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윤선영 尹善暎

1972년 서울 출생.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aquacat@hanmail.net

 

 

 

 

미세스 오

 

 

셔츠가 왜 다 이 모양이야? 옷장 속의 와이셔츠들을 뒤적이던 남편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왜? 토스터에 식빵을 집어넣으며 여자는 남편 쪽을 향해 되물었다. 이거 좀 봐. 남편이 거실로 나와 옷걸이에 걸린 와이셔츠 한장을 여자의 얼굴을 향해 들어 보였다. 와이셔츠는 구깃구깃 했다. 그제야 여자는 어젯밤 해뒀어야 할 일을 미처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림질해둔 거 없어? 하나도? 남편이 물었다. 미안해. 너무 정신이 없어서 깜박 잊었어. 여자는 잰걸음으로 남편을 향해 다가가다가 식탁 다리에 새끼발가락을 찧었다. 짧고 큰 신음을 내뱉은 여자가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남편은 괜찮으냐는 말 대신 한숨을 내뱉었다. 통증이 멎을 때까지 기다릴 새도 없이 여자는 다리를 절룩이며 남편에게 다가가 손에 들린 와이셔츠를 빼앗았다. 금방 다려줄게, 오분이면 돼. 여자의 얼굴이 구겨진 와이셔츠보다 더 구겨져 있었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무슨 수로 오분 만에 다린다는 거야? 난 지금 나가야 돼. 남편은 여자를 밀치고 다용도실을 향해 걸어갔다. 남편은 세탁물 바구니 안에서 어젯밤 벗어놓았던 셔츠를 다시 집어들고 나왔다. 여자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찧은 새끼발가락을 감싸쥐었다. 남편은 와이셔츠를 걸치고 빠르게 단추를 채웠다. 잠들어 있던 아기가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토스터에서 구워진 식빵이 튀어올랐다. 뭐라도 먹고 나가야지, 빵에 버터 발라줄까? 여자는 깨금발로 일어서서 토스터 안의 식빵과 남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남편은 대꾸도 없이 넥타이를 둘러맨 후 방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발치에 떨어져 있는 남편의 와이셔츠를 주워 소파 위로 던져놓았다.

아이의 칭얼거림이 점차 커지더니 곧 울음소리로 변했다. 오전 여덟시였다. 겨우 세시간을 자고 일어나 잠에서 덜 깬 채로 아이를 안아 어르고 분유를 먹여 재운 지 한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왜 그렇게 서 있는 거야? 울잖아, 가서 어떻게 좀 해봐. 재킷을 걸쳐 입고 방에서 나온 남편이 턱으로 방을 가리켰다. 남편은 두리번거리며 가방을 찾기 시작했다. 가방은 소파 위에 널려 있는 옷가지와 담요 아래 처박혀 있었다. 집구석이 이게 뭐냐? 정리 좀 하고 살자. 남편의 말투가 퉁명스러웠다. 오늘은 정리가 좀 되겠지. 여자가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남편은 여자의 얼굴을 흘낏 쳐다보았다. 오늘 온다고 했나?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은 시계를 확인하고 현관으로 나가 신발을 신었다. 간다. 짧은 인사를 남긴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을 나섰다. 두꺼운 철제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여자는 스물네평 아파트에 남겨졌다, 우는 아기와 함께.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현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는 다리를 절룩이며 방으로 들어갔다. 부딪힌 발가락이 아직도 아릿했다. 아기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울어대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여자는 스툴에 앉아 아기침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우는 아기의 가슴을 토닥였다. 소용없었다. 아기는 특별히 까다롭거나 예민하지는 않았지만 유독 잠투정이 심했다. 어쩔 수 없이 여자는 아기를 들어 안았다. 빨리 아기를 재워야만 했다. 이틀 후가 마감이었다. 오늘의 작업분량을 진척시키지 못하면 마감을 어기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그것은 여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 중 하나였다. 여자는 양팔로 아기를 가슴에 받쳐 안고 등을 토닥이며 방 안과 거실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생후 육개월인 아기는 이제 오래 안고 있기에는 무거웠다. 금세 손목이 시큰거렸다. 아기를 안은 채 여자는 하품을 했다. 졸리고 피곤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져 사흘 밤낮쯤 깨지도 않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아기를 안고 서성거리는 동안 여자는 흡사 포탄이라도 맞은 듯한 집 안 풍경을 둘러보았다. 소파 위에는 가방과 옷가지가 널려 있고 소파 테이블에는 책과 잡지들, CD와 과자봉지 등이 빈틈없이 올려져 있어 상판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거실 바닥에는 보행기와 일회용 기저귀 패키지, 장난감과 걸레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텔레비전 앞 거실 한가운데 놓인 건조대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빨래들이 늘어져 있었다. 식탁에는 빈 컵과 스푼, 젖병과 밀폐용기가 함부로 널려 있고, 개수대 안에도 양념과 음식 찌꺼기가 묻은 그릇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오랫동안 걸레질을 하지 못한 바닥은 얼룩지고 끈적거렸다.

아기는 삼십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다시 잠들었다. 여자는 조심스레 아기를 침대 위에 눕힌 뒤 방을 빠져나왔다. 여자는 식탁 앞에 앉아 토스터 안에 그대로 꽂혀 있는 식빵을 빼냈다. 빵은 그사이 비스킷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여자는 물 한잔과 함께 굳은 식빵을 먹어치웠다.

 

초인종이 울린 것은 정오였다. 아기를 보행기에 앉혀놓고 이유식의 마지막 한 숟갈을 막 떠먹인 참이었다. 여자는 이유식 그릇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 안에 사람 얼굴 하나가 동그랗게 떠올랐다. 여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시죠? 여자는 물었다. 모니터 안의 사람은 대답 대신 철제 현관문을 작게 두번, 똑똑 두드렸다. 여자는 체인을 걸어둔 채로 현관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문을 열고 여자는 다시 한번 물었다. 방문자는 베이지색 정장 차림이었고, 검정색의 큼직한 토트백을 들고 있는 50대 중반의 여자였다. ‘여호와의 증인’일까? 그렇지만 방문자는 포교활동 다니는 종교인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들은 반드시 둘씩 짝지어 다니지만, 방문자는 혼자였다. 아닌 게 아니라 방문자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라는 말 대신 여자에게 1041105호가 맞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경계심을 지우지 못한 채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 제대로 찾아왔네요. 사람 쓰기로 하셨지요? 방문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제대로 찾아왔다고? 여자는 당황해하며 천천히 현관 체인을 풀었다.

구두를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선 방문자는 여자의 거실을 훑어보았다. 당황한 것은 여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방문자의 눈동자가 조금 커지고 놀란 기색이 얼굴에 스치는 것을 여자는 보았다. 저기…… 여자가 허둥거리며 입을 열자 방문자는 여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입가에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업체 소개로 왔어요, 저는 미세스 오예요. 방문자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여자가 가사도우미를 쓰기로 결심한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여자는 살림에 재주도 취미도 없었지만 식구가 단둘이었을 때에는 적어도 집다운 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된 것은 아기가 태어난 후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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