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권여선 權汝宣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1996년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 장편소설 『푸르른 틈새』 『레가토』, 소설집 『처녀치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비자나무숲』 등이 있음. puruntm@empas.com

 

 

 

이모

 

 

결혼하기 전에 나는 태우의 친가 쪽은 번다하지만 외가 쪽으로는 외할머니 한분밖에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의 부모님을 처음 만나 뵈었을 때 어머니가 외동딸이라 성격이 좀 센 편이겠구나 짐작했다. 상견례는 중식당에서 있었는데 어머니가 코스와 단품 등 모든 메뉴를 결정했고, 아버지는 조금 툴툴거리면서, 태우는 아무 말 없이 그 결정에 따랐다.

결혼하고 한달쯤 지나서 태우는 이모와 외삼촌이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에게 언니와 남동생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들은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모는 이년째 가족과 관계를 끊고 잠적했고, 외삼촌은 도박빚으로 수배 중이라고 했다. 시어머니는 결혼을 앞두고 굳이 이런 사실을 며느리와 사돈집에 알릴 필요가 있겠는가 고민한 끝에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이모가 병원에 입원했대. 다행히 엄마한테 연락이 됐나봐.”

“무슨 병이시래?”

“말씀 안하셨어. 그건 병이 심각하다는 뜻 아닐까?”

“그게 뭐 꼭……”

나는 어정쩡하게 대꾸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분의 병증에 대해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루종일 마음이 그랬어. 난 이모가 좋았거든.”

태우의 마지막 말은 내게 모종의 압력으로 다가왔다. 이러다 도박빚으로 수배 중인 외삼촌도 며칠 안에 만취한 상태로 남편 품에 안겨 우리 신혼집에 출현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나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시이모님의 병문안을 가기로 했다. 한번쯤은 가보는 게 도리일 터였다. 어머니가 합리적이고 강단있는 분이라 적잖은 의지가 되었다. 어머니는 길도 복잡하니 택시를 타자고 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시이모님이 어디가 아프신지 묻자 췌장암이라는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전이는 안되었는지 물으려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그만두었다. 택시에서 내려 병원 입구를 향해 걸어갈 때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우리 언닌,”

어머니는 잠시 움찔하더니 말을 바꾸었다.

“그러니까 네 시이모님은, 아주 괴팍한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정한 편도 아니다. 누구한테 민폐 끼치는 걸 싫어하고 차라리 자기가 손해를 보고 마는 성격이지.”

나는 그런 점은 자매가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다.

“난 좀 일찍 결혼한 편인데 결혼하고 나서는 친정에 자주 왕래하지 않았다. 친정이 싫었으니까.”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나를 보았다. 이해하겠느냐 묻는 듯도 하고, 너도 그런 건 아니냐 살피는 듯도 했다.

“우리 언닌 평생 직장생활 하면서 결혼도 안하고 엄마를 모시고 살았다. 그 집에 경철이 녀석이, 그러니까 네 시외삼촌 말이다, 걔가 가끔 들락거렸는데, 걔가 돈 사고 치면, 그래, 이제 너한테 못할 말이 어디 있겠냐, 그러면 언니가 몇번 물어주고 그랬지. 그러다가……”

우리는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 서너명이 우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어머니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야 다시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게 재작년 가을인가 그런데, 언니가 갑자기 편지 한장만 써놓고 사라졌다. 자기를 절대 찾지 마라, 당분간 모든 관계를 끊고 살겠다,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 마음이 변하면 돌아오겠다,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참 내용도 놀라웠지만, 그러니까 그게 뭐냐? 너는 글을 쓰니 알겠지. 그걸 뭐라고 그러냐?”

나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글에 담긴 기운이라고 해야 하나? 글자도 아니고, 글씨체도 아니고.”

“문체요?”

“문체? 그런 걸 문체라고 하냐? 나는 모르겠다. 우리 언니도 옛날엔 글쟁이가 되고 싶어했지. 널 보면 반가워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언니 편지를 읽는데, 문체인지 뭔지에 깃들어 있는 마음이나 기분 같은 게 으스스하게 느껴지는데, 못된 말을 쓴 것도 아니고 다 평범한 말뿐이었는데, 이상하게 무섭고 서럽더라. 난 그게 뭔지 궁금하다. 도대체 그게……”

어머니의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병실에 도착할 때까지 그게 뭐였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시이모는 인사하는 나를 빤히 보더니 금세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구나!”

