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경위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는 2014612일 회의를 갖고 이선영 백낙청(문학평론가) 현기영(소설가) 천양희(시인)를 제29회 만해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위촉했다. 심사위원회는 등단 10년 이상 또는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저자가 최근 3년간에 한국어로 간행한 문학적 업적을 대상으로 한다는 만해문학상의 규정에 따라 추천위원(창비의 시와 소설 분야 기획위원)들이 추천한 아래 10권의 작품을 놓고 심사를 진행했다.

나희덕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상희구 『추석대목장날』, 이상국 『뿔을 적시며』, 이영광 『나무는 간다』, 황학주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이상 시), 김연수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성석제 『투명인간』, 은희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이기호 『김 박사는 누구인가?』, 한강 『소년이 온다』(이상 소설)

721일 본심에 앞서 심사위원들은 각기 3~4권의 선호하는 작품을 일차적으로 제시했고 모임에서는 그러한 예비적 타진을 바탕으로 나희덕 시집, 김연수 소설집, 성석제 장편, 은희경 소설집, 한강 장편을 주요 심사대상으로 다시 압축하였다. 이어 심사위원 각자가 좀더 솔직한 견해를 주고받으며 토론을 진행했고 소설 부문, 특히 성석제의 『투명인간』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로 대상이 좁혀졌다. 비극적 가족사와 소외된 주인공의 일생을 통해 현대사의 굴곡을 해학적이면서 비판적으로 성찰한 『투명인간』에 대한 지지도 상당했으나, 무구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5·18의 깊은 상처를 참신한 기법으로 핍진하게 그리면서 인간 존엄의 가치를 새삼 확인한 『소년이 온다』 쪽으로 점차 논의가 기울었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망각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치열한 작가적 고투와 그 탁월한 예술적 성취를 높이 평가해 『소년이 온다』를 제29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데 만장일치로 합의했다.

 

 

 

심사평

 

이선영(李善榮) 문학평론가

본심 대상에 오른 시집들 가운데 이를테면 자연과 생명과 고향이 거대한 문명의 압력에 떼밀려가는 대세를 굵직하고 은근한 안타까움의 목소리로 읊조린 이상국의 『뿔을 적시며』와, “익숙한 삶과 언어를 떠나” 이방인으로 낯설게 사는 경험을 통해 영혼의 갱신을 거듭해오다 이번 또다른 인상적 자화상을 선보인 나희덕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눈길을 끈다.

소설집으로는 김연수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과 은희경의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두권 모두 새로운 소설적 감성과 상상력이 흥미롭다. 전자의 예로는 지난날의 멋진 삶을 따분한 오늘의 삶 대신으로 되살리려는 상상력, 어머니에 관한 기대되던 이야기의 흐름을 뒤틀어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기교(「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인간 존재를 경직된 관행적 인식이 아닌 민주적 인식으로 열기 위한 다각적·수평적 접근법(「동욱」) 등이 있다. 이런 상상력과 기교 그리고 접근법이 참신하고 포스트모던한 느낌을 주거니와, 후자(『…눈송이』)에서는 더욱 그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그런 점은 은희경이 가령 근대적 이념중심의 서사보다는 사물들의 차이를 통한 서사 창조에 주력할 뿐 아니라 서사의 종말을 일종의 배리(背理, paralogie)로 끝내는 데서 드러난다. 따라서 그런 서사에서는 인물들의 관계란 각자의 성격이나 언행의 다름 또는 달라짐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일 뿐 불변의 사랑이나 우정 혹은 믿음 같은 것은 당연히 배제된다. 여기 실린 소설들이 흔히 한없는 다양화와 이질성을 받아들이고 미지의 것에 질문을 지속하는 배리의 결말을 짓는 것은 따라서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두 작품집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어 아쉬운 대로 일언이폐지하면 다양화·이질화의 서사는 정상적인 과학적 합리의 틀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장편소설인 성석제의 『투명인간』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두 작품 모두 올해 우리 문학의 최고 수준을 가늠할 만한 수확으로 꼽힌다. 『투명인간』은 지난 60여년의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룬 것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사회적·경제적 주요 사건들과 연결시키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가족들이 억압적이고 모순된 현실의 힘에 눌려 다양한 모습으로 희생되고 일그러지는 이야기가 어리석지만 착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런 주인공의 성격과도 이어지는 작가의 해학과 입담은 이 비극적 가족사와 엄중한 사회비판의 담론을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그려지게 하고 있다. 결국 이 소설은 언어현상이 정치적 변혁, 사회적 갈등 또는 경제적 모순과 근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탁월한 비전으로 보여준다.

