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정용준 鄭容俊

1981년 광주 출생. 200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가나』, 장편소설 『바벨』이 있음. sfcyjlove@naver.com

 

 

 

이면의 독백

 

 

1.

 

어느날 내 모든 행위를 2인칭으로 서술하는 목소리가 찾아왔다. 그때 나는 쓰러진 아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병실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너는 병실을 떠나고 있다.’

그 목소리는 또렷하고 명징했다. 왼편에 선 누군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당황했으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병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목소리는 또 말했다.

‘문을 열고 있다.’

나는 문고리 잡은 손을 꽉 움켜쥐고 숨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등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병상에 누운 아버지가 멍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그래.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바깥의 소리로 착각하고 있는 거야. 그러나 그게 시작이었고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목소리는 쉬지 않고 말을 했다. 그 음성이 너무도 생생했기에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환청, 분열, 섬망(譫妄) 같은 단어들을 검색하고 증상과 사례를 읽어봤다.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가장 큰 두려움은 목소리가 미지의 존재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감추고 성격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나를 알고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는 신처럼 전지전능한 눈을 갖고 내면과 외면 전체를 서술한다. 이것은 자아일까. 아니면 무의식인가. 내심인가. 본심인가. 그는 대체 어디에 있는 누구란 말인가. 목소리를 두려워해야 할지 그 목소리를 듣고 있는 나를 두려워해야 할지 판단하기 힘든 불길한 나날이 이어졌다. 해변으로 산책을 나가거나 읍내의 상점을 돌며 볼일을 볼 때, 심지어 슈퍼마켓에서 담배 한갑을 사고 구겨진 지폐 몇장을 내밀 때조차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누군가 내 동선을 따라다니는 것 같은 강박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거나 일상의 사각(死角)을 향해 눈을 돌리며 어두운 구석구석에서 그를 찾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허사였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그것은 언제나 어둠 저편으로 사라졌다.

처음엔 호전적 태도를 취했다.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적대감을 드러냈다. 때론 위악적인 태도로 수평선을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이내 그 혐오감은 나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서서 고함을 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운 모노드라마처럼 느껴졌다. 나는 두려웠다. 자아가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나를 기어이 미친 사람으로 만들 것 같았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점점 안정되었다. 그는 나의 태도에 반응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먼저 말을 걸어보고, 몇번이나 대화를 시도했으나 그는 내 말이 들리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듯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너는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며 중얼거리고 있어’라는 식으로 이따금씩 내 모습을 묘사할 뿐이었다. 그는 나에 대해 말하는 것 외에는 조용한 존재였다. 중립적이었고 감정을 읽어낼 수 없이 차분한 어조를 갖고 있었다. 그의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갈등이 없는 비교적 평온한 상황이었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목소리는 단순한 화자가 아니었다. 서서히 개성을 드러내는 나 아닌 다른 인격이었다.

 

 

2.

 

아버지와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해변이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단층 건물이다. 오래된 여인숙을 펜션으로 개조한 것으로 ‘ㄷ’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 여덟개의 방이 흰 자갈이 깔린 마당을 마주하고 있다. 기차역과 가깝고 해변이 보이는 풍광, 낡은 건물이 주는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 덕인지 성수기에는 제법 사람들이 찾는다. 하지만 에어컨이 없는 방과 야외 화장실, 조악한 수도시설을 경험하고 나면 누구도 이곳을 다시 찾지 않는다. 때문에 그녀가 이곳에서 장기 투숙하겠다고 했을 때 반가운 마음보다 두려운 생각이 앞섰다. 게다가 지금은 눈이 펄펄 쏟아지는 1월 중순이다. 그녀는 커다란 자주색 캐리어를 끌고 대문을 두드렸다. 문턱을 밟고 서 있는 그녀의 등 뒤로 바큇자국 두줄이 길게 나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뭐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나는 그것이 불길했다. 그 얼굴엔 단순한 이들이 갖는 멍청함과 운명적 체념이 서려 있었다. 죽을 곳을 찾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녀가 당분간 방을 쓰겠다고 했을 때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며 꺼렸던 까닭은 어떤 식으로든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잠시 멍하게 있었다. 아버지가 휠체어에 앉아 고개를 길게 빼고 여자를 쳐다봤고 간병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흘이 지난 늦은 밤, 우리는 마루에서 만났다. 그녀는 투숙객들이 으레 그러듯 그것이 대단한 풍경이라고 믿는 멍청한 눈으로 담장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어떤 감정을 갖고 그녀를 본 것은 아니었고 그냥 내 앞에 그녀가 있어서 보는 것뿐이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군청색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미소를 띠고 여기저기 살피며 마루를 돌아다녔다. 움직일 때마다 오래된 나무가 어긋나며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동생의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손가락으로 만지고 바닥에 놓여 있는 오래된 주전자의 손잡이를 들어보기도 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 방 앞에 걸려 있는 새장에 흥미를 보였다. 새장엔 새가 없었다. 바닥의 좁은 틈새로 붉은 깃털 몇개가 박혀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맥주 캔을 내밀며 말을 걸어왔다.

