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성희 尹成姬
1973년 경기 수원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 『감기』 『웃는 동안』, 장편소설 『구경꾼들』이 있음. hitchike@hanmail.net
휴가
그거 참 이상한 질문이구나. 액자를 떼어내며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넘어지지 않게 의자를 붙잡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이 얼굴에 닿아 재채기가 나려 했다. 내가 무엇을 물어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머니의 목소리만은 어제 들은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평소에도 다정하게 말하던 분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목소리는 유난히 차가웠다. 겨울이라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마루에는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겨울이면 입김이 보일 정도로 냉기가 돌았다. 난로가 있었지만 어머니는 연탄값이 아깝다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아니면 때지 않았다. 아홉살 때였을 것이다. 어쩌면 열살이거나 열한살이었을 수도. 아니면 내가 가짜로 만들어낸 장면이거나. 동네에 수프 전문점이 생긴 이후로 나는 일요일이면 슬리퍼를 신고 이곳에 와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따뜻한 수프가 식도를 넘어갈 때면 이상하게도 어머니의 말이 환청처럼 들렸다. 억양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그거 참 이상한 질문이구나. 아홉살짜리가 한 이상한 질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비스예요.” 날이 더워지니 장사가 안된다며 가게 주인이 수프 한그릇을 더 가져다주었다. “안 팔리는 거 주는 거죠?” 내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집 음식은 전부 안 팔려요.” 주인도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따라 웃지 않았다. 정말로 장사가 안되었으니까. 주인은 이주 동안 가게 문을 닫는다고 했다. 스킨스쿠버 동호회 회원들과 동남아로 휴가를 떠난다고. 장사가 안되는 가게의 주인치고는 좀 느긋한 편이었다. “나도 내일부터 휴가예요. 밥하기 싫어 자주 오려 했는데 안되겠네.” “저기 찻길 건너 죽집 생겼어요. 거기 맛있어요. 우리 옆집 돈까스도 맛있고요. 음, 콩국수 맛있는 집도 있는데 가게 이름이 생각 안 나네. 동사무소 옆에 있는데.” 나는 주인에게 휴가 내내 혼자 밥해 먹는 일도 고문이라고 말해주었다. 며칠 만에 회사 급식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고. 수프 두그릇을 먹으려니 배가 불러왔다. 그래도 바게뜨를 추가로 주문해서 수프에 적셔 먹었다. 그때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에 수프가 묻었다. 나는 손가락을 빨았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이곳에 오는 이유가 어쩌면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부러 손가락에 음식을 묻히기에는 수프만큼 좋은 게 없으니까.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그사이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보니 두시가 지나 있었다. 자는 동안 땀을 흘려 온몸이 끈끈했다. 다시 샤워를 했다. 이러다간 휴가 내내 샤워만 하는 거 아닌지.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회사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사이 박에게서 전화가 와 있었다. “왜?” 메시지를 보냈다. 박이 곧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밥 먹으러 와. 장모님이 토종닭 보냈어.” 나는 작년 여름에도 박의 장모님이 보낸 토종닭을 얻어먹었다. 삼계탕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다지 맛있게 먹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재작년 여름에도 얻어먹었다. “싫어. 나 휴가야. 일주일 동안 집에 콕 박혀 잠만 잘 거야.” 그러자 박이 삼계탕에 낙지를 넣어주겠다며 나를 꼬였다. 나는 낙지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뭐든지 좋아하지만, 그래도 그걸 먹기 위해 집 밖에 나가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 지나 박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휴가 기념!” 아이스커피 모바일 상품권이었다. 역시 올해의 영업왕을 삼년 연속 탈 만한 녀석이었다.
쿠폰을 보니 갑자기 아이스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커피도 배달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짜장면 한그릇도 배달되는데. 커피는 그보다 원가가 더 싸니 괜찮은 장사일 텐데. 냉동실을 뒤져봤지만 얼음은 없었다. 얼음통에 물을 채워 넣고, 인터넷으로 얼음을 얼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검색해보았다. 세시간에서 네시간이 걸린다는 답이 있었다.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하나씩 위로 올렸다. 152번이 끝이었다. 다시 채널을 아래로 내리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었다. 블랙박스에 찍힌 사고영상이 방송되고 있었다. 수십건의 교통사고 현장을 보고 있자니 얼마 전에 회사를 그만둔 최종민 대리가 생각났다. 같은 부서는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만났다. 오줌을 누고 있을 때 옆에 와서 구십도로 인사를 하는 후배였다. 그때마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한번은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우연히 만나 술을 같이한 적이 있다. 장차장님, 하고 누군가 불러 뒤를 돌아보니 최대리가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구십도로 인사를 하더니. 그런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테이블에는 맥주 한캔이 놓여 있었다. 최대리가 내게 잠깐 기다리세요, 하고 말하더니 편의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잠시 후 맥주 한캔과 안주를 사가지고 나왔다. “이게 편의점에서 제일 맛있는 안주예요.” 최대리가 말했다. 세알씩 진공포장된 메추리알조림이었는데, 사실 나도 좋아하는 안주였다. “이거 세알과 맥주 한캔이면 딱이지. 내 친구 중에는 이거 세알로 맥주 세캔을 먹는 놈도 있어.” 내가 말했다. 최대리가 자기 친구 중에도 그런 녀석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날 나는 최대리의 취미를 알게 되었다. 최대리는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었다. 보이는 모든 사람의 수를 세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주제를 정해 거기에 해당되는 사람의 수만 세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흰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찾기로 결정한 날은 그런 사람만 세는 식으로. 그는 지갑만한 크기의 수첩을 늘 가지고 다녔는데 거기에 매일의 기록을 적었다. 최대리가 내게 수첩을 보여주며 말했다. “어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여자를 여덟명 보았어요. 그제는 생수병을 손에 든 사람, 다섯명이네요. 날은 더운데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제가 이상하게 보이죠?” 나는 최대리의 수첩을 만져보았다. 그러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참 쓸모없는 취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맞아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행복해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그러면서 최대리는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침이면 신문을 뒤져 전날 몇명이 죽었는지를 세었다고. 그게 하루의 시작이었다고. 젊은 시절에 죽을 고비를 세번이나 넘겼다는 최대리의 아버지는 신문 부고란을 읽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야 그날 하루가 안심이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세요. 어머니는 해마다 약해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인데, 아버지는 그 반대예요. 어떨 때는 그게 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최대리가 말했다. 최대리가 사표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전한 직원에게 그럴 것 같았어,라고 대답했다. 그날 우리는 한사람당 다섯캔의 맥주를 마셨다. 물론 메추리알도 열다섯알씩 먹었다. 언젠가 나도 뉴스에서 전하는 교통사고 소식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게 될까? 저 사고현장에 내가 없어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을까? 더 나이가 들면? 아니, 아니. 나는 고개를 저어보았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얼음은 아직 얼지 않았다. 지난여름 백만 관객이 들었다는 영화를 뒤늦게 보았다. 뻔한 내용인데도 재미가 있었다. 영화를 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참치 통조림을 프라이팬에 붓고 김치를 가위로 잘게 썰어 넣었다. 김치가 볶아지는 동안 즉석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볶은 김치와 고추장을 한숟가락 얹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약간. 밥을 비벼 그릇을 들고 선 채로 먹었다. 창밖으로 고등학교 건물의 뒤편이 보였다. 전망은 근사하지 않지만 그래도 앞집 담벼락을 보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라고 부동산 중개인은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