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미월 金美月
1977년 강원 강릉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있음. welcomesnow@hanmail.net
장편연재1
세 사람이 호랑이를 보았네
진의 이야기
오전 일곱시의 옥상.
진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은 아무것도 없이 그저 휑뎅그렁한 시멘트 바닥이다. 하다못해 허공에 그 흔한 빨랫줄 하나 걸려 있지 않고 구석에 조그만 화단 비슷한 것도 없다. 진은 이곳에 올 때마다 어쩐지 정장 차림의 신사처럼 겉으로는 말쑥해 보이는 이 건물의 볼썽사납게 벗겨진 정수리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래도 그녀는 이 공간을 좋아한다. 혼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이 살고 있는 이 오피스텔 건물의 옥상은 찾는 이가 아무도 없는지 언제 어느 시간대에 와도 늘 혼자 있을 수 있지만 그녀는 특히 이른 아침에 방문하기를 좋아한다. 난간 밖 저 까마득한 발밑의 세상에서, 자신의 발에 한번 깔리면 금방 짜부라질 벌레처럼 조그만 인간들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부지런히 오가는 모습을 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 하며 저도 열심히 살겠노라는 각오를 다지고 싶어서는 아니다. 그저 옥상이라는 공간이 그 특성상 낮에 올라가면 햇볕이 너무 뜨거워 견디기가 어렵고, 밤에 올라가면 희한하게도 왕년에 끊은 담배를 도로 피우고 싶어져서 그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달에 한두번 정도 이곳 옥상에 올라온다. 주로 밤을 새운 다음날 아침 잠들기 전에 살짝 올라왔다가 내려가곤 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진의 집에서는 그녀가 이따금 옥상에 출입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다.
늘 그랬듯이 대로변 쪽으로 나 있는 난간을 향해 걸었다. 걷다가 주춤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분명히 없었는데 옥상의 북쪽 귀퉁이에 멀쩡해 보이는 사무용 의자가 방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런, 이곳을 찾는 이가 없는 게 아니라 있긴 있되 나와 다른 시간대에 왔다 간 거였구나 하고 진은 뒤늦게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의자 등받이 부분의 커버가 찢어져서 그 틈으로 스펀지가 삐져나와 있었다. 괜히 자신의 등허리 어딘가가 시큰거리는 것 같아서 그녀는 얼른 눈을 돌렸다.
난간 앞에 섰다. 원통형의 쇠 난간에 빗물이 수차 떨어졌다 마른 자국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뜨뜻미지근한 도심의 아침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난간을 두 손으로 잡고 상체를 밖으로 내밀어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건물 위치가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서 인도는 사람들로 차도는 차량들로 벌써부터 붐비고 있었다. 진은 오가는 길에 항상 지나치며 보았던 동네 편의점과 주유소와 식당과 까페와 병원과 약국과 슈퍼마켓과 휴대폰 대리점과 빵집 등을 늘 그랬듯이 처음 보는 양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대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멀리 주택가 이곳저곳에서 붉은 십자가들이 번뜩이고 있었다. 아홉, 열, 열하나, 열둘…… 그녀는 늘 그랬듯이 거기서 셈을 멈추었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아아, 이 동네에는 교회가 참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그녀는 어느새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연히 죽겠지. 10층 건물 꼭대기니까. 보도블록에 머리부터 부딪히면 즉사하겠지. 아니, 혹시 저 가로수 우듬지에 몸이 걸리면 죽지는 않고 크게 부상만 입으려나.
그녀는 어느새 다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 이곳에서 자살을 하려 한다면 뛰어내리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행동이 무엇일까.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일까. 기도하는 것일까.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세상 만물, 그러니까 저 교회 십자가들과 대로변의 상점과 지하철역 주변의 인파와 저 가로수와 이 황량한 옥상 풍경을 눈 속에 담아두는 것일까.
자살자의 심정을 상상해보았다. 어느 것도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기야 투신자살하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무엇을 한들 유쾌할 수 있겠느냐마는.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는 게 나을 것이다. 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옥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예의 그 등받이 커버 찢어진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진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에이 씨발.”
대학 동기인 은호가 옆에 있었다면 안 들린다고 더 크게 하라고 부추겼을 게 뻔한 작은 목소리였다.
그렇다. 진은 오래전에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아직 기억하고 있다.
“개새끼? 쌍놈? 씹할 놈?”
당시 은호는 고개를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그게 니가 아는,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이야?”
그러고는 진이 그것보다 더 심한 욕에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불쑥 덧붙였다.
“이제 보니 너는 남자를 증오하는구나?”
“뭐? 내가 왜?”
“개년, 쌍년, 씹할 년,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으니까.”