새장에 새가 없네요.

나는 그녀의 어깨 너머로 새장을 쳐다보곤 눈썹을 까딱하며 말했다.

새장이 있었는지도 몰랐네요……

새장에 새가 없다니 참 이상하네요. 새가 없는 새장이라, 뭔가 근사해요.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뭐가 근사한지 알 수 없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새는 앵무였을 것이다. 그 녀석은 내가 놓아줬는데 새장을 떠나려 하지 않고 날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후에 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잊어버렸다. 그녀는 어느새 내 옆자리에 앉아 자신의 무릎을 인형처럼 껴안고 비극적인 얼굴로 밤바다를 바라봤다. 나는 캔 뚜껑을 따고 한모금 마신 뒤 그녀가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마루 중앙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가 한시를 알리는 종소리를 울렸다. 우린 동시에 등 뒤를 돌아봤고 곧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깜짝 놀랐다고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추워서 더 못 있겠어요. 내 방에서 한잔 더 할래요?

그제야 나는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봤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대충 훑어봤다. 나이가 많아 보였지만 괜찮아 보였다. 나는 좋다 싫다 대꾸 없이 맥주를 한모금 더 마셨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일어섰다. 그 밤, 나는 그녀와 잤다.

자신이 에세이스트라고 했다. 손바닥 크기의 노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고 대화 중에도 뭔가를 기록하고 종종 그림도 그렸다. 어깨 너머로 몇 문장 읽어봤는데 형편없었다. 이런 수준이면 수입도 거의 없을 듯 보였다. 뭔가 예술적인 작업을 하고 있는 양 보이길 원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녀와 나는 열두살 차가 난다. 나는 스물아홉이고 그녀는 마흔하나다. 이렇게 나이 많은 여자와 잠을 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와의 섹스는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읍내의 돼지 같은 여자들보다 나았다. 나는 그날 이후 밤마다 그녀의 방에 들어가 아침에 나왔다. 생각해보니 근 몇년간 한 여자와 주기적으로 반복해서 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따분하기 짝이 없는 곳이라, 누구라도 좋으니 사람이 있으면 무슨 말이든 하거나 듣고 싶었다. 그것이 주는 위안이 있었고 뜻 모를 초조함도 있었다. 그녀는 기혼이었지만 내게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녀가 이 집을 떠나면 끝날 관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가 떠나지 않으면 끝날 수 없는 관계기도 했다.

그녀의 두 눈 중 하나는 사시였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게 균형이 어긋났다. 하지만 섹스를 할 때는 두 눈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그것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면 섬뜩한 기분을 느꼈지만 동시에 기이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기형적인 에로티시즘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나를 흥분시켰고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우리는 별다른 갈등도 사건도 없이 잘 지냈다. 주로 그녀가 이야기를 했고 나는 들었다. 그녀가 입을 맞추면 자연스럽게 옷을 벗었다. 그녀는 수다를 떨다 힘이 빠져 내 팔을 껴안고 서서히 잠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무의식을 온전하게 알고 싶어했고 트라우마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이해하길 원했다. 정신에 인생의 진리와 신비가 모두 들어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기억에 집중했다. 꿈을 꾸면 그것에 대해 꼭 말해야 했고 자신이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는지에 대해 온종일 생각했다. 그리고 내게 생각한 것을 말해줬는데 대부분 자신의 경험 일부와 그것이 꿈에 어떻게 투사되었는지에 대한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너무 심한 비약이었고 어떻게 보면 누구든지 적용할 수 있는 일반적인 접근이었다. 나는 그녀가 한심했다. 그토록 신비하고 대단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정신이라는 세계가 너무도 형편없고 시시해서 마침내 실망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목소리’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너는 이 대화에 지루함을 느끼며 그녀를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숨기고 고개를 끄덕이며 최선을 다해 들어줬고 동조하는 척했다. 한번씩 그녀는 나에 관해 물었다.

그런데 자기는 자기 얘기는 통 안하네?

글쎄,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어. 나는 나한테 관심이 없거든.

그래도 뭐든 이야기해봐.

뭐가 궁금한데.

옛날 일이나 안 좋았던 기억 같은 거.

잠시 생각했다.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아버지와 관계된 몇몇 사건을 말해줬다. 그리고 유년 시절에 겪었던 수치스러운 일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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