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세월호를 넘어서는 청년들

 

 

김성환 金性桓

1983년생. 사회운동가. 사회혁신그룹 ‘더넥스트’(The Next) 디렉터.

 

박가분

1987년생. 고려대 경제학과 석사과정. 저서로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 『일베의 사상』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이 있음.

 

박주용 朴珠龍

1985년생. 창비 계간지출판부 편집자.

 

조세영 趙世英

1979년생.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자, 이제 댄스타임」 연출.

 

 

ⓒ 송곳

ⓒ 송곳

 

박주용(사회) 세월호참사가 벌어진 지 100일째 되는 날을 오늘 현재 사흘 앞두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준 충격은 대단히 컸고, 여러 화두와 고민거리를 남겼습니다. 특히 고등학생들이 대규모로 희생되면서 추모의 분위기가 고조되었습니다. 우리의 기성체제가 얼마나 허술한지, 통제받는 젊은 세대에게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선내에서 들려온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의 허망함과 잔혹함에 대한 반발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구호가 새롭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꼭 세월호 때문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요즘 청년 중에는 기성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을 상상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삶의 방식이 일정한 한계에 달했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청년 가운데 세분을 모셔 말씀을 나눌까 합니다. 먼저, 김성환씨는 현재 청년운동단체 ‘더넥스트’ 디렉터로 활동 중인 시민운동가입니다. 박가분씨는 개인 블로그 ‘붉은서재’를 통해 문필활동을 시작한 이후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인간사랑 2010), 『일베의 사상』(오월의봄 2013),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자음과모음 2014) 등의 저서를 낸 바 있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중입니다. 조세영씨는 10년 넘게 영화계에 종사하면서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2009), 「자, 이제 댄스타임」(2014) 등 주로 여성문제를 다룬 다큐를 발표한 영화감독입니다. 제가 더 자세히 소개할 것 없이 각자 현재의 활동내용과 함께 흔치 않은 길을 걷기로 한 배경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스펙, 방황, ‘덕질’의 젊은 날

 

金性桓 1983년생. 사회운동가. 사회혁신그룹 ‘더넥스트’(The Next) 디렉터.

金性桓

김성환 우선 제가 몸담은 더넥스트는 청년단체가 아니라 사회혁신그룹을 표방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청년세대라는 호칭에는 중요한 의미도 있지만 한편으로 약점도 있죠. 더넥스트가 20대 후반 30대 초의 청년 중심으로 활동하긴 하지만, 저희가 담고자 하는 내용은 청년의 세대담론이 아니라 이 사회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묻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한마디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사람, 정책, 그리고 새로운 방법론을 준비하자는 목표로 활동하는 사회혁신그룹이라 하겠습니다.

저는 원래 대학시절 취업 관련 활동에 몰두하면서 살았어요. 그래서 스펙도 상당히 다양해요.(웃음) 공모전에서 장관 대상도 받았고, 여러 기관에서 기자활동을 하거나, 자격증 따는 데도 열심이었죠. 그러다 우연찮게 한국청년연합(KYC)에서 주최하는 ‘체인지 리더’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어요. 20대가 나서서 사회를 바꿔보자는 취지로 토론하고 정책제안도 하는 프로그램인데, 우승하면 뉴욕에 인턴으로 보내준다기에 그것만 보고 지원했죠. 저는 시민단체가 뭔지도 몰랐고, 촛불집회 당시에도 거기 나갈 시간에 취업준비나 하라고 욕하면서 살았는데, 프로그램 첫째날 우석훈(禹晳熏) 박사 강의가 있었어요. 『88만원 세대』(레디앙 2007)가 막 뜨던 때였는데, 그날 하셨던 얘기가,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하는 학생들한테 짱돌 들고 바리케이드 치고 데모하라는 거였죠. 그 말을 듣고 ‘좀 이상한 집단 같다’ ‘빨갱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12일 일정 도중에 짐 싸서 도망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제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어차피 참가비 17만원이 환불 안되니 그냥 있다가 오라고, 그래도 어르신들인데 좋은 말씀 하시지 않겠느냐고 하는 바람에 남아 있었어요. 한달 동안 강의를 듣고 두달은 프로젝트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강의나 좀 듣다가 기회 되면 뉴욕에 한번 가보자는 나름의 욕망을 갖고 뛰어들었던 것이 지금까지 6년째 활동을 이어오게 됐네요. 기존에 취업을 위해 준비했던 스펙은 덕분에 다 물거품이 됐죠.(웃음)

 

朴珠龍 1985년생. 창비 계간지출판 부 편집자.

朴珠龍

박주용 6년간의 시민운동의 계기가 스펙을 위해 찾았던 강연이었다니 재미있는 사연이네요. 대다수의 청년이 취업에 몰두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그런 개인적 경험이 활동하시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는 더넥스트의 디렉터로 계신데, 어떤 역할을 하시는 건가요?

 

김성환 저희가 더넥스트를 시작할 때의 고민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이 대표성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였어요. 보통 이런 조직은 대표와 사무국, 운영위원으로 구성되는 구조를 갖고 있잖아요. 운영위원들은 회의에 참석해서 사무국에서 어느정도 정리한 안에 가부만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러다보니 엄밀한 의미의 시민참여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해서, 따로 대표를 두지 않고 운영위원들이 대표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실제로 활동을 이어가는 구조를 만들자고 결정했어요. 그 속에서 디렉터는 기능적 차원에서 실무를 지원하는 역할이에요. 운영위원들이 실제 자기가 원하는 미션을 사회 속에서 실현해가는 과정을 돕는 정도죠. 단체를 대표하는 직함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선한 욕망을 연결하고, 협업을 이끌어내는 매개자 역할로 보시면 됩니다.

 

趙世英 1979년생.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버라이어티 생존토크 쇼」 「자, 이제 댄스타임」 연출

趙世英

조세영 저는 스펙 같은 데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학교를 잘 안 나가서 학업도 엉망이었고 문제의식도 없이 살았어요. 저는 이른바 ‘MTV 세대’인데, MTV에서 나오는 뮤직비디오 보는 거 좋아하고 그러다가 대학에 가선 영화동아리 활동을 하게 됐어요. 거의 동아리방에서 잠만 잤죠. 그러다가 4학년이 되고 졸업을 앞둘 무렵, 직장은 나와는 안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단한 고민을 한 건 아니고, 취업한 선배들이 정장을 입고 다니는데 그런 옷을 입고 다닐 자신이 없더라고요.(웃음) 그 와중에 다큐멘터리 제작하는 학교 선배가 조연출을 구하는데 제가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구로구청에서 벌어진 부정투표 사건을 다룬 작품이었어요. 제가 2001년부터 참여했는데, 사실 그때 독립다큐멘터리계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학을 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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