『소년이 온다』는 널리 알려진, 그러나 결코 소진하기 어려운 1980년 광주 5·18에 대한 기억을 공력을 다해 예술화한 작품이다. 일부 군인들의 반국가적 반란으로 발생한 무고한 다수 시민의 참혹한 희생과 이에 대한 단합된 분노와 투쟁, 그중에서도 끈끈한 유대와 순수한 양심으로 죽음을 불사하는 이들의 피어린 항쟁을 박진한 묘사와 깔끔한 서사로 그려놓은 이 소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적 성취임이 틀림없다. 특히 사실의 소설적 재현과 미적 형상화에 대한 솜씨가 빛을 발한다.

둘 가운데 하나를 택하기가 쉽지 않다. 아쉬운 점이라면 후자에서는 당시의 광주를 더욱 넓게 보는 비전이고, 전자에서는 좀더 높은 예술화를 위한 공력이다. 심사를 위한 논의에서 우리는 결국 비전보다 예술을 택하는 데 뜻을 모았다.

 

백낙청(白樂晴) 문학평론가

이영광 시집의 치열함과 분방함이 좋았고 본심에 거듭 올라온 이상국 시집의 푸근함도 여전히 좋았다. 특히 나희덕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죽음과 상실을 수용하면서도 사랑을 간직하고 섬기는 새로운 경지를 연 듯해서 감동이 남달랐다. 그렇다 해도 올해 후보작 중 압권은 한강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였다.

이제 와서 5월 광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그게 바로 ‘광주’를 망각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이번에 한강 소설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망각을 이겨내고 기억하는 일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임을 실감했다.

『소년이 온다』는 빼어난 예술품이다. 표제의 ‘소년’ 동호뿐 아니라 대부분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모두 끔찍한 내용인데도 한번 손에 들면 계속 읽고 싶어지는 것이 이 소설의 힘이요 예술의 힘이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라는 동호 작은형의 부탁에 저자가 진심으로 응했기 때문일 텐데, ‘제대로 쓰기’에 필요한 온갖 기법상의 탐구를 수행한 것이야말로 그 진심의 징표인 것이다.

예컨대 6개의 장과 에필로그가 각기 서술기법을 달리하면서 서로 맞물려 5·18 당시와 이후의 수많은 사건·인물들을 밀도높게 그려낸다. 시종 ‘너’로 호명되는 동호가 정작 주요인물로 등장하는 것은 제1장 그리고 어머니의 1인칭 회상을 담은 마지막 장뿐이고 그 중간에는 잠깐씩 모습을 드러낼 따름이다. 그러나 죽은 정대 넋의 1인칭 서술(2)에서 그가 도청에서 죽었음이 감지되고, 3장의 김은숙 이야기에 그녀와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살고 싶어서, 무서워서 네 눈꺼풀은 떨렸다”는 디테일이 기록되며, 4장 김진수와 한조였던 생존자 ‘나’의 서술에서 동호의 마지막 밤 모습과 이튿날 그가 다른 어린 학생들과 함께 손들고 나왔는데도 사살되는 장면이 전해짐으로써 서사가 이어져간다. 다소 성격이 다른 제5장에서도 ‘당신’으로 호명된 여공 출신 고문피해자 임선주가 나중에 자살하려다가 ‘분노의 힘’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학살당한 ‘너’의 사진을 봄으로써다.

