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전성태 全成太

1969년 전남 고흥 출생. 1994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매향(埋香)』 『국경을 넘는 일』 『늑대』, 장편소설 『여자 이발사』 등이 있음. jstroot@hanmail.net

 

 

 

소풍

 

 

공원 주차장에 빈자리가 없어서 세호네 가족은 다시 진입로로 빠져나왔다. 그때는 세호 처 지현이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배운 동요를 흥얼거리느라 차 안은 라디오를 켜놓은 것 같았다.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수줍은 얼굴의 미소, 운운하는 소절이 역시 어렵고 입에 붙지 않은 모양이었다. 제 오빠가 제법 선생 노릇을 하며 반복해 잡아주고 있었다. 팔순 장모는 뒷좌석 아이들 틈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멀미기에 시달리는 듯 보였다. 그래도 아이들 재롱으로 생긴 엷은 미소가 입가에 묻어났다. 가슴에는 딸아이가 색종이로 만든 카네이션이 달려 있었다.

세호는 간신히 실려가는 기분으로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숙취와 피로로 만사가 귀찮았다. 다만 아내한테 오늘만은 가시 같은 소리를 듣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당신은 맨날 그러더라고 아내 지현이 쑤셔서 그들은 신혼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싸워왔다. 그는 억울했다. 매일 피곤했고, 처갓집 오는 날이 대부분 체력이 방전되는 주말이었을 뿐이지 결코 처갓집 가기 싫어 꿍한 적은 없었다.

“오빠, 네잎 클로버 본 적 있어?”

딸아이가 문득 노래를 멈추더니 제 오빠에게 물었다.

“응. 저번에 도장에서 캠프 가서 게임 하면서.”

“오빠도 찾았어?”

“쿠키런 왕딱지 뽑기보다 어려워. 민지가 찾은 걸 봤어.”

“되게 어렵네. 그래서 어떻게 됐어?”

“뭐가?”

“민지언니 말이야. 행운이 찾아왔어?”

“소원을 빌고 기다리고 있대.”

“무슨 소원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소원을 말하면 안된다는데.”

“아빠, 정말이야?”

“응? 오빠 말이 맞아. 소원을 비밀로 해야 행운이 와.”

세호는 주차할 데가 없나 살피느라 건성으로 대답했다. 딸아이가 생각에 빠지며 차 안이 조용해졌다.

주차요금 정산소를 앞두고 지현이 주차권을 찾았다. 네비게이터 박스에 당연히 있어야 할 주차권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대시보드와 바닥까지 훑어보고 나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게 왜 내게 있겠어, 하는 눈빛으로 세호는 주머니를 뒤지는 시늉을 했다. 처가에서 나올 때 들른 김밥체인점 영수증이 바지주머니에서 나왔다. 세호는 아내에게 핀잔을 주었다.

“맨날 그래. 잘 찾아봐.”

지현은 세호에게 맡겨둔 숄더백을 낚았다.

그러는 사이 그들 차례가 되었다.

약이 바짝 오른 지현은 주차요금 징수원에게 항의했다.

“주차장이 꽉 찼으면 통제든 안내든 제대로 해줘야 할 것 아니에요.”

징수원 여자는 어버이날 기념축제 탓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부스에서는 무전기 소리가 자글거렸고, 여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세호는 아내보다도 그 여자를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현이 여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주차장만 돌다가 나왔다고요, 두바퀴나.”

“한바퀴야, 엄마.”

뒤에서 딸아이가 재빨리 제 엄마 말을 받았다.

“두바퀴야!”

아내는 소리쳤다. 주차요금 징수원 여자가 부스 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주차권을 주시면 처리해드릴게요.”

“방금 왔다니까요. 지금 제 말을 못 믿는 거예요?”

“아니에요. 취소처리 하는 데 필요하거든요.”

여자가 밀려드는 차량들을 보며 재촉하듯 말했다.

지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숄더백을 뒤집어서 치마에다가 소지품을 쏟아놓았다. 화장품, 지갑, 휴대폰, 물티슈와 함께 카드전표와 영수증이 한무더기 쏟아졌다. 지현은 영수증을 한장씩 들춰보았다. 누가 봐도 시위하는 몸짓이었으므로 세호는 머리를 내둘렀다. 징수원 여자는 입매가 샐쭉해졌다.

이윽고 주차차단기가 올라갔다.

일 킬로미터 남짓한 진입로 역시 바깥 차선에다가 차들을 세우느라 차량 흐름이 막히고는 했다.

“이제 우리 소풍은 끝난 거야?”

딸아이가 풀죽어 말했다. 아이들은 공원 광장에서 대여하는 사륜자전거를 타지 못하게 된 걸 아쉬워했다. 세호는 무거운 몸을 돌려 아이들을 달랬다.

“진입로 쪽 숲으로 가보자.”

세호는 아내의 안색을 살폈다. 지현은 막힌 길을 묵묵히 바라보며 별말이 없었다.

“아빠, 오디 따먹던 그 숲 말예요?”

잠자코 앉았던 아들 녀석이 아는 체를 했다.

“오디?”

세호는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작년에 그 숲으로 소풍 갔잖아요. 아빠랑 캐치볼도 했는데.”

“아, 공 주우러 갔다가 오디를 발견했지?”

“우리 또 가요, 네?”

아들 녀석이 좌석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졸랐고, 덩달아 딸아이도 끼어들었다.

“난 네잎 클로버 찾을래.”

“……오디가 지금 철인가?”

세호는 작년 나들이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등 뒤에서 장모가 잠긴 목청을 틔우는 소리가 났다.

“원, 벌써 그게 익었을라. 보리 익을 때나 돼야지.”

장인 기일 때였던 모양이다. 세호는 손을 뻗어 딸아이 볼을 쓰다듬어주며 아쉽게 말했다.

“한달은 더 기다려야겠는걸.”

진입로를 한참 빠져나오자 도로 정체가 차츰 풀렸다. 이제 돗자리 펼 데를 살피느라 아이들까지 입을 다물고 온 가족이 오른편 창밖을 내다보았다. 세호는 작년에 그들 가족이 한나절을 보냈던 소나무 숲이 그냥 멀어져가는 걸 보았다.

“세워봐, 엄마. 저기야!”

아들 녀석이 다급하게 외쳤다. 녀석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 그러니까 제 엄마와 아빠에게 참견할 만한 위치에다가 열한살의 몸을 밀어넣었다.

“차 세울 데가 없잖아.”

지현이 퉁명스레 말했다. 아들은 잠시 수꿀해졌다. 그러나 아이는 이내 특유의 활력을 찾아 다시 주절거렸다.

“근데 아까부터 무슨 냄새 나지 않아? 밥솥에서 나는 냄새 같은 거.”

녀석이 제 아빠 쪽으로 코를 내밀고 큼큼거리자 세호는 팔을 뻗어 밀어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위험하다고 했지?”

왠지 세호는 아들 녀석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술냄새 난다고 짐짓 힐난하는 듯싶었다. 그는 아내에게 볶일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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