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조명

 

사랑이 아닌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강과의 대화

 

 

김연수 金衍洙

소설가. 장편소설 『7번 국도』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등이 있음. writerKYS@gmail.com

 

한강 韓江

소설가, 시인.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를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서울예대 미디어창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가 세교연구소 사무실에서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 대해 얘기한 지 한시간쯤 지났을까? 창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연전에 발표된 그의 단편 「회복하는 인간」에 나오는 회복의 의미에 대해서 얘기하던 참이었다. 창을 마주하고 앉은 한강(韓江)씨가 짧게 탄식했다. 가리키는 대로 창을 돌아봤지만,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새 두마리가 날아와서 창에 부딪혔다고 그녀가 설명했다.

그러나 내가 돌아봤을 때, 유리창은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말끔했다.

유리창으로 날아와 부딪혔다는 그 새들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어떤 소설은 그 새들과 같다.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끔한 세상에 가서 균열을 일으킬 목적으로 씌어진다. 그럴 때는 회복이 아니라, 상처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일단 거기 상처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치유가 가능할 텐데, 이 세상에는 상처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금지된 고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통은 먼저 상처로 드러나야만 한다.

1980년대 경상북도에서 사는 십대 청소년으로 내가 뉴스를 통해서 접하게 된, 미문화원 점거농성 등 광주항쟁 진상규명과 관련한 격렬한 시위들은 바로 그런 의미를 지녔다. 즉 표면적으로 매끄러워 보이는 이 세계에 균열을 만들어 거기 고통이 있음을 먼저 드러내기 위한 시도였다. 진상규명에서 규명이란, 진상이 드러날 때에만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1980년대 대학생들은 진상을 드러내는 데 온힘을 다 바친 것이다.

1988년 봄 『창작과비평』 복간호에는 낯선 이름의 소설가가 쓴 「깃발」이란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다. 내게 이 작품은 그때까지 내가 살던 매끄러운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 소설로 기억된다. 내게 그 매끄러운 세계는 불타는 한채의 건물을 담은 흑백 이미지로 상징된다. 1980521일,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내가 MBC 9시 뉴스를 통해 보게 된 불타는 광주MBC 사옥이었다. 「깃발」을 읽고 나자 어둠속 흐릿한 이 불꽃은 심층적 깊이를 지닌 불꽃, 해석되어야 하는 불꽃, 아래쪽으로 깊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바뀌었다.

균열의 목적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 세계가 매끈한 표면으로만 이뤄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거기에는 깊이가 있고, 따라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 해석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진상을 드러낸다는 것의 의미도 거기에 있었다.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 거기 학살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 방화, 점거농성, 분신자살, 기습시위 등 그 어떤 행위이든 목적은 고통과 상처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홍희담의 「깃발」을 읽고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어떤 소설은 바로 그런 목적 때문에 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소설과 이후에 읽은 일련의 글들로 인해 나는 내 소년기가 두개의 세계로 구성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흑백TV 속 폭도가 방화한 건물이라는 매끈한 이미지와 실제로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의 현실. 표면적인 이미지에 비해 현실은 훨씬 중층적이었다. 이미지와 달리 거기에는 총성과 비명, 시취(屍臭)와 비 냄새, 얼얼한 뺨과 뜨거운 눈물이 느껴졌으니까. 고등학교 시절에 “진실은 행간에 있다”라는 황지우(黃芝雨)의 시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십대 시절 내내 나는 행간이 없는 문장 속에서 살았던 셈이다. 그건 오직 보여주는 대로의 매끈한 이미지 속에서 사는 무지의 삶이었지만, 1980년대 전반에 걸친 그 숱한 노력으로 내게도 행간이 생기자마자 나는 분열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라는 장편소설로 나는 등단했는데, 그 제목은 표면적이고 매끈한 이미지의 이면에 거칠고 현실적인 깊이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사람의 분열된 상황을 표현하려는 의도에서 지어졌다. 나는 우리가 기만적인 가면을 강요당한 세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소설이 출간되고 1년 뒤, 중앙일보의 남재일(南再一) 기자가 한강, 김경욱(金勁旭), 송경아(宋京娥), 나, 이렇게 네명을 인터뷰한 뒤 ‘70년대생 작가들 문단에 속속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뷰 기사를 쓴 적이 있다. 당시 20대 중반이던 우리가 과연 어떤 소설을 쓴다는 것인지 궁금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