게』, 창작과비평사 1991) 부분

 

그의 작품 전반에서 자전적 요소가 빼어난 방식으로 녹아든 이유도, 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이 아버지의 삶을 결곡하게 표해낸 글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의 운명, 이 세계에서 글 쓰는 일로 살아가는 사람, 문자의 세계를 더듬거리며 제 삶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 그것이 아니라면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문자와 맺는 치열한 세계를 다루고 있기에, 나희덕의 시 전반에서 독특하면서도 중요한 주제를 구성한다. 오늘날 ‘필경사’라는 말이 흔하지 않게 되어버린 데는 멜빌(H. Melville)의 「필경사 바틀비」의 영향이 크다고 하겠지만, 나희덕의 ‘필경사’는 멜빌의 주인공처럼 일을 ‘안하는 것을 선택하겠다’라고 말함으로써, 싫어도 의무이며 책임이기에 반드시 맡은 일을 수행해야 하는 근대적 인간상을 위반하는 주인공이 아니다. 나희덕의 ‘필경사’는 제 일을 거부할 자유조차 갖고 있지 않으며, 때문에 근대사회의 합리성이라는 맥락 속의 ‘필경사 바틀비’가 아니라 오히려 시인의 운명으로 읽힌다. 계속해서 쓴다는 무언의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시인이 시인일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인에게 시는 자발적으로 포기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필경사」와 연관이 있을, 그러나 아버지의 직무가 고스란히 시인의 운명으로 되살아난 「누에의 방」(『그곳이 멀지 않다』, 민음사 1997)에서 일부를 인용한다.

 

글을 쓰고 싶어하셨지만

글자만을 한 자 한 자 철필로 새겨넣던 아버지,

그러나 고치 속에서 뽑아낸 실로

세상을 향해 긴 글을 쓰고 계셨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후로도 오랜 뒤였다

 

오늘 밤,

내 마음의 형광등 모두 꺼지고 식구들도 잠들고

백열등 하나 오롯하게 빛나는 밤

아버지가 뽑아내던 실끝이 어느새 내 입에 물려 있어

내 속의 아버지가 나 대신 글을 쓰는 밤

나는 아버지라는 생을 옮겨 쓰는 필경사가 되어

뜨거운 고치 속에 돌아와 앉는다

 

그때의 바람이 이 견디기 어려운 여름 속으로

백열등이 너무 어둡게도 너무 밝게도 생각되는 내 눈 속으로

더 깊이 더 깊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그림자 어른거리는 천정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건네지 못할 긴 편지를 나 역시도 쓰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시를 멈출 권리가 없는 사람, 그러니까, 모두 저 필경사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나희덕은 누구보다도 일찍 이와 같은 사실을 직관으로 포착해낸 사람이었다. 쓰는 자라는 시인의 책무는 따라서 이념과 순수를 절분해서 문학을 바라보던 시절에도 변함없이 존재했던 무엇이며, 분석하고 타진하는 일과 그 실천 사이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던, 그러니까 「뿌리에게」가 세상에 나올 무렵에 벌써 그의 시세계에서 핵심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혹시, 이념이나 이데올로기의 바구니 안에 담긴 현실이 아닌, 실재의 영역에 시가 가닿으려는 노력의 일환이 아니었던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존재할 수도 있을 삶의 면면과 그 가능성을 백지 위로 걸어 들어오게 하는 일에 나희덕은 일찌감치 발을 내디뎠고, 바로 이 추체험의 세계를 시라는 형식의 글쓰기를 통해 실천해냈다. 나희덕이 현실주의자라는 말은 따라서 옳은 지적인 동시에, 그의 시세계를 더러 축소시켰던 저 시대의 한계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사실 그의 시에 대한 현실/관념 식의 접근법은 일종의 선입견이라기보다 대다수 이분법에 속박되었던 한 시대의 지적 패러다임 때문이었다고 해야 한다. 나희덕 시의 미덕과 시를 관통하는 서정적 힘을 주목한 평가는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이분법이라는 불안한 단 하나의 지반 위에서 행해졌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분법을 중심으로 재편된 문단의 당파성은 이제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당시 인식의 한계가 명백히 존재했다면 시인은 이 시단의 에피스테메(epistēmē)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일까?

 

80년대에 시를 쓰기 시작했고 첫 시집을 비롯해 여러권의 시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왔으니 민중적 세계관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당시 민족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내 시는 왜소할 정도로 개인적이고 내향적인 여성 언어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것이 창비시선 내에서 상대적인 개성을 만들어준 면도 있지만, 늘 어정쩡한 자리에 놓여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한편으론 어떤 이념이나 당파성에도 귀속되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면도 있었다.

대학시절 시를 열심히 쓰긴 했지만 시인이 되겠다는 욕구는 별로 없었다. 그저 시를 쓰는 게 좋았고, 흔들리는 삶을 가누기 위해 시라는 부표를 꽉 붙잡고 있었던 것 같다. 현실을 바꾸기 위해 삶 전부를 던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속화된 세계와 타협하면서 현실적인 인간으로 살 수도 없었다. 바로 그 사이에 난 어떤 길이 나에겐 문학이었다. 그런 모호한 지점이나 성향에 대해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창비 2003)에서 “나는 보라색 분자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보라색이라는 색채는 빨강과 파랑 사이의 균형감을 보여주지만, 그것은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대립적인 두 세계의 역동적인 결합을 의미한다. 절충적이고 중간적인 것처럼 보이는 시 속에 실은 수많은 뒤척임을 내장하고 있다는 것은 이분법적 구도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내 시가 몇개의 코드 안에서 규정되거나 단순하게 이해되어온 면이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시인은 늘 경계인 또는 관찰자이며, 시의 자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직면하게 되는 수많은 경계들이라고 생각해왔다. 어찌 보면 온순하고 절제되어 보이는 내 시에도 그런 내적 싸움은 끊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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