놀라운 것은, 이 소설이 저자가 애초에 쓰고 싶었지만 포기했다는 ‘반짝이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국 다른 의미로 밝고 환한 소설이 되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동호가 해맑고 밝은 소년으로 ‘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와 길을 가도 밝고 꽃 핀 쪽으로 걷기를 좋아했는데, 친구 정대의 죽음을 보면서도 달아났던 괴로움으로 도청에 끝까지 남기를 택함으로써 자기 안의 ‘깨끗한 그 무엇’을 회복한데다 그 깨끗함이 더럽혀질 틈이 없이 순식간에 살해되었기에, 에필로그의 화자-저자도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주문할 수 있다. 그리고 소년은 마치 이에 화답하고 저자의 작업을 인증해주듯이 잠시 나타나 화자에게 미소를 던지고 사라진다.

말로 옮기기 힘든 고문을 겪고서 증언마저 거절하는 제5장의 선주가 오래 소원해졌던 성희언니를 병원으로 찾아가며 되뇌는 마지막 혼잣말도 “죽지 말아요”다. 본인에게는 증언 자체가 불가능해진 끔찍한 기억을 임선주를 불러내는 서술을 통해 복원하고 증언해낸 것 또한 이 작품의 힘이요 예술의 힘이 아닐 수 없다.

 

현기영(玄基榮) 소설가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모두 나름의 뚜렷한 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어서, 그중 하나를 섣불리 선택할 수가 없었다. 애잔한 정조와 감미로운 멜랑콜리가 전편에 무르녹아 흐르는 작품, 쓸쓸하면서도 강인한 고독의 이야기를 지적이고 담담한 어조로 들려주는 작품, 활력과 부패, 야만과 좌절의 소용돌이였던 압축경제시대를 투박한 남성적 필치로 묘파해낸 작품, ‘오월의 광주’를 새로운 시각으로 핍진하게 탐구한 작품 등등 각기 나름의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고심 끝에 선자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선택했다. 이 소설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작가가 종전에 천착해온 세계에서 훨씬 벗어나는 일대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선택의 이유이다.

이 작품은 ‘오월의 광주’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지난 세월 동안 갖은 정치적 조작에 의해 수모를 당하고, 소비향락적 주류문화에 의해 망각을 강요당해온 그 사건이 이 작품 속에서 지금 당장 벌어진 일처럼 강한 호소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강인한 분노로서 망각의 벽에 균열을 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래서 새롭다. 한 세대 전의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린 사건인데, 구닥다리 소재인데, 어떻게 새로워졌는가. 문학의 힘이다. 훌륭한 문학은 낡고 진부해 보이는 것을 다시 새롭게 만든다. 이 새로움 앞에서 누가 오월을 이미 한물간 낡고 진부한 소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가의 무섭도록 집요한 분노와 열정이 그 새로움을 창조해냈다. ‘오월의 광주’가 표방한 인간 존엄의 가치, 결코 망각해서는 안될 그 고귀한 가치를 망각의 늪에서 구해내려는 열망이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

절창의 진혼곡 『소년이 온다』는 망각에 저항하는 문학이다.

 

천양희(千良姬) 시인

이상국의 시는 겉으론 평범하고 수수한 것 같지만 읽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게 하고 마음을 적셔주는 알맹이 있는 시들이다. 속빈 강정 같은 시가 난무하는 시단에서 그의 시는 정말로 귀하다 하겠다. 사유의 깊이와 넓이로 쌓인 내공과 성찰이 존재론적 깨달음을 주고 있는 것이 그만의 뚜렷한 세계이다. 감동 없는 시대에 심금을 울려주고 공감을 주는 시가 얼마나 될까.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시집이라 생각한다. 황학주의 시에는 무엇보다 궁벽을 넘어선 자의 진솔한 힘이 있다. 특히 말법이 새롭고 독특한 것이 그의 시의 특성이다. 시에 긴장과 탄력이 있어 익숙한 세계도 낯설게 한다. 여태껏 느리게 오던 시의 속도가 이번 시집에서 어느덧 순항 속도에 닿았음을 보여준다. 반가운 일이다.

