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을 바꿀까

 

불확실한 삶에서 움트는 신군사주의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 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 역임. 주요 논문으로 「초남성공간에서 여성의 군인되기 경험」 「동맹의 젠더정치학」 등이 있음. ellikim@ewha.ac.kr

 

 

1. 신군사주의

 

일반적으로 군사주의란 군사적 가치를 찬양하고 지향하는 이념을 말한다. 전쟁과 전쟁준비를 당연하다고 여기며 정상적인 사회활동으로 보는 태도이자 행위이며, 이를 지속시키는 제도이다.1) 군사주의라는 용어는 모호하여 학자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그것은 군()·()·() 복합체 같은 사회체제를 뜻하기도 하고, 상징과 이미지를 통한 문화현상이기도 하며, 정치집단의 통치기술이기도 하다. 씬시아 인로(Cynthia Enloe)의 어법으로 풀자면, 누구든 군사적 가치를 취하고, 군사적인 해결방식을 매우 효율적이라 생각하며,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군사적 태도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고 믿으면 군사화되었다고 본다.2) 군사주의는 사회가 특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성, 혹은 사람들의 행위와 사유를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사회적 에토스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국의 군사주의는 역사 속에서 구성되고 계승되는 과정에 있다. 피식민, 분단, 한국전쟁, 한미동맹, 남북한의 오랜 군사대치 등을 거치며 군사주의는 생성됐고 지속됐다. 남한 사람들은 분단체제에서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를 60여년간 겪으면서 특정하게 조직된 전쟁공포 속에서, 그리고 국민이 아닌 좌익으로 배제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국민정체성을 구성해왔다. 이러한 감정은 일시적인 파동이 아니라 오랜 시간 역사적·정치적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관성이다. 군사주의는 이 관성에 깊이 스며 있다.

탈냉전의 시대를 열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0년대 이후 군사주의는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되곤 했다. 비민주적 사회, 권위주의적 관료사회, 폭력적 사회, 성차별 사회를 만든 구성요소로서 군사문화는 해소되어야 할 사회적 걸림돌로 지목됐다. 군사주의는 단순히 정권을 쥔 집단의 통치방식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현상이며 규율이라는 자기반성적 논의도 성행했다. 거대담론 안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정치적 언어 부재를 지적하며 일상적 삶에서 경험하는 군사주의를 논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군사주의는 폭력과 억압의 정치를 뜻했다.

그런데 오늘날 군사주의는 전체주의적 결연함보다는 사안별로 그 결을 달리하며 때로는 즐거움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그 성격을 다시 보게 된다. 1960~80년대에는 군사주의가 준전시체제의 유사 군사조직을 기반으로 국민을 국가 차원에서 동원하는 방식으로 발현됐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훼손하지 않고 자기계발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성 안에서 작동한다. 최근 군대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즐거움과 추억거리로 소비되고 유사 군사훈련이 극기체험으로 차용되면서 군사적 가치는 개인의 삶에 친밀하게 관여한다.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홍보 동영상을 간편하게 파급할 수 있게 되자 군은 일찌감치 여자 아이돌 가수 등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삼고 군대문화와 병영생활을 매우 친밀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몇년 전 배우 현빈의 해병대 입대는 그 자체로 홍보효과를 톡톡히 냈는데, 군대를 가야이왕이면 해병대를 가야진짜가 된다는 ‘진짜 사나이’의 판타지를 강화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의 회귀를 논할 정도로 이념공세가 전개되는 상황에서 전통적 의미의 군사주의의 결도 선명히 살아나고 있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한 상황이 여전히 우리의 삶을 조직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국외적으로도 미국이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강화하면서 아시아의 군사화가 심화되고, 일본이 재무장을 시도하여 동북아 정세도 긴장되는 현실이다. 이러한 주변국의 군사적 전략은 한국에서 안보와 군사주의를 강화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제 군사주의는 막무가내식이 아니라 한층 교묘하게 작동한다. 군사주의는 여전한 분단체제하에서 항시적인 적을 상정함으로써, 싸워야 할 대상이 분명하고 그 대상에 대한 적대감을 일으키는, 탈냉전시대 냉전상황의 지속성이라는 맥락에서 발현한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의 삶에서 신자유주의와 결합하여 단순히 자기희생이 아닌 자기이익과 부합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반공규율사회에서 국민에 대한 훈육적 동원 차원으로 군사주의가 발현했다면, 신자유주의 통치사회에서 그것은 자기계발의 개인적 성취와 만난다. 이 글은 이러한 현상을 신()군사주의라고 표현한다. 신군사주의라는 말은 ‘군사적 성장주의’와 ‘군사화된 근대성’3)을 넘어서 신자유주의 통치의 맥락에서 작동하는 군사주의를 포착하려는 시도이다.

신자유주의 통치원리란 사회적인 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치환하여 시장원리 혹은 경쟁원리로 전환하는 것과, 시장원리에 맞춰 자신의 삶을 관리하는 자기경영의 주체를 형성하고 그 주체 형성 모델에 적응할 수 없는 개인을 사회 바깥으로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4) 양극화된 사회와 그 속에서의 불안정한 삶은 불안감을 증대시킨다. 이 불안정성을 ‘안전사회’로 해결하려는 국가권력과 우익 보수주의자들은 군사주의적 질서를 재생한다. 그래서 탈냉전과 냉전의 연속선상에 있는 한국사회에서 반공규율권력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소멸하는 게 아니라, 통치관리와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신군사주의는 시대착오적인 요소와 현시대의 특성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