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 제21회 창비신인평론상 수상작
징후적 소설과 그 너머
이기호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가 맴도는 것들
이은지 李垠知
1986년 부산 출생. 중앙대 독문과 석사과정 졸업. zzellystick@naver.com
1. 서사의 ‘이기’와 ‘이타’
나는 매일같이, 소설 외의 다른 곳에서는 어디서건
진실성에 이른다는 것은 욕심일 뿐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스땅달(Stendhal)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거울을 만들었다. 거울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을 ‘대상’으로 삼는 이 모순의 실천은 의식화의 중요한 계기임이 자명해 보인다. 인간은 자신을 상상적 타자로 떼어내어 그에 대한 이타(利他)를 통해 자의식을 완성하는 이기(利己)에 도달한다. 즉 인간의 의식은 이타 없는 이기도, 이기 없는 이타도 불가능하도록 타고났다.
스땅달이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을 때, 여기에는 인간의 자의식을 사회화하는 탁월한 굴절이 존재한다. 사회가 스스로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거울인 소설은 동시에 그 사회의 일부인 인간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은 사회에 대한 의식이면서 사회로부터 분리된 의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식의 두 차원이 서로를 반영할 때, 소설은 사회로 환원 가능한 허구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소설이 자신의 의식에 고무되어 사회를 등질 때, 그 의식의 내부에서 전개되는 모든 운동은 아무리 이상적일지라도 공허하다. 거기에는 소설의 자기애, 소설의 이기(利己)만이 자리한다.
흔히 이기호(李起昊)의 문학은 ‘시봉의 서사’와 ‘형식의 파격’으로 요약된다. 류보선(柳潽善)이 “비루한 존재”로 규명한 바 있는 ‘시봉’은 이기호 자신의 문학적 화신이자 현대사회를 대변하는 인물로, 작가의 작품 곳곳에 편재하며 시대적 서사와 개인적 서사를 길항하는 중요한 매개로 기능한다. 시봉이라는 문학적 매개는 1980년대를 진원으로 삼는 역사적 소재를 채택하면서도 백수, 불량배, 취업준비생, 바바리맨 등 우리 시대 하위주체의 문법으로 그것을 독해함으로써 근대와 탈근대를 이접한다. 이 기묘한 동침은 우리 시대의 큰 타자로 잠재하는 과거를 현재의 하위텍스트로 읽는 ‘역사의 탈역사화’에 닿아 있다.
한편 작가가 더 근본적으로 추구해온 것은 형식의 실험을 통해 ‘서사’라는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었다. 이때 서사란 문학이라는 제도 안에 운신하는 공통의 꿈, 공통의 환상이다. 제도로서의 서사는 세계를 예측 가능하고 구조화할 수 있는 한줌의 반듯한 체제로 가공한다. 그러나 그 체제에 안주하는 동안 정작 실제 사회는 ‘세계 없음’(worldless, 바디우)의 공간으로 빠르게 사막화된다. 체제로서의 문학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홀연히 사회를 비추고 있으나, 이는 해소할 길 없는 갈증을 속이는 신기루 같은 반영일 따름이다.
이기호는 랩(「버니」), 성경(「최순덕 성령충만기」), 최면술(「나쁜 소설」), 조리법(「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등 다양한 비문학적 양식을 서사의 울타리로 끌어들임으로써, 현실의 자리를 지우고 이데올로기적 도구로 기능하는 매끈한 서사에 반기를 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이 서사라는 이념을 내파하는 데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이는 이 작품들이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텍스트로 치환하면서 사회 제반의 ‘소설화’로 귀결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전술에 자신이 함락되는 오류에 봉착한 것이다. 스땅달이 소설을 거울에 비유했을 때, 이 거울이 현실과 유리되어 자홀(自惚)에 빠질 가능성은 간과했듯이 말이다.
근작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문학과지성사 2013)에서 이기호는 이때까지 추구했던 형식의 파격 대신에, 서사의 ‘부재’를 서사하는 전략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작가는 문학이 의식화할 수 없는 것을 의식하려는 노력, 즉 소설이라는 거울이 반영할 수 없는 거울 바깥의 세계를 천착하려는 노력을 경주한다. 왜냐하면 문제는 소설과 비소설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이기를 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곧 소설의 이기라면, 그것은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하는’ 노력을 통해 극복될 수 있으리라.
하여 이기호의 소설은 더이상 1980년대라는 소재주의에 매몰되지도, 하위주체라는 특수한 이름에 결박되지도, 부단한 형식실험이라는 아방가르드에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그에게 주어진 문제는 서사의 그림자, 즉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해야 하는 딜레마이므로. “이제 겨우 타인에게로 눈을 돌리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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