나희덕의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은 ‘말言語이 돌아오는 시간’으로도 읽힌다. 말이 돌아와서 박차를 가하듯 상실을 딛고 다른 세계를 쓰고 싶은 염원이 들어 있다. 이전의 시집과는 달리 시인은 상실되고 소멸된 것의 부재를 그리고 있다. 이것은 그의 시의 변화이며 변모다. 사랑의 부재 대신 생의 소멸을 향한 죽음충동을 표현하는 것이 그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다. 그의 시에는 언제나 황홀과 환멸이 함께 있어 공감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시의 개성이 지시하는 것은 갈등과 체험에서 온다. 의미있는 시집이다.

세권 다 어떤 문제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대단한 생명력을 가진다. 진정성이나 열정, 에너지 등이 개성적인 시를 쓰게 한다. 그러므로 좋은 시는 제가끔 독자적인 고유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시는 각자의 개성이 있어야 한다. 세 시집 모두 각자의 개성과 특성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전존재를 건 도약이 소설보다 미흡한 것 같아 아쉬웠다.

감명깊게 읽은 성석제의 소설과 한강의 소설은 어느 작품이 선정되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두 작품 다 한국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명인간』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존재의 상실감을 잃고 보이지 않는 소외계층의 전형이며 비참한 사람들의 상징이라면 『소년이 온다』는 오월 광주의 치유되지 않은 깊은 상처와 인간 존엄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뼈아픈 과정이다. 그 당시 작가 한강은 아홉살의 어린 나이라 체험도 못하고 증언과 자료에 근거해서 썼을 텐데 어떻게 이토록 쓸 수 있었을까. 읽는 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두 작품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이 찔끔 났다. 두 작품 모두 독자적 영역을 새롭게 개척했다 할 정도로 걸작이었다. 수상작을 결정하기까지 약간의 이견은 있었지만 역사적 사실을 새로운 시각과 치열한 영혼으로 썼다는 점에서 『소년이 온다』를 수상작으로 결정하는 데 동의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수상소감

 

검은 침목과 시간 사이에서

 

 

한강 韓江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가,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동리문학상, 이상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무덤들은 벌판 끝에 모여 있었다.

수백기의 나지막한 봉분들 위로 소금 같은 서리가 내려 있었다. 봉분 앞 비석이 놓여야 할 자리마다 사람 키만 한 검은 침목이 박혀 있었다. 깡마른 침목들이 우뚝우뚝 서 있는 모습이, 침묵하는 수백명의 키큰 사람들 같았다.

무덤들 사이로 난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나는 걸었다. 어느 사이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운동화를 적셨다. 나는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봤다. 잔뜩 흐린 하늘과 겨울 벌판이 한덩어리의 회색으로 보일 뿐, 어디서부터 땅이고 바다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빠른 속력으로 밀려들어온 바닷물이 일렁일렁 발등을 덮었다. 왜 이런 데다 이 많은 무덤을 썼지, 나는 초조하게 생각했다. 무덤 아래쪽은 벌써 바다에 쓸려가버린 거 아니야? 서리 위로 묽은 눈발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무덤과 무덤 사이를, 키큰 침목과 침목 사이를 나는 정신없이 걸었다. 무덤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은 묘지 위쪽의 무덤들이라도 옮겨야 한다. 시간이 없다.

눈을 뜨자 아직 어두운 새벽이었다. 창문이 파르스름해져 있는 걸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꺼풀을 손바닥으로 덮고 잠시 누워 있었다. 그게 무엇에 관한 꿈인지 곧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이 나온 뒤에도 그렇게 찾아오는 꿈들 속에서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데로도 나아가려 애쓰지 않으며, 검은 침목과 침목 사이에서 나는 멈춰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날에는 누군가 전화를 걸어 밥이나 냉면을 사주며 나의 광주는…… 하고 시작되는 길고 조용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날에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다. 수상 소식을 들은 오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전화를 끊고서 저녁까지 가슴이 먹먹했다. 이 상이 향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소년이라는 것을, 그 침목 아래의 당신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둥글게 어깨를 앞으로 말고 힘껏 등을 구부려서, 견디기 힘든 이 먹먹함을 껴안고 가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언어에는 불순물이 들어 있으므로 이 부끄러움과 먹먹함을 어떻게도 번역할 수 없다. 다만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발을 바닥에서 아주 조금 떼어, 아주 조금 내딛는 일…… 어김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이제부터 그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