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통일대박론과 분단체제 변혁의 길

 

 

김창수 金昌洙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실장, 청와대 NSC 정책조정실 국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문위원 역임. 저서로 『천안함 외교의 침몰』(공저) 등이 있음. changsoo@outlook.com

 

 

통일대박론과 진보의 의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2014년 새해가 밝자마자 ‘통일대박’론을 제시했다. 그뒤로 통일대박론은 각종 국내 이슈를 잠식하면서 국정운영을 상징하는 브랜드로 급속하게 떠올랐다. 말 그대로 ‘대박’이었다. 박대통령은 그 기세를 살려 각종 정상회담과 국제회의에서 한반도 통일은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대박이 될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진보세력은 그동안 평화 정착을 통해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주창하고 준비해왔다. 이에 비해 박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준비와 과정을 생략한 채 결과만 가지고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한다고 비판받았다. 또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당시 박근혜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 의제를 내걸었다가 선거 후 버렸던 데 대한 데자뷔 때문인지 6·4지방선거용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되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박대통령은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정부부처와 청와대,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통일준비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거침없는 속도전이었다. 통일준비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쿠데타나 계엄상황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정부 고위직으로 구성되는 조직이다.1) 박대통령의 통일드라이브는 3월말 독일 드레스덴에서 한 연설에 포함된 대북 제안으로 이어졌다.

통일대박론은 여러 한계를 지적받았지만 통일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긍정적인 효과도 거두었다. 통일에 드는 비용뿐 아니라 통일이 주는 편익이라는 더 큰 매력이 있음을 알리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위축되었던 통일논의가 활성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북한도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연초부터 남북관계 개선의 뜻을 내비치면서 남북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기도 했다.

이러한 통일드라이브가 종북몰이에 나서거나 남북대결을 부추기는 것보다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통일대박론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삼일천하나 용두사미로 끝날지 모를 운명에 봉착했다. 통일대박론→통일준비위원회→드레스덴 제안으로 거침없이 내달리던 통일드라이브는 결국 한미 합동군사훈련,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 드레스덴 구상에 대한 북한의 반발, 세월호 참사라는 구조적·상황적 제약에 갇혀버렸다.2)

박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상대 당파의 정책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오프싸이드 플레이’(offside play)를 흉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3) 하지만 분단체제는 보수세력의 오프싸이드 플레이에 구조적인 제약을 가한다.4) 드레스덴 연설 직전에 열린 헤이그 핵안보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갈등하는 한일 정상을 초청하여 3국 정상회담(3.26)을 개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견제에 드는 미국의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 한··일 협력관계 강화를 선택했다. 한반도의 긴장상태는 이에 대한 필요조건처럼 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헤이그 한··일 정상회담 이후 대북 강경정책을 쏟아내는 이유이다. 미국의 이런 정책은 동북아 상황을 숨막히게 만들고 있다. 필자는 드레스덴 선언이 이런 “숨막히는 위기 상황에서 평화와 안정을 위한 숨구멍이 돼야” 하고 이를 위해 “지난 2월에 있었던 남북고위급 접촉을 재개해 드레스덴 제안을 북한에 설명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기 바란다”라고 밝힌 바 있다.5)

하지만 드레스덴 연설을 전후해서 남북 사이에는 아무런 접촉이 없었다. 소통 부족은 남북간뿐 아니라 한미 사이에도 마찬가지였다.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연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서울을 방문(4.25~26)한 자리에서 북핵 폐기에 대한 유인책 없이 강경책만 쏟아냈다.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에서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맹비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체제대결 망상”만 하고 있으므로 “북남관계에서 그 무엇도 기대할 것이 없다”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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