그 말이 너무 격의가 없어 나는 당황했다. 어머니는 병상에 누운 언니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고, 시이모도 동생을 말갛게 올려다보았다. 침묵이 계속되자 나도 시이모를 물끄러미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매우 말랐고, 거칠고 주름진 피부에, 숱이 듬성듬성 빠진 머리를 모자나 스카프로 가리지 않고 그대로 내놓고 있어 아사 직전의 원숭이처럼 보였다. 어머니와 두살 차이라는데 스무살은 더 들어 보였다. 피곤해서인지 눈이 시려서인지 시이모는 몇초씩 눈을 감았다 뜨곤 했는데, 퀭한 눈을 뜨고 무엇을 응시할 때면 눈의 흰자위에 살짝 푸른빛이 감돌았다.

어머니가 마침내 입을 뗐다.

“병원비는 걱정 마, 언니.”

“걱정, 마라.”

시이모가 천천히 말했다. 되묻는 건지 중얼거리는 건지 애매했다.

“그런 소릴 들으니 참 좋구나. 그래도 난 퇴원할 거다.”

“언니, 제발!”

“부탁인데 엄마한테는 알리지 마라. 그 여인이 내 앞에서 우는 건 절대 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말하고 시이모는 눈을 감더니 다시 뜨지 않았다. 어머니는 일분 정도 서 있다가 가자, 하더니 병실을 나갔다. 짧고 어색한 병문안이었다. 나는 홀가분한지 서운한지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참 이상한 자매였다. 시트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시이모의 마르고 주름진 손을 보자 왠지 한번은 잡아보고 싶었다.

“시이모님, 저 갈게요.”

내가 손을 잡자 시이모가 눈을 반짝 떴다. 짓무른 듯 젖은 눈자위 속에서 푸른빛이 거미줄처럼 가늘게 반짝였다.

“너 글 쓴다며?”

“본격적으로 쓰는 건 아니고, 그냥 공부하고 있어요.”

“우리 집에 한번 놀러 와라.”

“아, 네.”

시이모가 웃음인지 찡그림인지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 집에 누굴 초대하는 건 처음이야.”

“아, 네.”

“송장 치우게는 안할 테니 놀러 와.”

“네.”

“아이, 오지 마라, 오지 마!”

고양이처럼 토라진 시이모의 말투에 나도 모르게 투정하듯 물었다.

“아니 왜요?”

“난 떨리는데 넌 심드렁하잖니?”

“아니에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래요. 갈게요.”

“그래, 가라.”

“아니, 시이모님 집에 놀러 간다고요.”

“시이모님은 무슨……”

시이모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네?”

“이모라고 부르라고. 글자도 반으로 줄고 어감도 낫잖니? 놀러 올 거면 얼른 메모해라. 윤경호, 경기도 안산시……”

 

이모가 퇴원한 후에 나는 그녀의 집을 규칙적으로 방문했다. 규칙은 그녀가 정했는데 일주일에 한번, 월요일 오후였다. 그녀는 매일 집 근처의 도서관에 다니는데 월요일이 휴관일이라고 했다. 나는 결혼준비를 위해 대학원을 한 학기 휴학한 상태여서 시간이 여유로웠다. 아마 내가 살아온 서른해 중에서 그때가 가장 한가한 때였을 것이다.

이모는 안산의 외곽에 있는 오래된 소형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열평 남짓한 실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아니, 정돈되어 있다기보다 정돈할 것이 거의 없었다. 그녀의 집에는 없는 게 많았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휴대전화도, 집전화도 없었다. 당연히 케이블티브이나 인터넷도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 뉴스는 어떻게 보시느냐 물었더니 도서관에 가서 거기 있는 컴퓨터로 본다고 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었다. 그녀의 집에 있는 가전제품이라고는 구형 냉장고와 세탁기뿐이었다. 옷장도 없었는데 벽에 붙박이로 설치된 이불장만으로 충분한 듯했다. 집안 전체가 수녀의 방처럼 텅 비어 있었다. 그릇이나 냄비도 몇개 없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에 밴 습관인지 그녀는 설거지거리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바로 씻었고, 빨랫감이 생기면 세탁기를 돌리지 않고 손으로 빨았다.

이모를 처음 방문한 날은 좀 추웠는데 그녀는 커피가루만 넣은 뜨거운 커피에 설탕을 따로 내주었다. 그녀는 내게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 태우와 어떻게 만났는지 물었다. 나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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