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제17회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

 

 

정영수 鄭映秀

1983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전문사 과정 재학. apedoors@gmail.com

 

 

 

레바논의 밤

 

 

베이루트의 성벽 앞에 현자라 알려진 노인이 있었다. 어느날 한 남자가 그에게 물었다.

“왜 신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을까요? 왜 그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 걸까요?”

그 말을 들은 노인은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벽을 따라 날고 있는 나방이 보이시오? 저것은 벽을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요. 당신이 만약 저 벽을 하늘로 생각한다면, 저것은 나방이 아니라 새겠지. 그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소. 하지만 나방은 우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은 물론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지. 당신은 나방에게 그것을 알려줄 수 있겠소? 나방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겠느냔 말이오.”

“모르겠습니다. 나방에게 어떻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노인은 남자의 말이 끝나자 손바닥으로 나방을 탁 쳐서 죽였다.

“보시오. 이제 나방은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과 나의 의사를 알게 되었소.”1)

 

*

 

장이 그 일을 하는 걸 직접 본 것은 아니다. 그가 찾아왔을 때 나는 신착도서를 정리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한동안 논문 준비에 바빠 신경쓰지 못했더니 어느새 책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들어온 지 너무 오래돼 신착이라고 말하기 무색한 것들도 많았다. 참다 못한 관장이 아침부터 한소리 늘어놓았고, 나는 그가 쏟아붓는 금과옥조 같은(이건 그의 표현이다) 고귀한 잔소리를 주워 삼켜야 했다. 그건 바꿔 말하면 다시 한번 나의 인생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장이 들어왔을 때 나는 매우 회의적인 기분이었다. 일년도 넘게 보지 못했던 그를 반갑게 맞아주지 못한 건 그 때문이었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대출 데스크를 등진 채 아무렇게나 쌓인 책들을 정리하고 있던 내게 무심히 인사를 건네고는 서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리가 들려온 건 그가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손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스티커 작업에 매진하고 있던 참이었다. 원래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작은 도서관인데다가 이른 아침이라 실내는 먼지 내려앉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했으므로 나는 그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무언가 딱딱하고 묵직한 게 바닥에 떨어진 듯한 충돌음이었다. 나는 장이 책 같은 걸 떨어트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사적으로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긴 했지만, 책장이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곧 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런데 문득 그것은 책이 떨어진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둔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서고에는 커다랗고 무거운 책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지도로 보는 타임스 세계 역사』나 『뿌슈낀 전집』 같은 책들 말이다. 어렴풋이 그것들이 그렇게까지 무거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곧 신경을 껐다. 앞에 쌓인 신착도서들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그가 무얼 떨어트렸든 제자리에만 돌려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 장은 믿을 만한 친구였다. 그는 자신이 떨어트린 것을 (그게 책이 됐든 뭐가 됐든) 제자리에 돌려놓지 않을 정도로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었다. 한동안 서고 안쪽에서 부스럭대는 소리, 책들을 바닥에 내려놓는 소리, 힘을 쓸 때 자기도 모르게 비어져 나오는 신음소리 같은 것들이 탁하게 들려왔다. 도와주겠다고 말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먼저 부탁하기 전까지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십분쯤 지났을까? 모습을 드러낸 장의 얼굴은 상기된 채였고, 구불거리는 앞머리는 이마에 엉겨붙어 있었다.

“곧 돌아올게.”

그는 그렇게만 말하고 서둘러 문을 나섰다. 나는 장이 저지른 일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그가 있던 100번대 서가로 향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막연하게 장이 비싼 책을 망가뜨리거나 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책장은 잘 정리되어 있었고 평소와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창문 너머 매미가 희미하게 울고 있었을 뿐 실내는 고요했다. 햇살이 창을 뚫고 들어와 책장을 핥고 있었다. 나는 데스크로 돌아가려다 눈에 띄는 책이 있어 별생각 없이 뽑아 들었는데 그러자 책장 안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책들이 만들어낸 먼지가 스며들어 공기에서는 텁텁한 맛이 났다. 에어컨은 안쓰러울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위를 식히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땀 한방울이 턱을 따라 흘러내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어제는 일요일이었고, 책장 안에는 시체가 있었다.

그때 문자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에어컨 최대로 켜둬

장이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언젠가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공부를 계속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정작 책장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몰랐다. 언제나 그 뒤엔 죽은 것들이 있었으니까. 살아 있는 것들은 바깥에 있고 이 안에는 늘 죽은 것들이 있었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었다. 장이 사람을 죽이는 걸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가능성은 낮지만 시체를 가지고 들어왔을 수도 있다) 어쨌든 최소한 사체 은닉죄 혹은 유기죄라고 볼 수 있었다. 장은 분명히 믿을 만한 친구지만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일년도 더 전이었고 그사이 얄궂은 운명이 그를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만한 방법은 장이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내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섣부른 행동으로 장이 누명을 쓰게 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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