진은 여전히 웃고 있는 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군가 싸늘하고 뾰족한 손가락으로 자신의 맨 등을 훑어내리는 것 같은 기분 속에서 깨달았다. 세상에 가장 심한 욕이라는 것은 따로 있지 않음을, 욕이 심하고 안 심하고의 기준은 어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뱉는 이의 표정이나 어조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 기왕 욕을 하려면 저렇게 해야지, 하고 진은 생각했다. 그러나 은호에게 ‘너 욕 정말 잘하는구나’ 하고 칭찬해주려다가 문득 그것이 칭찬인지 욕인지 헷갈려서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정말이야. 건강에도 좋다니까.”
은호는 진지했다. 제 별명인 만물박사답게 이어서 말하기를, 예전에 영국의 어느 심리학 박사가 욕설의 효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했다, 실험 대상자 두 팀을 각각 얼음덩어리 위에 맨발로 올라서게 한 후 한 팀은 마음대로 욕을 하도록 했고 다른 한 팀은 욕 대신 점잖은 말을 하게 한 것이다, 그랬더니 욕을 한 팀이 욕을 하지 못한 팀보다 얼음 위에서 약 두배나 더 오래 버텼다, 결국 욕을 하는 것이 신체의 통증을 줄여주거나 스트레스를 더 잘 참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었다.
“너도 한번 해봐. 그럼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그때까지 그녀는 욕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중에 혼자 있을 때라도 꼭 해봐.”
“씹할.”
“응? 뭐라고?”
“씹할……이라고.”
“잘 안 들려.”
“에이 씹할.”
“더 크게.”
“에이 씹할!”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한참 동안이나 웃었다. 그의 말마따나 욕설의 효능이었는지 혹은 웃음의 효능이었는지 몰라도 어쨌거나 그때 진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얼음덩어리 위에 맨발로 서 있다고 해도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은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진이 그의 메일을 마지막으로 받은 것이 벌써 여섯달 전의 일이다. 언제부터인가 은호는 그녀가 보낸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읽지도 않는 메일을 연거푸 네댓통쯤 보내다가 그녀도 보내기를 그만두었다. 자신이 이제껏 안하면 안되는 숙제를 해치우듯 의무감으로 그에게 메일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은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별안간 지상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올라왔다. 소리는 사그라질 듯 사그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접촉사고라도 났나. 아니면 누군가의 차가 도로 한가운데에 멈춰서기라도 한 것일까. 문득 배가 고팠다. 진은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가는데 저만치 집 앞에 누군가 서 있는 뒷모습이 보였다.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현관문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월아 네월아 여유작작한 태도로 보나 두 손이 비어 있는 것으로 보나 택배기사는 아닐 테고, 그럼 이 아침에 누구일까. 진은 본능적으로 복도 천장에 부착된 방범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시절이 하 수상한데 집 앞에 서 있는 낯선 남자한테 다가가려니 께름칙했지만 그렇다고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현관문을 열 수도 없었다.
“누구세요?”
진이 등 뒤로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남자는 놀라서 펄쩍 뛰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깊숙이 눌러쓴 야구모자의 챙이 광대뼈에까지 그늘을 드리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진을 쳐다보고 현관문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집을 잘못 찾았나봐요.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우물쭈물하다가 돌아서는 그의 청바지 뒷주머니에 우편물 한통이 꽂혀 있는 것을 진은 놓치지 않았다. 수신인란에 인쇄된 주소의 끝부분 숫자가 505였다. 505호. 그것은 그녀의 집 호수가 아니던가.
“뒤에 그거 이 집 우편물 아니에요?”
내놓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는 순순히 주머니에서 우편물을 꺼냈다. 이소윤 앞. 휴대폰 사용요금 청구서 같아 보였다.
“혹시 여기가 이소윤씨 집 아닌가 해서……”
진은 기다 아니다 아무 정보도 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가 소윤의 스토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갑자기 모든 정황이 이해되었다. 소윤에게 남동생이 있는 줄은 몰랐지만 아까 곧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소윤과 똑같이 생긴 청년이 제 앞에 서 있었으니까.
“소윤이 동생 맞지요?”
“네, 맞아요.”
“어휴, 진작 말씀을 하시지. 소윤이 지금 집에 있어요.”
진은 그에게 자신이 소윤의 동거인임을 밝히고 집 안으로 들어갈 것을 권했다. 하지만 청년은 무슨 영문인지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제 누나에게 자신이 찾아왔다는 것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고는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진은 그가 탄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힐 때까지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현관문 번호키 뚜껑을 여는데 어쩐 일인지 문틈으로 고소한 커피 냄새가 새어나왔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여덟시였다.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 여덟시. 대부분의 직장인이 길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평일 이 시각에 진이 살고 있는 이 집에는 평소대로라면 깨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 했다.
“꼭두새벽부터 어딜 갔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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